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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May 26. 2020

식물을 죽이기 싫어서 만든 신기술

미래 농업의 트렌드

  농업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루는 산업이다. 생장중인 식물의 영양상태도 살펴봐야 하고 질병이나 벌레의 유무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모든 문제요소를 성공적으로 배제하고 작물을 길러내는 데 성공하였더라도 적절한 시기에 수확하여 상품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 지금까지 여러분이 갖고있는 선험적인 지식을 모두 배제하고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집 앞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의 상태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육안으로 외관을 관찰하는 행위일 것이다. 심각한 질병이나 벌레의 출몰 따위는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상당히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컨택트>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가장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은 상추 잎을 따서 먹어보는 것이다. <컨택트>를 통해 상큼쌉싸름한 맛과 함께 상추의 하얀 진액에서 올라오는 풋내까지 만끽했다면 이 상추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신선도는 물론이거니와 식감을 통해 엽면조직의 성숙도와 수분 함량까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컨택트> 방법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입으로 삼킨 부피만큼의 시료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나머지 시료에는 상처도 생겼고.


  육안으로 외관을 관찰하는것보다 조금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살아있는 식물의 상태를 진단하는 <콘택트> 방법으로는 일부를 잘라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거나, 유기용매에 녹여서 알칼로이드를 분리추출하는 방법 등이 있겠다. 혹은 식물 내부에 전극을 삽입해 뿌리와의 전도도 차이를 분석하는 방법도 있겠고. 그런데 이런 <콘택트> 방법은 대부분 시료를 훼손한다. 더 정밀한 방법일수록 더 훼손의 정도가 심하다.


  쉽게 말해서, 살아있는 식물의 상태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식물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식물을 반으로 갈라버리면 그 식물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식물과의 젠틀한 <컨택트>,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지금까지 농산업계는 수없이 많은 작물 중 일부를 선택해 싹둑 잘라버리거나 갈아서 성분을 분석하는 <샘플링> 방식을 활용했다. 샘플로 선택된 일부 작목은 죽어버리겠지만, 거기서 나온 값을 전체 작물의 대표값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컨택트> 방식이다.


  이 방법은 효율적이다. 대량의 상품의 퀄리티를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대표값이 아닌 나머지 작물의 직접적인 상태는 추론값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소한 문제와, 실시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문제 말이다.   



    샘플링 철학 자체의 문제  

  멸종위기나 천연기념물, 혹은 대마같은 마약성 작물의 경우 샘플링이 어렵다.


  첫째로, 희귀 작물은 개체수가 적기 때문에 일부 개체의 생명을 앗아가는 <컨택트>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연구실에 샘플이 한 포기 뿐인 경우를 상상해 보라. 그 친구를 분석하기 위해 줄기를 싹둑 잘라버렸다간 연구원의 밥줄 또한 싹둑. 기관 연구비도 싹둑. 무섭다.


  마약성 작물의 경우 법적 규제로 인해 어렵다. 상상텃밭은 대마재배사 면허를 취득해 대마를 재배하고 있다. 재배사 면허로 할 수 있는 연구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온습도를 다르게 줘 보거나 조명을 조절하는 정도? 우리는 담당 공무원의 허락을 받아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실험은 모두 해 봤다. 무성생식에도 성공했고, 밀폐형 스마트팜 내에서의 인공광 화아분화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을 잘라서 내부를 들여다보거나 성분검사를 할 수는 없다. 연구용 면허를 취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규제를 받는 작물은 <컨택트> 자체가 곤란하다. 시들어 떨어진 잎조차 못 건드린다. 공무원이 보는 앞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떨어진 잎을 주워담고, 공무원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려야 한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보기 위해 꽃봉오리를 잘라서 크로마토그래피라도 돌려버린다면 그대로 쇠고랑을 차야 한다. 스마트팜에 갇힌 작물마냥 유치창에 갇힌 신세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귀하신 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컨택트>기법을 사용할 수 없다.  



시간성의 문제  

  이 또한 샘플링 철학 자체에서 기인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씨앗을 심어 새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어 열매가 생기는 과정까지를 들여다보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씨앗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보려면 씨앗 상태에서 무참하게 <콘택트>를 해버려야 한다. 그러면 씨가 발아해 새싹에서 생기는 일은 알 수 없다. 반으로 갈라진 씨는 새싹이 될 수 없으니까. 새싹을 갈라버리면 꽃봉오리를 알 수 없고, 꽃봉오리를 갈라버리면 열매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컨택트>로는 작물의 생육상태에 따른 상태진단을 실시간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업에서는 굉장히 많은 작물을 동시에 심어서 일부는 씨앗일 때 <컨택트>하고, 살아남은 녀석 중 일부는 새싹일때, 나머지 일부는 꽃봉오리일때 <컨택트> 해버리는 식으로 식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분석한다.


