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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병현 Dec 19. 2018

배움을 나누는 개발자들의 축제와 피흘리는 공익

코딩하는공익(12)

  11월 둘째 주. 코딩하는 공익 시리즈의 첫 바이럴 루프가 성공적으로 돌아간 시점에 연락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오세용 기자입니다.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 오세용 님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 두 가지 제안이란 기고 문의와 인터뷰 요청이었다.

 

  기고 문의는 아쉽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 사이언스 특집호에 들어갈 기사인데, 필자는 데이터를 유려하게 다듬어 결론을 도출하는 작업보다는 뉴럴 네트워크 자체의 성능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인터뷰도 오프라인으로 진행하기에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우선 필자의 근무지가 시골인 점이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지만 당시 필자는 편도선 적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던 상태라 말 한마디만 해도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고, 조금만 피곤하거나 흥분하면 입에서 피가 수돗물처럼 콸콸콸 쏟아져 응급실로 뛰어가야 하는 몸 상태였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덕분에 랜선을 통해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개기자의 개터뷰' 시리즈 제6호이다. 너무 즐거웠다. 지금까지 해 본 인터뷰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인터뷰를 계기로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인연을 맺었다.


  https://www.imaso.co.kr/archives/4296


인터뷰 이후 마소를 두 권이나 보내주셨다.


드라마 출연 야망을 드러낸 오세용님


  필자의 글에 크게 공감해 주신 점도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정이 많고 유쾌하신 분들이라 필자가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기회가 왔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는 '마소콘'이라는 콘퍼런스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을 가진 개발자들이 모여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지식 교류의 장이다. 올해에는 '기술 부채 회고'라는 주제로 콘퍼런스가 진행된다고.


  기술 부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작성한 다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runch.co.kr/@needleworm/30


  여하튼 이런 흥미진진한 주제로 진행되는 콘퍼런스라니. 반드시 참석하고 싶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비용이었다. 필자의 월 급여 기본급은 대한민국 육군 일병의 월 급여와 동일하다. 소집 해제할 무렵이 되면 병장 수준의 월급을 받을 수 있으므로 한 달에 아이엠 그루트 원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출퇴근 비용으로 왕복 버스비와 점심 식대가 추가금으로 제공되지만 출근해서 점심 먹고 퇴근하면 소모되는 비용이므로 서울을 날 잡고 하루 다녀오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다. 그렇게 "아이엠 그루트"를 열심히 외치던 차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조병승 편집장님의 위엄


  다행히 조병승 편집장님께서 도와주셔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일행까지 데려올 수 있게 되었으니 숙박비 부담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부담이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 아아. 스마트폰 화면 밝기를 아무리 낮춰도 낮춰도 채팅창이 너무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그야말로... 빛... 그 자체... 덕분에 마소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금요일 밤에 상상텃밭의 이장훈 개발자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 노량진에서 저녁을 먹었다. 사회복무요원에게 노량진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물가가 정말 싸기 때문이다.


  필자가 노량진에 애착을 갖게 된 계기는 노량진에서 재수를 했던 친구 때문이다. 그 친구는 노량진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노량진 물가에 익숙해지니 다른 지역에서는 밥 한 그릇을 사 먹어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그는 재수학원을 떠난 지 5년이 되었는데도 가끔씩 단톡방에서 "혈중 노량진 농도가 부족하다"며 불쑥 노량진으로 떠나곤 한다. 그와도 스타트업을 차려보고자 의기투합했었는데 사무실은 무조건 노량진에 둬야 한다고 우겨대는 바람에 전혀 생산성 있는 이야기는 진행하지 못하고 맛집 투어만 하다가 끝났었다.


  아무튼 덕분에 필자도 노량진에 중독됐다. 변리사시험을 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서 지내며 시장선거에 투표권도 행사했었던 시절이 있다. 당시 역삼동에서 높은 물가에 허덕이며 점심밥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과 저녁은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쌀밥에 김을 싸 먹으면서 버텼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한 번씩 폭발하면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갔다. 거기서는 만 원이면 뷔페식으로 끼니를 두 번 해결할 수 있으며, 남는 돈으로 카페에서 음료수를 사서 산책을 즐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사육신공원 벤치에 앉아있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관계로 노량텔지어는 짧게 즐기고 여의도에 모텔을 잡았다. 콘퍼런스 입장은 오전 10시까지이므로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행사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했지만 배가 고팠다. 당이 떨어진 채로 강연을 듣는다면 반도 채 소화하지 못할 것이며 이는 연사에 대한 실례일 것이다. 마침 눈 앞에 버거킹이 있었다.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1) 패널도 가렸고 (2) 뒷모습이고 (3) 초점도 안 맞는다. 당시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진.

