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장 (上)

10/6 아침묵상

by 반병현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전도서 7:1‭-‬10 KRV



잠언 11-16장과 저술구조가 동일합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마음을 허무하게 하는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는 것 같고, 악에 대한 막연한 경계처럼 보이면서도 딱히 지혜를 숭상하지도 않습니다.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전도서 7:7 KRV 되려 지혜자가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요. 반야심경처럼 공 사상과 가까운 방향에서 허무를 논하는것 같으면서도, 또 욕심과 열망은 느껴지는 신기한 글입니다. 코헬렛이 현자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고민의 깊이는 솔로몬보다도 훨씬 깊은 경지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기원전 900년대에 비해 700년 이상 흐른 시대의 사람이니 그렇지 않을까요? 철학의 아버지인 탈레스가 등장한 것이 대충 기원전 500년정도니까 코헬렛은 수백년간 다듬어지고 발전된, 어느정도 틀이 잡힌 철학체계를 공부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뒷부분도 함께 묵상하고 싶으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나중으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코헬렛이 도대체 왜 허무함에서 출발하여 지혜와 우매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되었는지 조금 더 고민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길을 따라 고민을 해 나가다 보면, 전심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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