  과학적 탐구를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덕분에 ‘꽃봉오리가 하는 일’ 또는 ‘씨앗이 새싹이 되기까지 일어나는 과정’ 따위를 밝혀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앞마당에 심은 씨앗이 새싹이 되었는데, 지금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위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바로 <디지털 콘택트>다. 식물과 비대면, 비접촉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지금부터 <식물과의 디지털 콘택트>에 대하여 설명해 볼 것인데. 음. 개념 자체가 낯설고 어렵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이 개념을 구현하는 과정은 조금 더 낯설고 조금 더 어렵다. 우선 계(시스템)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계라는 단어는 낯설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들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익숙할 것이다. 계가 바로 시스템이다. 물리학에서는 어떤 구성요소들이 체계적으로 모인 집합을 계라고 부른다.


  비닐하우스는 계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재배장치도 계다. 재배장치 안에 있는 식물과 양액(영양소가 녹은 액체)의 집합도 계다. 식물 자체도 계이며, 식물을 구성하는 뿌리, 줄기는 물론 하나하나의 세포 또한 계다. 식물과의 <디지털 컨택트>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식물이 포함된 계와의 <디지털 컨택트>라고 할 수 있겠다.


  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열역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계의 개념을 활용한다.


열역학에서의 3계



열린계

  물질과 에너지가 모두 출입할 수 있는 계를 말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밀폐되지 않은 대부분의 물체가 열린계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뚜껑이 열린 페트병은 내부에 물을 집어넣을 수도 있고 공기가 통하기도 하니 물질의 출입이 가능하다. 또한 빛이 통과할 수 있는데다가 냉장고에 넣어두면 내용물이 차가워지므로 에너지의 출입도 가능하다. 따라서 뚜껑이 열린 페트병은 열린계다.


닫힌계

  물질은 출입할 수 없지만 에너지는 출입하는 계를 닫힌계라고 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밀폐된 물체들이 닫힌계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뚜껑이 닫힌 페트병은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으므로 물질의 출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병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내용물이 차가워지므로 에너지의 출입이 가능하다. 따라서 뚜껑이 닫힌 페트병은 닫힌계다.


고립계

  에너지 출입도 불가능하고 물질의 출입도 불가능한 계를 고립계라고 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우주 전체 외에는 고립계를 정의하기가 어렵다.



  계의 바깥에 있는 영역을 우주(또는 주위)라고 부른다. 계에서 출력된 물질이나 에너지는 우주로 입력된다. 반대로 우주에서 출력된 물질이나 에너지는 계로 입력된다. 질량과 에너지는 보존되기 때문에 계와 우주의 에너지(질량의 경우 결손에너지 E=mc^2로 환산) 총합은 일정하다.


  즉, 계를 직접 관찰하는 것이 곤란하다면 계를 둘러싼 우주를 관측하면 된다는 뜻이다. 이게 식물을 살아있는 채로 관찰하기 위한 <디지털 컨택트>의 기본 철학이다.


식물 주위의 계

  식물 내부로는 물, 이온, 공기가 출입한다. 따라서 식물은 열린계다. 식물 주변의 공기 또한 식물과 물질(공기)를 주고받으므로 열린계다. 식물 뿌리를 둘러싼 양액 또한 식물과 물과 영양소를 주고받으므로 열린계다. 대기-식물-양액 세 가지 구성요소로 구성된 커다란 계 또한 열린계다.


  여기서 나는 대기는 무시하고 양액에 집중하기로 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대기와 식물 사이의 물질/에너지 교환은 측정이 곤란하다. 식물과 대기는 산소,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의 기체와 열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것을 정밀하게 측정하려면 굉장히 정밀한 장비를 동원해 큰 수고를 기울여야 한다. 농장 면적이 조금만 넓어져도 장비값으로 밭을 통째로 사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작 채소 따위를 키우기 위해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둘째로, 정밀제어 스마트팜 시스템에서 공기는 식물보다 더 강력한 공조기와 소통한다.


