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학기, KAIST 교양필수과목인 리더십2 "리스크 없는 학생창업" 이라는 과목에 강사로 출강했습니다.
한 학기간의 수업을 마무리하고 소감을 적은 글입니다.
드디어 내 첫 수업이 종강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창업강좌는 나같은 조무래기 학생 나부랭이가 아니라 엑싯하고 시간 많이 남는 대단한 분들이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업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그 분들 보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동안 사업체를 여러번 말아 먹었다. 사람을 잘못 만나서 망하고, 재무계획을 잘못 세워서 망하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겨서 망했다. 아마 내 또래에선 가장 많은 사업체의 멸망을 지켜 본 사람이 내가 아닐까. 그 동안 했던 삽질을 분석해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사업체를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다뤄 보자는 동기로 리더십 3강좌를 기획했고, 생각보다 너무 호평을 받으며 심의에 통과했다.
보통 학생들에겐 창업 강좌는 자기계발서적같은 느낌이거나, 성공한 사람의 무용담을 듣는 자리라는 인식이 크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철저한 안티테제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게다가 카이스트 신입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창업강좌에 덜 노출된 학생들이라 이런 편견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거의 매주 학생들을 충격에 빠뜨릴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팀 빌딩 관련 수업에서는 팀원들끼리 서로를 견제하며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과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 본인의 권리를 최대한 지키며 회사에 타격을 주는 방법 등을 논했다. 자금조달 수업에서는 RCPS 등 학생들은 전혀 듣도보도 못 했을 조건의 주식들과 실제로 분쟁으로 이어졌던 독소조항을 다뤘다. 한 학기 내내 보통 강좌에서는 절대 공공연히 다루지 않는 내용들을 판례까지 소개해 가며 가르쳤다. 아마 법인 설립과 운영에 대해 다루는 수업은 많겠지만 공동창업자들끼리 싸움이 나서 팀이 터졌을 때 안전하게 발을 빼며 법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수업은 이게 유일했을 거다. 생각 가능한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고 그를 막을 수 있는 법률적 장치는 거의 모든 것을 다뤘다.
학생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으로 뛰어들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창업 전에 고민해야 될 부분들은 전부 알려준 것 같다. 앞으로 학교를 다니며 창업을 장려하는 수업은 엄청 많이 들을테니 잔뜩 겁을 주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예방할 방법을 알려줬다. 병주고 약주고.
그랬더니 되려 학생들이 창업을 더 하고싶어 하더라.
학생들 모의 IR도 했다. 따로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멋진 사업계획서를 척척 만들어 온다. 개중에 3명은 신입생 레벨이 아니었다. 벤처포럼을 가도 저런 수준은 잘 못 봤었다. 깜짝 놀라서 "이거 처음 발표해 보는 거에요?"라고 몇번이나 물어봤다. 기특하게도 내 수업에서 배운 대로 해 봤단다. 짜식들.
부디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해 불필요한 실패를 맛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철저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신중하게 사업을 시작해 성공을 맛보는 학생이 나온다면 더 좋겠다.
오늘은 종강을 기념해 이효석대표가 대전까지 손수 내려와 특별강연을 진행해 줬다. 창업 경험이 풍부한 다른 학교 학생이 마냥 신기했나보다. 나때보다 학생들 반응이 훨씬 좋았고, 오늘 강연을 들은 수강생 한 명은 치즈케익스튜디오에 인턴으로 지원했다. 신입생주제 1저자 저널논문이 2개나 있는 대단한 친군데 과연 합이 잘 맞아 좋은 팀이 될지.
여튼 한 학기 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리더십센터에서도 그렇고 수강생들도 그렇고 이 강좌가 내년에도 개설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하지만 나는 이제 두 달 뒤면 졸업을 하여 학교에 없다. 누군가가 이 수업을 계승해 주면 좋겠지만 내 주변 분들은 다들 대단한 분들 뿐이라 나만큼 많이 실패해 본 분이 안 계셔서 맡기기도 곤란하다. 이거 하나가 참 아쉬운 부분이다.
