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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Dec 09. 2019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글 한 편

코딩하는 공익

  연말이 다가왔다. 벌써부터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퍼진다. 머라이어 캐리는 연말마다 전 세계에서 판권료를 거두어 들이고 있겠지. 저작물을 생산하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생각건대 부럽다. 존나 부럽다. 작품의 완성도가 부럽고, 대중이 그로부터 느끼는 감동이 부럽고, 그것을 전 세계에 마케팅한 자본이 부럽다.


  몇주 전 계명대학교 국어교육과의 초청으로 강연을 하고 왔다. 강연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글의 성공은 작품이 가진 예술적 가치가 아니라 사업성, 마케팅이 더 중요합니다. 베스트셀러라고 진열된 책들 중에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든 글도 많지 않나요? 아니면 이번에 이러한 사건으로 유명해진 이 책이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나요?"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 학부생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책이 다 타버렸대

    머라이어 캐리를 프로듀싱하고 브랜딩한 회사와 자본이 부럽다. 필자는 그렇게까지 펌핑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무사히 필자의 저작물이 시장에 유통되기만 해도 만족한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다. 화재로 인해 창고에 있던 필자의 책이 모조리 타버렸다는 연락을 받았거든.

 

  다행히 E북은 절찬리에 판매중이다. 추운 겨울, 5,850원을 결제하여, 인세 중 공저자의 몫을 떼고 필자에게 700원 가량의 인세를 기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하튼, 그래서 매스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대규모로 소비되는 컨텐츠가 너무 부럽다는 이야기다.


  글의 초반부터 이렇게 돈 이야기로 밑밥을 까는 이야기는 이번 글이 돈에 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공임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자본주의 철학의 기본적인 대원칙에 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필자는 돈을 좋아한다. 카이스트 박사과정을 자퇴한 것도 연구보다 돈이 좋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필자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하자.


아무런 대가를 지불할 필요 없이
Nature 지에 단독 저자로 논문 개제하기 vs 현금 1억 원 수령


  학자들은 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욱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학자로서의 영예가 필자의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별다른 효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박사학위가 아니라 창업을 택했다.


  그런데 또 복잡하면서도 웃긴 것이, 공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성경 말씀 때문도 있을테지만 필자는 정당한 노력이나 운을 지불하고 그 대가로 재화를 취득하는 것을 선호한다. 필자가 투자한 시간, 노력, 재능, 성취 따위를 유형의 가치로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강연 요청 메일에 기재된 연사료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만족감이 차오른다. 비록 돈을 받았다간 교도소에 갔다가 군 생활을 한 번 더 해야 되는 입장인지라 승락할 수는 없는 제안이지만. 또래들의 서너배가 되는 높은 연봉을 제안받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상상텃밭에 인생을 걸었기에 그런 제안들을 수락할 생각은 1%도 없긴 하지만.


  어찌보면 가장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우는 방식일 것이다. 경제적 효용성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필자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회니까. 항상 자아실현의 욕구가 미충족된 채로 20년 이상을 살아온 터라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스스로를 갈고 닦아왔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쌓아올린 노력과 시간들을 보상받는듯한 기분까지도 느낀다.


  필자가 무엇을 선호하는지 이 정도면 충분히 전달이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필자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짧은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누군가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필자를 활용하려 하는 행위를 가장 싫어한다. 필자의 재능과 역사가 모욕당하는듯한 기분을 느낀다. 여기에서 대가는 반드시 돈일 필요는 없다. 만약 필자의 행동이 사회적인 효용성이 있어 마음 따뜻해지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돈보다도 더욱 값진 대가라 생각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행사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므로 어지간하면 공익성을 띈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던 분들이 계신다. 2019년 한 해 동안 필자를 짜증나게 했던 분들을 정리해 보려 했다. 그런데 무서워서 못 하겠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글로 옮겼다간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라며 병무청에서 또 전화가 올 것이 틀림없으므로 슬슬 글을 마무리하는게 좋을 것 같다. 사회복무요원은 높으신 분들의 추태를 드러내면 안 되는 신분이다. 충성.


  어째 글 한 편이 통째로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 그저 의식의 흐름이라 생각하고 귀엽게 봐 주시라. 소집해제하면 본격적으로 필자가 겪었던 모욕적인 일들을 소재로 글을 써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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