스마트팜 내부 계


  공조기라는 열린계의 주된 목적은 대기와 열에너지, 수증기를 교환하는 것이다. 사무실에 있는 에어컨을 생각하면 된다. 대부분의 공조기는 힘이 굉장히 강력해서 대기의 온도와 습도를 거의 일정한 수준으로 제어한다. 실질적으로 식물이 방출한 열에너지와 수증기는 대기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니라, 대기를 잠시 거쳐 공조기로 이동한다. 덕분에 식물과 대기의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양액 그 자체를 탐구하는 데에도 약간의 한계가 있다. 양액의 수분은 시시각각 증발하여 대기로 이동하고 있고, 이 수증기는 또다시 공조기로 빨려들어가 계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민끝에 대기와 양액 중에서는 양액에 집중하기로 했고, 양액이라는 계 안에서는 이온에 집중하기로 했다. 용매인 물은 증발해서 사라질 수 있지만 용질인 이온은 증발하거나 갑작스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과의 <디지털 콘택트>란 양액 속의 이온을 면밀하게 들여다 보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이온을 들여다 보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복잡계

  계 중에서 복잡한 계를 복잡계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복잡계라는 녀석이 정말이지 음. 복잡하다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복잡계의 본질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예를 들어보자.


  기상청에서는 대기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날씨를 계산한다. 그런데 일기예보라는게 항상 맞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기상청이 실력이 없어서일까?


  절대 아니다. 날씨를 100% 정확하게 맞추는 것 자체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기가 복잡계이기 때문이다. 대기의 움직임은 나비에-스톡스 방정식(Navier-Stokes equations)으로 표현된다. 대기와 같은 압축성 기체를 표현하는 나비에 스톡스 방정식은 아래와 같이 생겨먹었다.


나비에-스톡스 방정식 (출처 : 위키백과)


  척 보기에도 어렵다. 이 식의 해를 구하는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일반해가 존재하는지 여부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니까 대기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상청에서 날씨를 100% 맞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잡계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인간의 세포도 복잡계고, 인체도 복잡계이며, 인간이 모여서 만들어진 사회 또한 복잡계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식물 뿌리에 영양을 공급하는 양액 또한 복잡계다. 양액은 고작 물에 10종류의 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용액일 뿐이다. 그런데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굉장히 복잡하여 쉽게 예측이 불가능하다


내 브런치에서 여러 번 소개한 양액 복잡계 [1]


  양액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그냥 눈으로 봐도 복잡하지 않은가? 특히 중심부에 있는 PO4와 BO3 패밀리가 악질이다. 이 녀석들은 수소 이온 여러개를 끌어당겨 붙들고 있다가 수틀리면 방출한다. 이런 물질을 버퍼라고 부르는데, 양액 내의 수소 이온 농도(pH)가 선형적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냐면 말이다.


  식물 뿌리는 양이온을 흡수할 때 수소 이온과의 정전기적 척력을 활용한다. 그리고 음이온을 흡수할 때에는 음이온과 수소 이온을 서로 모아 극성을 중화시킨 다음 빨아먹는다. 쉽게 말하면, 식물이 영양분을 흡수하는 과정을 관찰하려면 수소 이온의 농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중요한 ‘수소 이온 농도’는 PO4 패밀리와 BO3패밀리때문에 왜곡된다.


방해이온효과로 인해 왜곡된 값

  위 그림에서 파란색 값이 이론적 값이고, 주황색 값이 방해이온효과로 인해 왜곡된 값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양액에 녹아 있는 이온은 ISE(ion selective elctrode)라는 센서를 활용하여 측정할 수 있는데, 이 센서값이 복잡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A 이온을 측정하기 위한 센서를 용액에 담그면 B, C, D 등 다른 이온이 A 이온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면서 센서 전압을 왜곡한다. 혹은 센서에 있는 구멍으로 B, C, D 등 의도치 않은 이온이 밀려들면서 센서의 전압이 왜곡되기도 한다.


  ISE는 네렌스트 퍼텐셜(Nerenst Potential)이라는 전압을 측정하는데, 이 전압값 자체가 물리적으로 다른 이온에 의해서 왜곡이 가능한 값이다. 센서가 성능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물리학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노이즈라는 뜻이다.


  산 넘어 산이다. 양액 그 자체가 복잡계라서 관측이 어려운데, 그걸 관측하기 위한 장비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복잡계 분석

  양액 복잡계를 들여다보려면 계의 복잡성과 방해이온효과 두 개의 벽을 넘어야 한다. 다행히 나는 대학원시절 시스템생물학 연구실에 있었다. 양액 따위보다 훨씬 복잡한 생명체, 그 중에서도 암세포를 연구하던 사람인지라 복잡계를 분석하는 기법은 많이 알고 있었다.


