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전쟁
11/3
요단 강 서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에 있는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들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그 강물을 말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간담이 서늘했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아주 용기를 잃고 말았다.
여호수아기 5:1 RNKSV
설화적 구조죠. 당시 정보전달 속도는 아무리 빨라봐야 직접적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한계입니다. 국경을 넘어 소문이 퍼지려면 상단 따위의 도움 없이는 십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던 시기입니다.
1절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여호수아 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베풀어라.”
그래서 여호수아 는 돌칼을 만들어 기브앗 하아라롯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여호수아 가 할례를 베푼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이집트 에서 나온 모든 백성 가운데서 남자 곧 전투할 수 있는 모든 군인은, 이집트 를 떠난 다음에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다 죽었다. 그 때에 나온 백성은 모두 할례를 받았으나, 이집트 에서 나온 다음에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
여호수아기 5:2-5 RNKSV
이어 할례를 하여 정결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이유를 설명하는데, 광야를 떠돌면서 세대교체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돌칼을 만들었다는데 뗀석기 방식이었을까요 간석기 방식이었을까요? 아, 수양개 유물 또 보고싶다.
세대교체가 있었기에 여호수아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홍해의 기적을 목도한 이들은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친 모세파.. 요즘 말로는 여당 세력이 지지기반을 쉽게 잃어버렸겠죠. 거기에 군벌인 여호수아가 교체된 세대의 지지를 모아 권력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지지기반이 지금 할례까지 받으며 영적으로 정결해지기까지 하고 있죠. 성전에 임하기 위한 영적인 임전태세까지 마친 것입니다.
여호수아 및 그 참모진은 영리합니다. 철저하게 율법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 당시에 야훼계, 엘로임계, 사제계, 신명기계 4문서가 모세5경으로 재편집이 마무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4대문서 중 야훼계 문서와 사제계 문서를 깊게 묵상하고 정치에서 실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길갈 에 진을 치고, 그 달 열나흗날 저녁에 여리고 근방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 다음날, 그들은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 날에, 그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날부터 만나 가 그쳐서, 이스라엘 자손은 더 이상 만나 를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여호수아기 5:10-12 RNKSV
이 시기까지 만나가 내렸군요. 메추리도 내렸나요? 그런데 왜 레위기에는 만나와 메추리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등장하지 않을까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구하기 쉬운 식량은 만나와 메추리였을텐데요. 단백질 공급원이 이렇게 주어지는데 굳이 목축자원을 한정시키는 규례는 왜 레위기에 삽입하였을까요? 농경은 왜 하고요?
이런 부분이 인간이 성서를 집필하며 목적의식을 드러낸 부분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여호수아를 작성하며 이 부분에서 광야생활의 끝이 머지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소출을 취할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만나를 그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 대목에서 가슴이 끓어오르거나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았을겁니다.
그러나, 덕분에 문학적인 이질감이 생깁니다. 작가가 자기 의도를 강하게 투영할수록 이질감은 커집니다. 문학비평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이런 부분이 눈에 바로 들어옵니다.
아마 만나는 레위기의 바탕이 되는 야훼계와 사제계 문서가 완성되던 시점에 진작 끊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제물로 바치는 규례가 없죠.
혹은 레위기 자체가 너무 후대에 재집성되어 율법학자들이 만나에 대한 건을 누락시켰거나요. 후대에는 만나가 없으니 제사절차가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에게 만나와 메추리가 가지는 의미가 엄청난데 그걸 누락시킬 이유가 있을까요? 상징적으로나마 넣어둬야 구색이 맞을텐데요.
따라서 저는 여호수아를 작성한 율법학자가 무리수를 뒀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가 여리고 에 가까이 갔을 때에 눈을 들어서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 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 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주님의 군사령관으로 여기에 왔다.”
그러자 여호수아 는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한 다음에 그에게 물었다.
“사령관님께서 이 부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주님의 군대 사령관이 여호수아 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 가 그대로 하였다.
여호수아기 5:13-15 RNKSV
설화적 구조가 이어집니다. 이런 장치들은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명하시고 보살피셨다는 것을 부각하고, 동시에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도서와 비교하면 문학적 체계 자체가 미숙합니다. 기원전 300년보다는 훨씬 예전에 쓰여진 글이라서 그렇겠지요. 전도서의 경우 코헬렛이 로마문학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여하튼 여호수아기 5장에서는 지배자와 민족의 신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읽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안에서 한데 묶엘 수 있도록 하는 장치고요. 또한 민족이 애국심 비슷한 감정에 고취되도록 신경쓴게 느껴졌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체제안정과 왕권강화를 위한 글이라는 뜻입니다.