  와퍼는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건물 구조가 얼마나 복잡하던지. 아침부터 먹는 탄산은 뇌세포를 깨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 속도는 또 얼마나 느리던지. 초대를 받고 왔으며, 참석을 위해 매우 멀리서 왔고, 늦지 않기 위해 하루 일찍 와서 숙박하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였으나 결국 지각했다. 안 들여보내 주면 어떡하지?


  "멀리서 오셨나 봐요 많이 늦으신 것도 아닌데요 뭐."


에코백과 스티커를 사은품으로 받았다.

  다행히 입장할 수 있었다. 사은품도 받았다. 차마 햄버거 먹다가 늦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색한 웃음으로 자리를 모면할 수 있었다. 휴.



  AI나 시스템생물학 콘퍼런스였으면 알아듣는 척 좀 하면서 팔짱 끼고 끄덕끄덕 거릴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아니었다. 패널들이 하나같이 쟁쟁한 분들이시고 업계 경력이 풍부하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백엔드 전문용어를 사용하시는데 필자는 백엔드 경험이라곤 전혀 없다. 아니, 웹 경험 자체가 예제 코드 돌려본 것뿐이기에 따라가기 벅찼다. 미래의 자신이 구글링을 통해 지식의 빈 틈을 메꾸리라 믿으며 펜을 바쁘게 놀릴 수밖에. 이런 게 다 기술 부채의 일종 아니겠는가.


  그나마 수년간 빅데이터를 다뤄 왔기에 콘텐츠 자체는 따라갈 수 있었다. 글로써 공유해볼 내용들은 추후 '실패하는 스타트업' 매거진에 올려 보도록 하겠다.

 


  한빛미디어의 조희진 님, 그리고 한화 시스템의 박상현 님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박상현 님은 "이것이 C#이다"를 비롯해 유수의 IT 전문서적을 출간하신 분이다.


  필자는 마소콘 세미나 트랙의 '글 쓰는 개발자' 세션에 참석하는 대신 '뛰어난 글 쓰는 개발자'와 '그런 개발자가 쓴 글을 세상에 내어놓는 분'과의 담소를 즐겼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재된 사람일 것이다. 대화의 콘텐츠가 마를 줄을 몰랐고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렀다.


  아직 필자가 너무나도 얕게 알고 있었던 출판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다. 다른 필드의 전문가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즐거운 법이다. 새로운 글 방향에 대한 조언과 인사이트도 얻었다. 필자가 과연 역량이 될지 실험적인 글을 좀 적어 보고 괜찮다면 브런치를 통해 공개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필자는 글을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좌) 조병승 편집장님 (중앙) 필자 (우) 오세용 기자님

  마소 분들과 사진도 한 컷 찍었다!


  "병현님 40분 정도 강연 땜빵할 수 있죠?"

  "네? 저 같은 게 무슨 강연을 해요..?"

  "브런치 조회수 띄워놓고 이야기하면 되잖아요. 그거 시키려고 부른 건데."

  "으앙..... 저는 못해요....."


  출근하는 날도 아니므로 대가를 안 받으면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규정상 강연을 할 수는 있겠지만 병무청에서 걸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행여 품위유지 의무 위반 조항에라도 걸리면 어떡하는가. 민간 행사라서 더욱 눈치가 보였다. 훗날 좀 더 강해져서 돌아와 반드시 언젠가 마소콘의 코너 하나를 차지하고, 강단 위에서 춤이라도 한 번 추리라.

  


  오후 세션인 '가방끈의 적정 길이' 세미나를 참관하는 중 갑자기 몸이 엄청 덥게 느껴졌다. 외투를 모두 벗었다. 반팔이 되었지만 그래도 더웠다. 이때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캐치하고 바로 대처했어야 했다.


  세션이 끝나고 화장실을 갔는데 누군가 필자를 가리키면서 말을 걸었다.


  "어? 괜찮으세요?"

  "네? 뭐가요?"