  일단 ODE 네트워크라는 기법을 활용해 양액 복잡계를 모델링했다. 분석화학에서는 화학 반응을 ODE(상미분방정식)로 표현하더라. 그래서 양액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모두 상미분방정식으로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일종의 gradient descent(경사하강법) 방법을 활용하는 시스템 시뮬레이터를 만들었다. 시뮬레이터는 아래 방정식을 따라 작동한다.


양액 복잡계 시뮬레이터 업데이트 방식

  [Xi]는 i라는 이온의 몰농도(molarity)를 의미한다. 화학 반응식에서 어떤 이온이 몇 개 사용되는지 그 개수를 c에 지정하고, k는 반응 속도 상수라는 화학적 상수다. 위 식은 화학반응을 시간에 따라 미분하여 표현한 상미분방정식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양액 안에 이온이 50개 있다면 위 식을 50번 계산하는 것으로 네트워크의 다음 state를 분석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를 잘 수렴시키면 양액 복잡계의 거동을 예측할 수 있다. [1]



센서의 왜곡 해결

파란색 값이 이론값이며 회색 값은 방해이온효과로 왜곡된 값이다. 주황색 값은 머신러닝으로 보정한 값이다.

  센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작년에 머신러닝을 활용해 보정함수를 만들었다. [2] 이차회귀(quadratic regression)을 활용한 모델이라 학습 시간도 굉장히 짧고, 한 번 모델이 학습되면 이 모델을 활용해 노이즈를 제거하는 과정의 시간복잡도가 O(1)이다. 상수 시간 안에 실행되는 실전 알고리즘. 환상적이지 않은가?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렸을 뿐인데 이런 노이즈가 발생한다. Transient Response와 유사하다.


  그리고 올해는 딥러닝을 활용해 방해이온 효과 뿐 아니라 유체의 물리적 흐름으로 인해 생기는 오차 등 오만가지 아티팩트(artifact)를 한 번에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다. [3]


MSE Box Plot


  보통 산업계에서 2점 칼리브레이션, 좀 정확하게 한다는 곳에서는 3점 칼리브레이션을 수행한다. 위 그림에서 파란색 그래프는 10점 칼리브레이션으로 구한 값과 이론값 사이의 MSE(mean square error)를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우측의 노란색 그래프는 AI로 노이즈를 제거한 센서값과 이론값 사이의 MSE다.


  AI 성능이 매우 쓸만하게 나왔다. AI가 추론한 값을 임의로 추출했을 때, 그 값과 실제값 사이의 오차가 5% 이상일 확률(p-value)이 무려 0.017이다. 헤헤, 논문이다 논문.



  위 기술들을 잘 섞으면 양액이라는 열린계를 비교적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다. 이제야 식물과의 <디지털 콘택트>를 위한 기술적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제 양액계를 잘 살펴보면 식물계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A라는 클라이언트와 B라는 클라이언트가 각각 입출력장치를 구비했어도 그 사이의 통신프로토콜이 맞아떨어져야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양액을 측정하기 위한 센서’와 ‘식물’ 사이 또한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떤 프로토콜이 필요할까? 지금까지 고생한 것으로 센서-양액 사이의 프로토콜은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양액-식물 사이의 프로토콜을 고민할 차례다.



  양액과 식물 사이의 통신과정을 정성적으로 표현한 시도는 많았지만 정량적으로 표현한 시도는 몇 건 없었다. 그마저도 통계적인 접근인지라 식물 뿌리에서 실질적으로 골드만 방정식(Goldman Equation) 에 따라 양이온이 뿌리 내부로 유입되는 과정을 분석해 놓은 모델이 없었다.


양액과 식물 뿌리 사이의 상호작용 모식도. 수소 이온(H+)이 핵심이다.


가져다 쓸 수 있는 프로토콜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프로토콜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구 끝에 아래 수식을 유도할 수 있었다. [4]


내가 만들고, 사랑에 빠져버린 수식이다.


  이 수식은 식물 뿌리와 양액 속의 양이온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방정식이다. 놀랍게도 옴의 법칙인 V = IR로부터 유도된 것이다. 당시 맥주를 한 캔 하고 앉은 자리에서 수식을 유도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신기하다.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V_m은 세포막 안팎에 걸리는 전기장으로, 오로지 뿌리 내부와 외부의 이온 농도 차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값이다. 따라서 위 방정식의 마지막 부분은 식물 뿌리와 주변의 환경, 그리고 그들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항이다.