11/3 저녁묵상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자손을 막으려고 굳게 닫혀 있었고,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호수아기 6:1 RNKSV
가나안 입장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외부민족으로부터 침략당한 것이므로 이스라엘을 상대로 결사의 항쟁을 벌였을 것입니다. 방어가 굳건하여 쉬이 침공하기 어려웠던 상황입니다.
주님께서 여호수아 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리고 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너의 손에 붙인다. 너희 가운데서 전투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엿새 동안 그 성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돌아라. 제사장 일곱 명을, 숫양 뿔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궤 앞에서 걷게 하여라. 이레째 되는 날에, 너희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아라. 제사장들이 숫양 뿔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면, 백성은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 큰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때에 백성은 일제히 진격하여라.”
여호수아기 6:2-5 RNKSV
이에 하나님께서 힘을 보태 주십니다. 그 유명한 일곱바퀴 이야기입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 소리를 듣고서, 백성이 일제히 큰소리로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이 일제히 성으로 진격하여 그 성을 점령하였다. 성 안에 있는 사람을,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치고, 소나 양이나 나귀까지도 모조리 칼로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다.
여호수아기 6:20-21 RNKSV
살육, 약탈, 파괴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한 포장문구가 분량이 상당합니다. 일단 사실만 놓고 보면 유대인은 여리고를 침공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학살하였습니다.
후대의 율법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어떤 의도로 포장하였을까요. 성전이므로 당위성이 있다? 혹은 편집 당시의 관념으로는 옳은 일이었다?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레위기에는 이교도를 죽이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말씀이 나오거든요. 당시는 물론, 여호수아기 편집 당시의 관점으로도 이는 옳은 살육이라 여겨졌을 것입니다.
요즘의 도덕관으로는. 흠. 일단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정도로만 해석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여호수아 는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 창녀의 집으로 들어가서, 너희가 맹세한 대로, 그 여인과 그에게 딸린 모든 사람을 그 곳에서 데리고 나오너라.”
정탐하러 갔던 젊은이들이 가서, 라합 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라버니들과 그에게 딸린 모든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라합 의 식구들을 모두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 진 밖으로 데려다 놓았다.
여호수아기 6:22-23 RNKSV
정말로 라합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여호수아의 성군으로써의 면모를 부각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레위기에 따르면 선행을 했어도 하나님을 모욕하는 이교도는 돌로 쳐죽여야 하거든요. 율법보다도 인간적 면모가 앞서는 부분입니다. 기술과정에서 통일성이 흐트러졌죠.
여호수아기 초안 작성 후에 왕권강화 목적으로 한차례 더 다듬은 흔적입니다. 초안 집필시기와 편집시기가 차이가 나거나, 다른 사람이 했거나, 누군가가 시켜서 작성한 흔적으로 저는 봅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 가 이렇게 맹세하였다. “이 여리고 성을 일으켜 다시 세우겠다고 하는 자는, 주님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성벽 기초를 놓는 자는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성문을 다는 자는 막내 아들을 잃을 것이다.”
여호수아기 6:26 RNKSV
여리고성터에 영원한 저주를 내리며 여호수아 6장이 마무리됩니다.
생각해 보면 유랑민족이 성터를 차지하고 거점으로 삼았으면 훨씬 효율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성을 무너뜨리고 완전히 짓밟은 것은 민족의 영토확장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함임을 강조하기 위한 서술구조입니다.
6장에서는 정복전쟁에 당위성이 부여되었으며, 여호수아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여 왕권강화를 시도하느라 기술의 통일성이 무너졌습니다. 이 부분들이 재밌는 부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장은 독립된 성서로써의 면모 또한 완벽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칠십인역때도 살아남고 현대까지도 예배에서 여리고성 전투가 인용이 되지요.
모쪼록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역경을 뛰어넘도록 하신다는 신앙적 교훈을 가져가면 될 것 같습니다.
