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

아브라함 서사

by 반병현

11/23


주님께서 아브람 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 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 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 이 하란 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 아브람 은 아내 사래 와 조카 롯 과 하란 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길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창세기 12:1‭-‬5 RNKSV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떠납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할 구절은 아래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3 RNKSV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는 위로의 내러티브입니다. 포로기 후기 편집의 흔적이겠죠. 창세기는 아름다운 애가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 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 은 거기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창세기 12:7 RNKSV


여기서는 단수형 명사로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J 또는 P문서 인용이겠죠?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아브람과 가족들은 에굽으로 내려갑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브람 은 이집트 에서 얼마 동안 몸붙여서 살려고, 그리로 내려갔다.

창세기 12:10 RNKSV


이집트 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아내 사래 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얼마나 아리따운 여인인가를 잘 알고 있소.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서, 당신이 나의 아내라는 것을 알면,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릴 것이오. 그러니까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야, 내가 당신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또 당신 덕분에 이 목숨도 부지할 수 있을 거요.”

창세기 12:11‭-‬13 RNKSV


오우 스윗가이 아브람...


당시 여권은 바닥을 기었습니다. 소유물로 취급당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브람의 걱정이 이해가 갑니다. 자신의 생명을 잃고 아내를 빼앗기는 비극을 피하기 위해 둘은 남매인 척 합니다.


바로 의 대신들이 그 여인을 보고 나서, 바로 앞에서 그 여인을 칭찬하였다. 드디어 그 여인은 바로 의 궁전으로 불려 들어갔다. 바로 가 그 여인을 보고서, 아브람 을 잘 대접하여 주었다. 아브람 은 양 떼와 소 떼와 암나귀와 수나귀와 남녀 종과 낙타까지 얻었다.

창세기 12:15‭-‬16 RNKSV


파라오는 아브람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브람 의 아내 사래 의 일로 바로 와 그 집안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바로 가 아브람 을 불러서 꾸짖었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 저 여인이 너의 아내라고,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너는 저 여인이 네 누이라고 해서 나를 속이고, 내가 저 여인을 아내로 데려오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다. 데리고 나가거라.” 그런 다음에 바로 는 그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아브람 이 모든 재산을 거두어서 그 아내와 함께 나라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창세기 12:17‭-‬20 RNKSV


그런데 바로의 말에서야 드러나는 정황이 있습니다. 바로는 아브람의 아내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아내를 파라오에게 바치는 것으로 부를 축적합니다.


스윗가이라고 한 것 취소합니다. 어후.


당대의 윤리관으로는 문제가 없는 행동이었을까요? 아닐 것 같은데. 원죄의 내러티브의 일부로 이해해 볼까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정결하다 여긴 인물들은 모두들 죄를 짓습니다.


모든 인간을 멸하려는 중에도 목숨을 건진 노아는 와인을 먹고 꽐라가 되어 둘째 아들이 저주를 받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름부터 축복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큰 축복을 받았지만 자기 아내를 파라오에게 넘기고 부를 누립니다.


선악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원죄의 내러티브 일부입니다. 편집시기를 포로기 후기로 보면 당위성이 더 생깁니다.


구전전승으로 내려오다 정착된 욥기에서도, 가장 정결한 인간인 욥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청하며 소리지르고,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전통적인 율법관에서는 죄 짓는 행동이죠.


기름부음을 받은 정결한 왕인 다윗 역시 밧세바를 취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비록 인과응보적인 율법론은 욥기에 이르러 박살났지만 에스라가 민중에게 모세5경을 읊어줘야 했던 시점에서 그런 율법교육이 민족적인 규모로 행해질 수 있었을까요?


체제안정과 신속한 위로를 위해서는 내용이 직관적이고 단순해야 합니다. 복잡한 은유는 배제하고 편집 당시 시대적 공감대를 해석의 기준으로 잡아야 합니다.


당시 민중의 율법적 교육수준이 낮았다는 가정하에 인과응보적인 율법론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위대한 민족이 바빌론에게 찢겨 포로가 된 이 굴욕적인 역사를 민중에게 납득시키고 다시 율법의 테두리로 묶으려면 군중의 수준에 맞는 율법을 설파하고 강해해야 합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트릭이 바로 원죄입니다. 인과응보적 신앙론에 바로 갖다넣을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를 비롯한 욥의 세 친구의 신앙론이죠. 이게 단순하고 쉽기 때문에 노예생활 해방 직후의 교육열 낮은 군중에게 설파하기 효율적인 사상이었을 것입니다.


