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 아래서 한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찌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도서 6:1-12 KRV
전도서 6장의 초반부는 표현이 수위가 높습니다. 6장의 초반부는 인생이 헛된 이유를 또다시 논하고 있습니다. 서론이 깁니다. 주제는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낙이 없는 삶은 헛되다."
낙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1장, 2장에서의 코헬렛의 견해와 6장의 견해가 충돌합니다. 언제는 예루살렘 역사상 가장 풍성히 모든 낙을 누려보았으나 헛되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이제는 낙이 없으므로 헛되다니요.
이게 코헬렛이 솔로몬이 아니라는 증거문입니다. 1장과 2절에서는 솔로몬을 사칭하며 마치 자신이 솔로몬이 된 것 처럼 다른 자아를 투영하여 글을 썼지만, 6장에서는 본인의 자아가 투영된 것이지요.
파급력을 얻기 위해 꾸며낸 인격과 코헬렛 본인의 인격이 충돌하며 드러나는 괴리감이 6장 초반부의 가장 재미있는 포인트입니다.
잠언에서 솔로몬의 자아가 강하게 튀어나온 부분에서, 솔로몬은 자신을 높였습니다. 왕의 권세를 비를 내리는 구름에 비유한다거나 하는 표현이 등장했죠.
반면 코헬렛의 자아가 묻어나는 부분에서는 낙이 없는 인생이 헛되며 낙이란 하나님이 허락해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녹아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솔로몬보다 코헬렛이 훨씬 지혜로운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코헬렛은 겸손이라는 덕목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잠언과 전도서의 지혜자의 순위를 매겨 보라면 이렇게 되겠네요.
1. 아굴 2. 르무엘왕의 어머니 3. 솔로몬 4. 코헬렛
종전에 코헬렛이 솔로몬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했음에도 순위를 아래로 잡은 것은, 솔로몬은 1장부터 10장까지 지면을 할애하여 지혜가 하나님의 권능임을 설파하는데 애썼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은 세상이 잘못되어 바로잡겠다는 말을 반복할 뿐,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 하나님께 어떤 영광이 되는지는 뒷전이거든요. 비록 허무주의와 같은 전제에서 출발해 신앙의 길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은 전심의 신앙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코헬렛 역시 하나님 보다는 자기 고집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6장 묵상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삶의 낙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이루어 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