11/4
열 세 시간을 잤습니다. 아, 많이 힘들었나봐요. 오늘은 짧게만 읽고 가볍게 묵상을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전멸시켜서 주님께 바쳐야 할 물건을 잘못 다루었다. 유다 지파에서, 세라 의 증손이요 삽디 의 손자요 갈미 의 아들인 아간 이, 전멸시켜서 주님께 바쳐야 할 물건을 가져 갔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
여호수아기 7:1 RNKSV
아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습니다. 설화적 구조상 인과응보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겠군요. 아간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어떤 화를 입게 될까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우선이 되면 죄를 짓습니다.
내 모습과, 신앙인으로써의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충돌하지 않는 부분이 좁은 길이고 좁은 문이 됩니다. 이 문은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온전히 맡기면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습니다.
세상과 상충되는 신앙을 살아가면서도 스스로는 괴로움보다는 행복을 느끼는 분들이 그런 분들이 아니겠습니까.
문이 좁다고 불평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주께 내려놓는 신도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4
여호수아 가 여리고 에서 베델 동쪽 벳아웬 곁에 있는 아이 성으로 사람들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고 지시하니,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 성을 정탐하였다. 그들이 여호수아 에게 돌아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천 명이나 삼천 명만 올라가도 아이 성을 칠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성을 치느라고 다 수고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백성 가운데서 약 삼천 명이 그리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아이 성 사람에게 패하여 도망쳐 왔다.
여호수아기 7:2-4 RNKSV
역시 고대의 건국신화적 구조의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곧바로 인과응보가 등장합니다. 아간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승률이 높았던 소규모 교전에서 패배합니다.
너희는 아침에 지파별로 나오너라. 주님께서 주사위로 뽑으신 지파는 가문별로 가까이 나오고, 주님께서 주사위로 뽑으신 가문은 집안별로 가까이 나오고, 또한 주님께서 주사위로 뽑으신 집안은 장정별로 가까이 나오너라. 전멸시켜서 주님께 바쳐야 할 물건을 가져 간 사람이 주사위로 뽑히면, 그에게 딸린 모든 것과 함께 그를 불에 태우겠다. 그가 주님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기 7:14-15 RNKSV
또한 야훼의 권능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가 또다시 등장합니다. 주사위를 통해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지요. 열두지파가 있었으니 확률론적으로 접근했을때 12면체 주사위가 필요합니다.
이를 한 번 던져서는 12가문, 두 번 던져서는 143가문, 세번 던져서는 1726 가문을 선별할 수 있습니다. 네 번 던지면 대충 2만개의 가문이고요. 한 가문당 장정이 143명씩 있을 리는 없으니 가문당 최대 12명의 장정이 있었다고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장정 인구는 대충 최대 240만명 정도네요.
가데스바네아에서 인구조사 결과가 대충 60만명 정도였으니 주사위를 총 6번만 던지면 범인이 잡히는 구조 였는데 제가 이걸 왜 계산하고 있죠..?
여튼 하나님의 권능은 60만이 넘는 인구에서 범인을 찾는 데, 단 여섯번의 주사위질이면 충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순식간에 범인을 잡았겠죠.
아간 이 여호수아 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진실로 주 이스라엘 의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호수아기 7:20 RNKSV
아간이 죄를 실토합니다.
여호수아 가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느냐? 오늘 주님께서 너를 괴롭히실 것이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이고, 남은 가족과 재산도 모두 돌로 치고 불살랐다. 그들은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있다. 이렇게 하고 나서야 주님께서 맹렬한 진노를 거두셨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도 아골 골짜기라고 부른다.
여호수아기 7:25-26 RNKSV
아간과 부정한 재산을 없애고 나서야 여호와의 진노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발목을 잡는 죄악이 해소되었으니 다음 장에서는 교전에서 승리하겠군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승리할 수 없다" 정도로 7장 말씀을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잠언을 묵상하던 시기부터 매일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허락하사, 하나님의 뜻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이제 제 신앙의 기둥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시면 가고, 놓으시라면 놓을 수 있는 마음가짐 또한 하나님의 뜻이 어느 곳을 향하는지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더하사, 제 삶에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11/5
주님께서 여호수아 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군인들을 다 동원하여 아이 성으로 쳐올라가거라. 보아라, 내가 아이 의 왕과 백성과 성읍과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다. 너는 아이 성과 그 왕에게도 여리고 와 그 왕에게 한 것처럼 하고, 오직 전리품과 가축은 너희가 가져라. 성 뒤쪽에 군인들을 매복시켜라.”