덕분에 가장 먼저 에스라가 읊은 토라는 내용이 직관적이고 단순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욥기를 비롯한 다른 책들이 구멍을 메워주고, 이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타나크(구약)입니다.


구약에서 드러나는 몇몇 진보적인 신앙고백의 책(욥기, 전도서 등)은 원죄의 내러티브를 끊어낼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예수초림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편집 당시에는 효율성을 위해 주요 인물들의 죄악을 삽입하였다는 이야기이며,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예수님의 죽음이 가지는 큰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로 받아야 합니다.



11/24


아브람 은 이집트 를 떠나서, 네겝 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내를 데리고서, 모든 소유를 가지고 이집트 를 떠났다. 조카 롯 도 그와 함께 갔다. 아브람 은 집짐승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네겝 에서는 얼마 살지 않고 그 곳을 떠나,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 다니다가, 베델 부근에 이르렀다. 그 곳은 베델 과 아이 사이에 있는, 예전에 장막을 치고 살던 곳이다. 그 곳은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다. 거기에서 아브람 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창세기 13:1‭-‬4 RNKSV


아브람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파라오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2절 말씀이 흐름을 해칩니다.


아브람 은 집짐승과 은과 금이 많은 큰 부자가 되었다.

창세기 13:2 RNKSV


편집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강조하기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부분입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작동하여 화를 복으로 바꾸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J문서 출처일까요 아니면 편집자가 임의로 삽입한 것일까요?


그러나 그 땅은 그들이 함께 머물기에는 좁았다. 그들은 재산이 너무 많아서, 그 땅에서 함께 머물 수가 없었다.

창세기 13:6 RNKSV


여튼 이런 편집은 이어지는 영토분할의 개연성이 되어 줍니다.


아브람 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 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다.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

창세기 13:12‭-‬13 RNKSV


가나안의 비중은 창세기 초반부터 상당히 높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 이후에 정착한 곳이 가나안이므로 그 영토에 비중을 두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한국 설화에서 한반도를 신령시 한다거나 제주 설화에서 한라산을 신성시 하는 것이나 같은거죠.


가나안은 악의 소굴인 소돔과 대척점에 있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이가 선택한 땅. 그곳에 사는 후손들은 자부심을 느낄 수 밖에 없겠죠? 창세기가 치유와 위로의 서사임을 다시 느낍니다.

롯 이 아브람 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 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13:14‭-‬16 RNKSV


아브라함이 재차 축복을 받습니다. 포로기 후기의 이스라엘의 현실은 저 축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 축복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축복입니다.


저것이 실현될 것이며, 후손이 많아지리라는 축복은 결국 후대에게 같은 축복을 내린 것과 같으므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창세기 13장에서의 아브라함의 행보는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이며, 이런 위로를 필요로 했을 포로기 후기의 민족이 부르는 처절한 애가입니다.



11/25


아브람 은 자기 조카가 사로잡혀 갔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낳아 훈련시킨 사병 삼백열여덟 명을 데리고 단 까지 쫓아갔다. 그 날 밤에 그는 자기의 사병들을 몇 패로 나누어서 공격하게 하였다. 그는 적들을 쳐부수고, 다마스쿠스 북쪽 호바 까지 뒤쫓았다. 그는 모든 재물을 되찾고, 그의 조카 롯 과 롯 의 재산도 되찾았으며, 부녀자들과 다른 사람들까지 되찾았다.

창세기 14:14‭-‬16 RNKSV


전쟁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소돔이 침공당하고, 아브라함이 사병을 이끌고 적들을 무찌릅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 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돌려 주시고, 물건은 그대가 가지시오.” 아브람 이 소돔 왕에게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가장 높으신 주 하나님께, 나의 손을 들어서 맹세합니다. 그대의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덕분에 아브람 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 14:21‭-‬23 RNKSV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전리품을 양도하고자 하나, 아브라함이 이를 거절합니다.