  거울을 보니 한 줄기 코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하 이 정도야 우습지. 반쯤은 생명공학도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몸으로써 코피에 대한 지혈조차 못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당황하지 않고 매뉴얼을 따랐다.


  (1) 고개를 앞으로 숙인다. 뒤로 젖히면 기도로 피가 들어갈 수 있다.

  (2) 코뼈를 눌러 코 혈관을 압박한다.

  (3) 피가 멎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 분명 피가 점점 줄어들다가 멎어야 할 텐데 점점 더 양이 늘어나더니 콸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왼쪽 콧구멍에서 나오던 피는 비강을 가득 채우고 더 이상 공간이 없었는지 반대쪽 콧구멍으로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수도꼭지를 살짝 틀어둔 것처럼 계속 피가 흘러내렸어요."

  동행했던 이장훈 개발자의 증언이다.


  "병현님 괜찮으세요?"

  "네! 다음 글 소재 생겼어요! 대박!"

  "....."

  "농담이에요 저좀 살려줘요 119좀 불러주세요....."


  코피가 이렇게 많이 난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결국 누리꿈스퀘어에 피의 흔적을 남겨 영역표시를 하고서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화장실에서 구조대원님이 엄청난 양의 거즈를 양쪽 콧구멍에 가득 가득 채워넣었다. 아직도 그 거친 손길이 잊혀지지 않는다.


  "콧 속을 지져야 할 수도 있어서 대학병원급으로 가야 해요. 가장 가까운 세브란스병원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하하 설마 지져야 될 일이 생기겠어요? 멈추겠죠."


  결국 4시간 반이 지나도록 출혈이 잡히지 않아 바이폴라(bipolar)라는 장비를 이용해 전기로 코를 지졌다. 5번이나 지졌다. 


  “조금 아파요.”

  “악!”

  “금방 끝나요.”

  “꺄악!”


  한 달 전에 했던 수술 부위가 터진 것 같다.

 

  “최근에 혹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혈압이 오를 만한 일을 겪거나 하지 않았어요?”

  “완전 많이 겪었어요. 진짜 많이 겪었어요.”

  “스트레스 관리 잘 하세요. 자, 한 번만 더 지질게요.”

  “아니 잠깐만 아니, 선생님, 야!”


  앞으로 인형 뽑기를 할 때 피카츄 인형은 거들떠보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출혈부위가 넓어 전기로 지지고 나서도 잔 출혈이 잡히지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안동으로 돌아가는 막차는 이미 오래 전에 끊겼다. 나와 같이 있어 주느라 서울에서 하루 더 머물러야 했던 이장훈 개발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전한다.


 너무 어지럽고 눈이 감겼다. 얼굴도 창백했다. 응급실 진료비로 11만원이 나왔다.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이대로 숙소로 간다면 체력회복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바이오 및 뇌공학과 석사학위 소지자로써 스스로의 몸을 면밀하게 진단하고, 치킨을 처방했다.

  

혹시 세브란스병원이 아니라 국군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으면 무료로 진료를 볼 수 있었을까? 아닌가? 그 밤중에 전문의가 직접 코를 지져주는 의료행위는 기대하기 어려웠을까?




  콧물과 희석이 되어서 양이 부풀려진 것이겠지만 대충 500ml가 조금 덜 되는 분량의 붉은 액체를 쏟았다. 이만큼의 피를 헌혈했다면 사람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소중한 자원을 그저 하수구에 쏟아버렸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5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커먼 피가 목으로 넘어온다. 당시 비강 전체에 피가 가득 찼었나 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체력이 다 회복되지 않아 무리한 일정을 삼가는 중이다.


  안동으로 돌아오자마자 수술을 했던 병원을 방문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일단 전기로 좀 더 지질게요.”

  “네? 아니 존경하는 선생님 전기는 아 그게 아 선생님 제발.”

  “스트레스 안 받도록 조심하시구요.”

  “선생님 혹시 이 전기로 지지는 의료행위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파요, 참아요.”

  “악!”


  심신이 한계까지 몰려있었다. 심적인 고생도 컸고, 덕분에 잠도 잘 못자고 하루하루 야위어 가고 있었으니 수술 부위의 혈관 한두 개쯤 터질만 하지.  


  마소콘의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 한 나약한 자신을 탓하고 있다. 마소콘, 한 달에 한 번 하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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