  D_A는 이온의 확산상수이며 M은 이온의 분자량이다. 따라서 두 번째 항의 분자인 D_A root(M)은 이온의 물리적 특징을 기술한다.


  k는 이온의 가수를 의미한다. 전자를 1개 잃어버린 1가 이온의 k는 1이고, 전자를 3개 얻은 3가 음이온의 k는 3이다. k값을 알면 이온이 가진 전하량을 알 수 있다. N_F는 패러데이 상수다. 따라서 두 번째 항의 분모인 (kN_F)^1.5는 이온의 전자기적 특성을 설명한다.


  S는 이온이 통과할 수 있는 영역의 표면적을 의미한다. 이온은 ‘채널’이라고 부르는 특수한 구멍으로만 지나다닐 수 있는데, 채널의 크기는 일정하므로 S는 채널의 개수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첫 번째 항의 S는 식물의 생장정도를 설명한다. S 덕분에 크기가 작은 식물보다 크기가 큰 식물이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B는 식물의 종에 따른 생리적 특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동일한 크기의 상추와 케일을 비교해 보면 그 둘의 영양소 섭취 경향에 확연한 차이가 생긴다. 이러한 ‘종에 따른 차이’가 바로 B를 통해 표현된다. 일단 내 이름을 따서 B에 ‘반병현 상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병현 상수가 바뀌면 영양 흡수 경향이 바뀐다

  식물-양액 시뮬레이터를 ODE 네트워크를 통하여 구현하고, 다른 상수를 모두 고정한 상태에서 반병현 상수만 바꾸면 위 그림과 같이 식물의 영양분 흡수율이 달라진다. 반병현 상수가 바로 식물과의 <디지털 컨택트>를 위한 프로토콜이다. 이 상수는 딥러닝을 통해 98% 정확도로 예측 가능하다. 특허출원은 해 뒀고 프린프린트도 써놨다.


  한국원예학회에서 운영하는 HEB라는 SCIE저널에 이 논문을 제출했는데 아래와 같은 평가를 받으며 리젝당했다.


리뷰어 1

  Maybe the manuscript will be published "Engineering journal", not HEB journal.


리뷰어 2

  안 읽음


리뷰어 3

  Subscribers of our journal are interested in crop models.  


  원예학계에서는 이런 접근이 마음에 들지 않은가보다. 현재는 에디터의 도움을 받아 다른 SCIE 저널에서 심사를 받고 있다.



  앞서 B는 식물의 생리학적 특징을 기술한다고 설명했다. B값은 새싹, 생장기, 착화기, 결실기 등 생장 정도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는 값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하루아침에 B값이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하루아침에 작물의 생물학적 상태가 급변했다는 뜻일 것이다. 보통 성장과정에서 극적인 변화가 하루만에 일어날 가능성은 낮을 것이므로, 이 경우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이런 시도도 가능하다.


  “며칠 전에 심은 상추의 B값을 보니 이제 수확하면 될 것 같은데요?”


  “딸기 B값을 보니 착화기에 들어갔어요. 인공수분을 준비하세요.”


  “대마의 B값이 아직도 생장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꽃을 틔우려면 생육조건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식물을 반으로 갈라보지 않고도 내부 상태를 외부에서 관측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말이다. 이게 바로 내가 제안한 식물과의 <디지털 컨택트> 철학이다.



  물리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 디지털 컨택트가 수행된다.


  식물 - 양액 - 이온 - 전극 - 아날로그 신호 - 디지털 신호 - 아티팩트 제거 - B 추론


  그런데 매번 위 과정을 수행하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다. 이걸 확 줄여버려야 현실에 적용하기 용이해진다. 딥러닝을 활용해 high-variance 모델을 학습시키면 위 과정을 상당부분 단축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실에서 수경재배 시설이나 스마트팜을 방문해 본 적 있는 사람들은 녹색 머리카락 같은 덩어리들이 관을 채우고 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이게 바로 녹조 또는 남조류다. 상상텃밭은 조류를 억제하며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의외로 많은 시설에서 조류를 방치하고 키우더라.


