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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Dec 05. 2018

노동청 공익과 노동부 출장 (2)

코딩하는공익(8)

  일요일 저녁. 필자는 깊은 고민에 쌓여 있었다. 출장이 결정되기 훨씬 전에 부산행 왕복 차편을 예매해 두었기 때문이다. 일단 일요일 밤늦은 시간에 안동으로 도착한 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세종시로 출발할까, 아니면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세종으로 출발하고 세종에서 하룻밤을 자는 게 나을까. 어차피 집에 가도 바로 잠들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10시쯤 운전대를 잡았다.

 

  필자는 운전할 때 물을 많이 먹는다. 운전석에서 손 닿는 곳에 항상 생수 페트병이 있고, 트렁크에도 생수를 한 박스씩 넣고 다닌다. 잠을 깨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물을 목으로 넘기는 촉감이 너무 좋아서이다. 그러다 보니 장거리를 뛸 때에는 거의 모든 휴게소에 들르는 버릇이 있다. 화장실을 자주 가고 싶어 져서.

 

  아니나 다를까 서안동 IC에서 고속도로로 올라오자마자 신호가 왔다. 바로 안동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난 뒤부터 SNS에서 거의 수시로 알람이 온다. 10분 조금 넘게 운전했는데 그 사이에 페이스북 친추가 세 건이나 와 있어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정말로 뜻밖의 일정이 생겼다. 블루포인트 파트너스의 Y모 심사역님이 페북친추를 주셨다. 친구추가를 승락하자마자 속전속결로 대화가 진행되더니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 방문하기로 일정이 잡혔다.


  블루포인트 파트너스는 딥 테크(Deep Tech)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육성하는 투자자다. 투자금도 집행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트폴리오 팀에 밀착하여 사업화를 도와주는 엑셀러레이터 성격이 강한 곳이다. 필자는 치즈케익스튜디오 팀에 있을 때 블루포인트의 박 전 심사역님과 교류가 있었고 대표님 앞에서 피칭을 한 번 해 봤지만, BPP 본사에는 못 가봤다.

  

  카이스트 학생창업가들 사이에는 "블루포인트 사무실에 방문해서 커피를 한 잔 먹어야 진짜 스타트업으로써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고 무엇보다도 매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포트폴리오 팀들을 팁스(TIPS)에 올린다. 대단한 곳이다. 

 

  필자는 작년 카이스트에서 열린 데모데이와 올해 서울에서 열린 아그로 테크(농업기술) 데모데이에 참석했다. 팀들의 기술력과 발표의 완성도에 매번 놀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에서 그런 행사를 기획하는 인력이 3명뿐이라고!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놀라운 광경이 매일 펼쳐지는 것일까.


  아무튼 블루포인트에 방문할 기회라면 필자가 더 원하던 일이었다. 당장 방문 약속을 잡았고 감사하게도 Y 심사역님께서도 갑작스러운 일정임에도 승낙을 해 주셨다.


  경상도를 거의 빠져나간 시점에 휴게소에 들렀다. 한 통의 메시지가 더 와 있었다. 블루포인트 인턴 J님도 미팅에 동석하신다고. J님과는 이미 페이스북 친구 사이었기에 조금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 BPP관계자가 있었어!



  잠을 쫓기 위해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신나게 밟았다. 그런데 2차선 고속도로만 타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왜 화물차는 앞서 가는 화물차를 추월하려고 애쓰는 걸까? 본인 차에 무거운 짐이 실려 있어 시속 90km도 못 올리면서 속도도 고만고만해 보이는 다른 화물차를 앞지르기 위해 1차선을 1분가량 가로막는다. 이런 상황이 오면 추월을 시도하는 화물차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얼른 추월하고 2차선으로 빠져 주세요!


  차선이 두 개뿐인데 화물차 두 대가 앞을 떡 막고 있으니 자연스레 아장아장 달리는 자동차들의 행렬이 생겨난다. 분노한 뒷 차 운전자가 클랙슨이라도 울리면 괜히 필자가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참 싫다. 교통량이 적은 밤이나 새벽이면 그래도 조금 덜한 편인데 한낮에 이런 일을 겪으면......



정문술빌딩에서 내려다본 스포츠컴플렉스. 모교를 방문했으나 화장실이 급해 대충대충 찍었다. 애교심보다는 생물학적 욕구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운전 중에 물을 계속 마시는 습관을 고쳐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며, 대전을 도착하자마자 일단 카이스트로 향했다. 불쑥 쳐들어가 재워달라고 할 사람도 가장 많고, 무엇보다도 화장실이 너무 급했기 대문이다! 