여호수아기 8:1-2 RNKSV
하나님께서 아이 성을 이스라엘 민족의 손에 떨어뜨리십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광야 벌판에서 자기들을 뒤쫓던 모든 아이 성 주민을 다 죽였다. 그들이 모두 칼날에 쓰러지자, 온 이스라엘 군대는 아이 성으로 돌아와서, 성에 남은 사람을 칼로 죽였다. 그 날 아이 성 사람 남녀 만 이천 명을 모두 쓰러뜨렸다. 여호수아 는, 아이 성의 모든 주민을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칠 때까지, 단창을 치켜든 그의 손을 내리지 않았다.
여호수아기 8:24-26 RNKSV
매복 작전과 양동작정을 동원하여 화려하게 전투에 승리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이 성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죽었습니다.
레위기에 인신공양에 대한 문구가 등장합니다. 목사님과의 문답에서는 에굽에서 이방신을 숭배하던 방식대로 여호와를 숭배하던 이들이 희석이 덜 된 과도기적 상태였으므로 그런 문언이 등장하였다는 결론으로 도달하였는데, 여호수아기를 보면 또 다른 것 같습니다.
벌써 여리고성 사람들과 아이 성 사람들 전체가 인신공양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이후 8장의 종반에서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계승하는 정통성을 과시하고자 모세의 율법을 낭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열마저 모세 시절의 그것과 동일하게 배치하고요.
그런데 이전에는 안 읽히다가 오늘에서야 들어오는 정보가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은 장로들과 지도자들과 재판장들과 이방 사람과 본토 사람과 함께 궤의 양쪽에 서서, 주님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백성의 절반은 그리심 산을 등지고 서고, 절반은 에발 산을 등지고 섰는데, 이것은 전에 주님의 종 모세 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려고 할 때에 명령한 것과 같았다.
여호수아기 8:33 RNKSV
요단강 도강때도 그렇고, 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말에 고분고분 따른다는 점입니다.
제사장들은 아론의 후손들입니다. 세대교체가 한 번 내지 두 번 일어났다는 가정하에, 제사장들에게 모세는 삼촌 내지 작은할아버지죠. 그런 이들이 친모세파에서 이탈하여 여호수아의 세력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시국에 대입하면 박.. 아니에요 위험한 발언입니다.
여튼 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하자면 제사장들은 모세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여호수아를 지지합니다. 이는 여호수아로의 권력 이양이 친모세파의 지지를 받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여튼 8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았습니다.
저는 여리고 사람들과 아이성 사람들에게 자꾸만 관심이 가네요. 사실 오늘 아침에 주님 곁으로 올라갈뻔 했거든요. 신앙이 깊어지고, 사회에서 승리해 나간다고 하여 자만하면 절대 안 된 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훅 하고 불면 흩어져 사라질 존재입니다. 전도서를 인용하자면, 의인도 악인도 죽어서 잊혀지게 되어 그 말로는 일통합니다. 헛되고도 헛되죠. 이런 삶 속에서 무엇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참 짧은 순간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언제 주님께서 우리를 거둬가실지 모릅니다. 신앙의 굳은 심지를 가지고 항상 우리 삶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불교 신자 친구에게 했더니 저 보고 보살님이라고 하네요. 그리스도인에게 약간 곤란한 호칭인데 기분은 나쁘지 않습니다.
11/6
요단 강 서쪽의 야산과 평원지대와 지중해 연안에서 레바논 에 이르는 곳에 사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소식을 듣고, 함께 모여서, 여호수아 와 이스라엘 에 맞서서 싸우기로 뜻을 모았다.
여호수아기 9:1-2 RNKSV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6개 족속이 등장합니다.
헷은 히타이트입니다. 청동기시대에 형성되어 기원전 14세기에 전성기를 누렸고, 전성기 시절 영토는 당시의 이집트보다 넓었습니다. 기원전 14세기는 랍비전승에 따르면 레위기의 저술시점이고, 사료에 따르면 기원전 1200년대까지 통일왕조가 이어지다가 이후 분열합니다. 정복전쟁 시점과 어딘가 묘하게 어긋나있습니다. 히타이트의 영도는 좌상단이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침공이 국력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히타이트 남쪽 영토 일부정도만 공격당했을 것이고요. 히타이트의 직접적인 멸망 원인은 철기 문화권이 지중해를 건너와 침공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족속들은 별로 정보가 없네요. 그냥 힘 좀 센 청동기문화권 토착세력이었겠죠 뭐. 핳.
여튼 이스라엘 족속들의 행보가 주변 민족의 이목을 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과 아이성의 모든 인물을 죽였으면 정보가 새나갈리가 없지 않나요?