  조류는 식물과 영양경쟁을 하고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영양을 아예 넉넉하게 공급해 조류와 식물이 사이좋게 나눠먹어도 모자라지 않도록 제공한다면야 뭐. 조류를 방치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시설에서는 <디지털 컨택트>를 할 수가 없다. 하나의 양액 속에 식물과 녹조 두 가지 종류의 생명체가 섞여 있기 때문에 B값과 S값이 일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액 데이터를 factorization해야한다. <디지털 콘택트> 과정에서 수신한 데이터가 ‘식물’의 신호가 아니라 ‘식물과 다른 온갖 생명체들의 신호가 섞여있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 데이터 덩어리에서 ‘식물의 신호’만 추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비법 다 털어도 돼요?

  문제 없다. 이미 실적화, 특허화가 다 된 정보들만 공개했다. 이번 글에서 공개한 내용들은 내가 예전에 만들었던 것들이다. 나보다 훌륭한 과학자들이 외국자본을 등에 입고 달려들면 뭐, 순식간에 하셨겠지.


  그리고 B값의 추론이나 factorization 기법이 바로 상상텃밭의 비법이다. 한번 잘 생각해보자. B는 생물의 생리학적인 수치이므로 생물을 여러 번 다른 조건에서 길러 보며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상추의 B를 추론하는 과정은 과연 쉬울까? 상추는 잎과 뿌리밖에 없는 ‘엽채류’ 작물이다. 가장 간단한 식물체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조건을 바꿔가며 재배실험을 수행한다면 년간 수억원의 연구비를 태워 가며 5년은 관측해야 할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행위를 다른 영리단체가 앞장서서 수행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마음놓고 이론을 공개했다. 참고로 상상텃밭에서는 아무 작물이나 심어만 놓으면 B값을 실시간으로 추론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내 멋대로 분류한 농업 자동화


  농업의 자동화를 내 멋대로 분류해 봤다. 이번 글에서 소개한 내용은 ‘판단의 자동화’의 하위분류이며, 어떻게 보면 ‘연구의 자동화’에 해당하기도 한다.


  어떤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최적의 양액 조성을 밝혀내면 그게 논문이 된다. 그래서 현대에도 많은 연구팀이 작물의 양액 레시피를 밝혀내기 위해 고분군투하고 있다. 작물을 동결건조해 가루의 성분 조성을 살펴보며 양액의 러프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거기서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재배를 몇년간 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트렌드가 많이 바뀔 것이다. B값과 뿌리 내부 조성만 알면 최적 양액은 ODE 네트워크 시뮬레이터를 역방향으로 구동하는 것으로 바로 추론 가능하다. 대학이나 정출연 연구팀이 수년간 달려들어야 했던 연구분야가 이제는 몇 초 안에 해결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론적 설계, 복잡계 분석법, 인공지능. 앞으로 농업 분야의 많은 연구가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올 것이다. 이제는 농업을 연구하려면 물리학도 잘 해야 하고 화학도 잘 해야 하고 복잡계도 잘 알아야 하고 딥러닝도 잘 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미래로구만.


귀여운 상추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상추를 다치게 하지 않고서 분석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식물과의 <디지털 콘택트> 기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접근을 해 봤고,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복잡계 접근을 시도해버렸다. 어, 이게 다 상추가 귀여워서 생긴 일이다. 어떻게 저렇게 귀여운 상추를 믹서기에 갈아서 분석할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여튼, 엉뚱한 동기로 출발해 이렇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 한 영역을 함께 개척해 보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상상텃밭으로 초대하겠다.



[1] BAN, Byunghyun; LEE, Minwoo; RYU, Donghun. ODE Network Model for Nonlinear and Complex Agricultural Nutrient Solution System. In: 2019 International Conference on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Convergence (ICTC). IEEE, 2019. p. 996-1001.

[2] BAN, Byunghyun; RYU, Donghun; LEE, Minwoo. Machine Learning Approach to Remove Ion Interference Effect in Agricultural Nutrient Solutions. In: 2019 International Conference on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Convergence (ICTC). IEEE, 2019. p. 1156-1161.

[3] Ban, B.; Ryu, D.; Lee, M. Pan-artifact Removing with Deep Learning, on ISEs. Preprints 2020, 2020050381

[4] Ban, B. Mathematical Model for Secondary Transport of Cations at the Root of Plants. Preprints 2019, 2019090219 (doi: 10.20944/preprints201909.0219.v1).



  첨단기술을 적용해 다른 회사보다 가격을 대폭 절감한 스마트팜 구매를 원하신다면


  상상텃밭에서 미래의 기술을 함께 개척해 보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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