  밤이 되면 대부분의 건물이 잠긴다. 카드키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대학원 생활을 했던 정문술빌딩으로 달려갔다. 이 곳도 카드키가 잠겨있었지만 바이오 및 뇌공학과 고인물들은 어떻게 하면 카드키를 안 찍고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지 다들 알고 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는데 대부분의 연구실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필자가 대학원 생활을 했던 SBIE연구실도 마찬가지. 전국의 대학원생들, 파이팅이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오피스


  블루포인트 파트너스는 카이스트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접근성이 좋다 보니 자연스레 카이스트 학생창업가들 사이에서 평판이 빠르게 퍼졌던 점도 분명 있을 것 같다. 많은 VC들이 서울에 본사를 두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블루포인트는 본사가 대전에 있다. 카이스트의 우수한 테크 스타트업들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데려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내부 사진을 찍을걸 후회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BPP 오피스는 굉장히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원래는 저곳에 카페가 있었다고 한다.


  "아, 상상텃밭 하시고 계시는구나. 다른 거 하는 거 없으셨으면 창업하자고 꼬시려고 했었어요!"

  "그럼 상상텃밭에 조인하실래요? 스톡옵션은 재량껏 드릴게요."


  Y 심사역님, J 인턴님과 함께 그 유명한 블루포인트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Y 심사역님은 카이스트 08학번, 필자는 카이스트 11학번, J 님은 카이스트 12학번. 무슨 동아리에서 활동했는지부터 출발해 템포가 쳐질 여유도 없었다. 브런치 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으로 에너지가 가득한 분들이다.


  "아침은 드셨어요?"


  웃음기 사라질 틈 없는 하이텐션 대화를 죽 이어가다 보니 대표님께서 자연스레 합석하셨다. 맛있는 빵도 한 접시 챙겨주시면서!


  "저는 카이스트 91학번이에요. 거기 xx교수랑 학창 시절에 같이 놀고 그랬는데."


  동문끼리의 대화는 항상 즐거운 법이다.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창업하면 어떤 게 장점이에요?"

  "한 여름에 일하다가 더우면 팬티만 입고 일해도 돼요."

  "으 그건 별로 안 보고 싶은데."

  "그게 단점입니다. 한 여름에 일하다 더우면 다른 멤버가 팬티만 입고 일 하는걸 봐야돼요."


  E5 우승자였던 모 대표님께서 하셨던 강연이 잊히지 않는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대표는 정말 외롭습니다. 직원들한테 앓는 소리는 못 하지, 다른 분야 사장님들은 내 아픔에 공감을 못 하지. 결국 나중에 되면 대화가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은 경쟁사 대표님 뿐이에요." BPP는 셸파스페이스, 스마프, 그리노이드 3개 농업 관련 스타트업을 포트폴리오로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표님 역시 스마트팜 시장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계셨다. 아픈 부분은 어디고 맛있어 보이는 부분은 또 어디고. 이런 자리가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혹시 안동에 방문해서 상상텃밭 구경해 볼 수 있나요? 안동은 어떻게 가야 빨라요?"

  "중국에 주문해 둔 설비가 이번 달 중순 지나야 올 거거든요. 1월에 어느 정도 구색 갖춰지면 초대해드릴게요. 그리고 대전에서 안동은 정말 멀어요 자차를 타고 오시는 게 좋아요."

  

  10시에 월간회의가 있어 서울에서 내려오는 심사역님도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런 중요한 행사가 있음에도 10시가 넘어서까지 세 분께서 함께 자리해 주셔서 더욱 감사했다.


  연예인처럼 생각하던 분들이랑 갑작스럽게 만났는데 그 연예인들이 필자를 좋게 봐주는 상황에 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 따뜻한 분들이었다. 노동부 출장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맺었다.


  또 봐요, 블루포인트!



  코딩하는 공익 이름에 걸맞은 일도 했다. BPP에서도 자동화하면 좋을 내부 업무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CSV나 엑셀에 기재된 포트폴리오사 정보를 일일이 ppt의 공통규격에 맞춰서 심사역들이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HTML이나 CSS로 구현하면 되지 않아요?"

  "아 맞네요?"


  휴 다행이다. 커피값은 한 것 같다.



세종시 도로에서 한 컷. 사실 정부청사가 아니라 코스트코에 가고 싶었다.

  대전에서 세종까지는 크게 먼 거리가 아니더라. 대중교통으로 대전에서 세종을 출퇴근하라면 무리가 있겠으나 자차 보유자는 충분히 커버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는 오전에 이뇨작용을 일으키는 커피를 한 사발 가득 얻어먹고서도 운전 중에 물을 마시는 습관을 내려놓지 못했다. 위 사진을 찍던 시점에 이미 필자의 방광은 위험 상태였다. 정말, 차에 실어둔 물부터 다 갖다 버려야 하나? 아니지 물을 버리면 아깝지 회사에 갖다 두고 근무 중에 아무나 먹으라고 할까?


고용노동부 본청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 드디어 도착했다. 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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