아브람 은 들으시오. 그대는, 원수들을 그대의 손에 넘겨 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시오.” 아브람 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멜기세덱 에게 주었다.

창세기 14:20 RNKSV


십일조도 납부하죠.


1. 전공도 세웠고

2. 강력한 군사력도 과시했으며

3. 신앙심도 과시했고

4. 물욕을 내려놓는 초연한 모습도 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14장은 여호수아기와 같은 일종의 영웅서사시적 성격을 지닌 글입니다.


포로기 후기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이해하면 편집의도나 표현 등이 참으로 적절하다고 느껴집니다.


창세기 14장 역시 따뜻한 위로의 글입니다.



11/26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 에게 말씀하셨다.

“ 아브람 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아브람 이 여쭈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아직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 뿐입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 이 이렇게 말씀드리니,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아브람 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리고는 주님께서 아브람 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자손이 저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아브람 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 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15:1‭-‬6 RNKSV


아브라함이 재차 축복을 받습니다. 그 유명한 하늘의 별만큼 번성하는 자식들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받을 수 있는 축복은 다 받는 것 같습니다. 14장에서 세운 공의로 인하여 추가적인 축복을 받는 장면이죠. 에스라의 입을 통하여 이 이야기를 전해들을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리도 훌륭하신 분이 내 조상이다!"


창세기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가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 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의 자손을 종살이하게 한 그 나라를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며, 그 다음에 너의 자손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나올 것이다.

창세기 15:13‭-‬14 RNKSV


에굽 생활에 대한 예언이 등장합니다. 편집 당시 기준으로는 저게 예언이 아니라 역사죠. 동시에 포로기 후기 청자들은 이 부분에서 현재의 본인들의 처지가 쉽게 투영될 것입니다.


아브람 의 아내 사래 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하갈 이라고 하는 이집트 사람 여종이 있었다. 사래 가 아브람 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 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 은 사래 의 말을 따랐다. 아브람 의 아내 사래 가 자기의 여종 이집트 사람 하갈 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 에게 아내로 준 때는, 아브람 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십 년이 지난 뒤이다. 아브람 이 하갈 과 동침하니, 하갈 이 임신하였다. 하갈 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 사래 가 아브람 에게 말하였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나의 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더니, 그 종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멸시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브람 이 사래 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

사래 가 하갈 을 학대하니, 하갈 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창세기 16:1‭-‬6 RNKSV


이어지는 장에서는 느닷없이 아침드라마 스토리가 등장합니다. 오.. 예나 지금이나 치정극만큼 재밌는 이야기는 없죠.


천사가 물었다.

“ 사래 의 종 하갈 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갈 이 대답하였다.

“나의 여주인 사래 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너는 임신한 몸이다. 아들을 낳게 될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 이라고 하여라. 네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16:8‭-‬11 RNKSV


천사가 하갈에게 축복을 전하며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지으라고 알려줍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의 자식들이 등장합니다.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 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다.

창세기 17:5 RNKSV


지금까지 아브라함이라 기재된 것이 역본의 차이 때문인 줄 알았는데(하마와 베히못의 차이 등) 아니네요. 여기서부터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 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와 세운 언약을 잘 지켜야 하고,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도 대대로 이 언약을 잘 지켜야 한다. 너희 가운데서,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너와 네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 세우는 나의 언약, 곧 너희가 모두 지켜야 할 언약이다.

창세기 17:9‭-‬10 RNKSV


온갖 축복의 댓가로 후손 대대로 언약을 지킬 것을 명 받습니다. 할례도 여기서 언급되네요.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인 할례는 여기서 당위성을 얻게 되었나봅니다.


아브라함 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나이 백 살 된 남자가 아들을 낳는다고? 또 아흔 살이나 되는 사라 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아브라함 은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스마엘 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 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이삭 이라고 하여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그 언약은,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창세기 17:17‭-‬19 RNKSV


장자 이삭의 출생이 예고되고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며 17장이 마무리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온갖 축복은 후손들에게도 자부심이 될 사안들이 대부분이네요.


아브라함의 내러티브는 따뜻한 위로의 이야기라 이해하겠습니다.


슬슬 이집트 이야기가 시작되려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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