또 아쉬운 점은 매 강좌를 녹화해 내가 한 번씩 다시 돌려볼 걸 후회된다. 이불킥도 하고 뿌듯해 하기도 하고. 아주 즐거운 경험이 되었을텐데.
끝으로 학생들이 오늘 남겨준 강의후기를 몇 개 남겨본다. 호평 일색이라 학생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단 한 건의 클레임이나 비판도 없었다. 강의평가도 많은 학생분들께서 만점을 주셨다!!
"처음에는 창업 할 생각이 없었으나 이제 내 선택지에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 김**
"창업이라는 것이 리스크를 어느정도 감수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인 줄알았는데, 준비를 통해 많은 영역에서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이**
"관련 제도, 공동창업자, 돈에 관한 현실적인 측면들을 매우 부정적인 면까지 모두 파헤쳐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부생으로서 쉽게 접하기 힘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이**
"창업에 관해 백지나 다름 없었는데 어느정도 뼈대를 제시해 준 수업이다. 이 수업 들으니 통수 맞는게 무서워져서 법공부도 하고 싶어졌다." - 오**
"구체적으로 창업을 어떻게 시작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알게되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박**
"큰 기대 없이 어떻게 그 위험한 창업을 리스크없이 할 수 있을까 궁금해 수강신청 했다. 수업 초점이 내가 원하는 바와 일맥상통하여 참 좋았다. 리스크 회피방법 뿐 아니라 창업시 고려해야 할 점들, 투자유치 방법과 투자의 종류 등등 창업전반에 필요한 내용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 수업을 한 번 들은 것 만으로 내가 할 실수들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모든 리더십3 수업중 이 수업이 가장 실용성이 있고 알차다고 생각한다." - 김**
"전반적으로 유익한 강의였다. 강사님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주신 지식들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법무와 계약서, 주의해야 할 점, 자본, 투자시 유의점 등 창업에 도움이 될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학생들의 IR을 듣는 시간 역시 유익했다. 생각지 못 한 다양한 아이디어에 감탄했고, 투자자의 입장에서 사업성과 현실성을 검토하며 내 아이디어를 어떤 방법으로 보완해야 할 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이**
"중요한 법률설명이나 회사 운영시 필요한 테크닉들을 설명해 주셔서 유용했다. 직접 창업을 여러번 시도하고 실패도 해 본 분의 시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 김**
"창업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수강신청 했으나 한 학기 수업을 들으며 창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일상생활에서 가치 있을만한 창업 아이템을 나 자신도 모르게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수업은 창업을 해 보고 싶게 하는 도전정신과 열정, 그리고 창업에 필요한 기본지식에 대해 일깨워 주었다." - 이**
"기대했던 것보다 강의가 훨씬 내용이 풍부했고, 강사님도 이에 대해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이셔서 매우 유익한 강의였다. 본 강의는 사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내용들을 많이 소개했다. 그러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희망만을 전달해 주는 것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실패가 존재할 지 배워야 앞으로 다가올 위협에서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 강의의 이름은 리스크없는 학생창업과 매우 걸맞는 훌륭한 강의였다." - 정**
"원래 다른 수업을 신청했다 폐강되어 이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이번학기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수업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고등학교때부터 창업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보고 고민도 많았는데 궁금증과 의문점들을 이번 강의를 통해서 해소할 수 있었다. 비법인사단과 법인, 창업시 주의할 점 등 왠만한 창업특강에서는 듣기 힘든, 들어본 적이 없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셔서 감사했다. 반병현 강연자님 한 학기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성공해서 연락할 일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 황**
"경험에서 나오는 실패경험, 실무경험, 법을 피해가거나 이용하는 방법을 실제 상황에 맞게 알려주셔서 앞으로 굉장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모의IR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나쁘지 않은 서비스를 구상해 내어 뿌듯하다. 다른 친구들의 IR도 굉장히 인상깊게 봤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다른 학생들도 이 리더십3 강좌를 듣기 바란다." -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