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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Dec 10. 2018

브런치를 그로스 해킹하다 (1)

코딩하는공익(11)

  그로스 해킹은 린스타트업 철학에 부합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성장을 뜻하는 그로스(Growth)에 해킹(Hacking)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마치 해커가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것과 같이, 회사의 성장을 해킹한다는 뭐 그런 의미의 용어라고 한다. 혹자는 회사의 성장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적 마케팅 철학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만 필자의 이해는 조금 다르다. 


  그로스 해킹은 개발자들이 만든 마케팅 방법이다. 고객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과 이를 분석하기 위한 IT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마케팅 수단인 것이다. MVP(최소 기능 제품)를 출시하여 시장의 반응을 탐색하고 고객이 더 열광할 만한 요소를 더해 나가며 시장과 기업 사이의 친화도(PMF)를 추구해 나간다는 것이 이 철학의 핵심이다. PMF가 달성되면 제품이 불티 나게 팔려 나갈 가능성이 어느 정도 담보될 것이라 본다. 다만 이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전략을 어떻게 짜고 지표를 어떻게 분석하는지가 이론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며 그로스 해커의 역량에 온전히 달려 있다.


  필자가 그로스 해킹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본 것은.. 음.. 언제였지?


  분명히 그 날 있었던 일들과 그 날 필자가 만났던 사람들은 다 기억난다. 국내 최고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매쉬업 엔젤스가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사에게 제공하는 교육 행사였고, 그 행사 장소는 강남역 메리츠타워의 네이버 D2SF 로비였다. 그날 상상텃밭 소개 PPT도 했다. 


  뒤풀이로는 엄청 맛있는 돼지 고깃집에서 1차를 했으며 필자의 옆자리에는 MBC 관계자가 앉아 계셨다. 그날 분명 상상텃밭 김 대표가 약간 늦게 참석했다. 매쉬업 엔젤스 신규 포트폴리오팀들과도 한 잔 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2차로 역삼역 인근 이자까야에 갔고, 3차로는 LP 레코드를 틀어 주는 고즈넉한 지하 바에 갔었다. 그리고 4차로 김 대표의 절친한 친구와 만나 한잔 하고 코인 노래방을 갔다. 그때 선곡했던 곡들도 기억이 난다.


  이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올해 봄이었나 작년 가을이었나. 국방의 의무가 이렇게 시간 감각에 좋지 않다.


  여하튼 어렵게 모셨다는 그로스 해커님의 강연을 통해 그로스 해킹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접했다. 첫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웹 플랫폼이 아닌 업종에 적용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당시 상상텃밭의 핵심 수익모델은 스마트팜의 시공과 농산물의 판매였다. 전자의 경우 웹 기반 노출은 전환율이 굉장히 낮을 것으로 판단했다. 전환율이란 광고에 노출된 사람이 광고주가 의도한 행동을 수행하는 비율을 말한다. 광고를 본 사람 중 실제로 결제까지 하는 사람의 비율을 생각하면 된다. 스마트팜 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들은 매물 한 건의 가격이 적어도 몇 천만 원, 크게는 몇억에서 몇십억 원이 된다. 이런 제품을 온라인에서 광고 배너를 보고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목표고객을 최대한 좁혀 컨설팅을 제공하며 시공 사례도 보여주고, 필요하다면 안동시의 상상텃밭 스마트팜에 초청해 실제로 제품이 가동되는 장면을 보여 주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팜 분야는 고객에게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지표를 확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농업 종사자는 연령층이 높다는 점 또한 이런 판단에 설득력을 실었다. B2G로 관공서에 납품할 경우에는 더더욱 웹 광고보다는 얼마나 입찰공고를 잘 들여다보고 있는지와 관공서에 인맥이 있는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돈을 펑펑 쓰면서 척박한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기에 가까운 미래에는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겠다만 현재 시장 분위기에서는 아직 웹 기반 스마트팜 마케팅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농산물의 판매 부분에 있어서는 파고 들 여지가 비교적 넓은 것 같아 장기간 고민을 했다. 


  본격적인 영업모델이 가동하며 고객이 확보되기 전에는 단가가 낮지만 거의 100% 판매가 보장되는 농협 공판장을 이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공판장은 농협에서 운영하는 농산물 경매장이다. 물건을 실어다 놓으면 하루 안에 경매가 진행되고, 수수료가 떼이긴 하지만 현찰로 판매 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다. 채소는 쌓아 두면 썩기 때문에 재고를 몽땅 쳐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통 농사 좀 잘 짓는다는 소리를 듣는 분들은 여기에 추가로 도매 납품 루트를 개척한다. 공판장 경락가에 비해 도매 납품 건이 단가가 조금 더 높기 때문이다. 즉 B2B만 하는 농업에서는 아래 수식이 성립한다.


보수적인 농가의 매출 효율성

  매출 효율성은 생산량 측면에서만 표현했다. x와 y에 각각 계수가 붙어 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첫 번째 성장 분기점이 여기다. y가 늘어나면 경작에 동일한 노력과 재화를 투자해도 매출이 성장한다. 이제 여기에 B2C까지 도입하게 되면 성장폭은 더 커진다. 일반 소비자들이 채소를 구매하면서 지불하는 금액은 상추를 기준으로 공판장 경락가와 비교하면 최대 15배까지도 차이가 벌어지고 아무리 차이가 적어도 7배 이상은 차이가 난다. 똑같은 땅에서 똑같은 비료를 주면서 똑같은 풀을 길러도 B2C비율을 높이면 매출이 7배에서 15배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성장 분기점이 생긴다. 


  그래서 전체 매출 대비 공판장 매물 비율이 적을수록, B2C 매물 비율이 높을수록 부농이 되고 강농이 된다. 그래서 한창 수확철에 농부들이 길가에 과일박스를 쌓아두고 자동차를 상대로 영업하는 것이다.


  그런데 B2C 매출이라는 게 쉽게 달성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구축한 신뢰도가 없다면 경쟁을 위한 출발선에조차 못 서보는 경우도 있다. 아울러 공산품과 달리 채소는 단기간에 판매처를 찾지 못하면 썩어버린다. 과일류와 달리 냉동보관도 어렵다.


  그렇기에 저 그로스 해킹이라는 신묘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하면 채소 B2C 매출을 견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장기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의 발단이 된 한 권의 책

  그리고 책 한 권을 샀다. 다른 부분들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로스 해킹 성공사례를 소개하는 파트가 가장 인상 깊었다. 성공한 그로스 해커들은 과감하고 창의적이며 광고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 중에도 저 생각만 했다. 핸드폰도 와이파이도 없는 공간에서 4주간 단절되어 있다 보니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로스 해킹을 한 번 제대로 공부해 보기 위한 실습으로, 그리고 한 명의 마케터로서 데뷔하기 위하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프로젝트 제목은 '코딩하는공익'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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