모두를 죽였다는 것이 거짓이거나 정보가 저렇게 빨리 퍼져나가 동맹이 결성되었다는게 거짓이거나 하겠죠.
전자의 경우에는 여호수아 왕권의 율법적인 정결함을 강조하기 위한 서술트릭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설화적 구조에서 영웅에게 위기를 제공하는 서술트릭일 것입니다.
그들은 길갈 진에 있는 여호수아 에게 와서,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먼 곳에서 왔습니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어 주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히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우리 근처에 사는 듯한데, 어떻게 우리가 당신들과 조약을 맺을 수 있겠소?”
그들이 여호수아 에게 말하였다.
“우리를 종으로 삼아 주십시오.”
여호수아 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소?”
그들이 여호수아 에게 대답하였다.
“종들은 주 하나님의 명성을 듣고서, 아주 먼 곳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집트 에서 하신 모든 일을 들었으며, 또 주님께서 요단 강 동쪽 아모리 사람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 과 아스다롯 에 있는 바산 왕 옥 에게 하신 일을 모두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땅에 살고 있는 장로들과 모든 주민이 우리를 이리로 보냈습니다. 우리 기브온 주민은, 종이 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우리와 평화조약을 맺어 달라고 하는 부탁을 하려고, 길에서 먹을 양식을 준비해 가지고 이렇게 왔습니다. 우리가 가져 온 이 빵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리로 오려고 길을 떠나던 날, 집에서 이 빵을 쌀 때만 하더라도 이 빵은 따뜻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지금은 말랐고, 곰팡이가 났습니다.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부대도 본래는 새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낡아서 찢어졌습니다. 우리의 옷과 신도 먼 길을 오는 동안 이렇게 낡아서 해어졌습니다.”
여호수아기 9:6-13 RNKSV
히위 사람인 기브온 족속. 그러니 히위라는 국가 안에 있는 일개 부족이라는 뜻이었겠죠. 당시 아직 청동기 후반이면 부족사회를 못 벗어났을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여튼 이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속이려 시도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주님께 묻지도 않은 채, 그들이 가져 온 양식을 넘겨받았다. 여호수아 는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려 준다는 조약을 맺고, 회중의 지도자들은 그 조약을 지키기로 엄숙히 맹세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과 조약을 맺은 지 사흘이 지난 뒤에, 자기들과 조약을 맺은 사람들이 가까운 이웃이고, 자기들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리로 가서 보려고 길을 떠났는데, 겨우 사흘 만에 자기들과 조약을 맺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여러 성읍에 이르렀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성읍은 기브온 과 그비라 와 브에롯 과 기럇여아림 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회중의 지도자들이 주 이스라엘 의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조약을 지키기로 그들에게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칠 수 없었다. 그래서 온 회중이 지도자들을 원망하였다. 그러나 모든 지도자들이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그들에게 맹세하였으므로, 그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할 일이라고는, 그들을 살려 두어서,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세 때문에 받게 될 진노가 우리에게 내리지 않게 하는 것뿐입니다.
여호수아기 9:14-20 RNKSV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이 기브온에 비해 굉장히 세력이 강했고, 마음만 먹으면 전멸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술자의 민족의식이나 애국심이 굉장히 강하게 녹아있습니다.
여튼 화친을 이미 맺었기에 기브온 족속을 죽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 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그렇게 속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주 하나님이 그의 종 모세 에게 명하신 것이 참으로 사실임을 우리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주라고 명하셨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다 죽이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들어서 알았습니다. 우리가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 때문에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니, 처분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여호수아 는 그들을 보호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여호수아기 9:24-26 RNKSV
덕분에 평화적으로 세력을 흡수하였습니다.
창동기문화권 입장에서 강력한 무기와 세력을 가진 외부침공에 저항하기보다는 항복하는 것이 낫죠. 그런 식으로 평화적으로 흡수된 세력들이 있었을 것이며, 이를 율법적으로 혹은 영웅서사시에 걸맞는 구조로 재집필한 흔적입니다.
결과적으로 여호수아군의 명성을 강조하는 트릭이고, 이를 읽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과거의 융성한 역사를 접하며 가슴이 뛰었겠죠. 마치 고구려 전성기 역사를 읽으면 대한민국의 300만 초등학생들이 가슴이 뜨거워지듯이요.
저는 여호수아를 건국서사시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