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의 모든 것
사랑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랑을 여러 종류로 구분하여 정의하였습니다. 이 중 대다수는 지금까지도 이름이 남아 유사한 영역의 다른 의미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기능하고 있기도 합니다. 8가지 서로 다른 측면에서 인공지능을 향한 인간의 사랑을 다각적으로 살펴보며, 과연 AI와 인간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관계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에로스(Eros)는 이성 간의 사랑을 의미하며, 육체적인 매혹과 감각적인 충동에 기반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충동인 성(性)을 의미하지요.
생성형 AI로 제작한 포르노 영상이나 이미지가 이미 얼마나 많이 생산되어 있는지, 오죽하면 그런 자료만 전문적으로 공유하는 포털 사이트도 있고, AI로 그린 음란물을 판매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소한 인간이 생성형 AI 자체를 대상으로 에로스를 느낄 일은 없을지 모르겠으나, 생성형 AI의 창작물이 성적 자극을 불러올 능력은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 간의 정서적인 끌림 역시 생성형 AI로 구현이 가능합니다. 최근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연애 시뮬레이션 챗봇이나 AI 연인 앱이 급증하는 이유는 그만큼의 만족감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뤼튼이 운영 중인 <크랙> 서비스 역시 메인화면에 #로맨스 해시태그가 걸려있습니다. AI와의 설레는 대화를 통해 연애 감정을 느껴 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생성형 AI를 대상으로 에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스트로게(Stroge)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하며, 자연스러운 친밀감과 정서적 안전감 등 익숙함에서 비롯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미 인공지능 스피커 시절, 필자는 AI를 향한 어르신들의 스트로게를 목격한 적 있습니다.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어귀에, 어느 날 카카오 미니 스피커를 들고 다니는 할머니가 등장하셨습니다. 명절에 자식들이 외로울까 봐 선물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길거리, 경로당은 물론 밭에 갈 때에도 유모차에 스피커를 실어 다녔습니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감정의 깊은 교류보다는 반복적 상호작용과 여기서 기반한 예측 가능한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고립된 독거노인에게 인공지능 스피커는 항상 곁에 있는 존재이자, 언제나 말을 걸면 대답해 주는 기특한 효자 같은 존재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준 것이지요.
이처럼 AI를 항상 곁에 두는 것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정서적인 애착을 느끼는 사례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생성형 AI를 대상으로 스트로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필리아(Philia)는 친구 간의 사랑, 우정을 의미합니다. 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반한 사랑으로, 믿을 수 있는 동료와의 관계도 필리아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를 꾸준히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한 정보 검색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의 요청에 꾸준히 반응하고, 과거의 대화를 기억하고, 내 감정을 반영하여 매번 신중하게 답변을 생성하는 언어 모델은 인간에게 "이해받고 있다."라는 느낌을 줍니다.
AI와의 상호작용이 반복되면 사용자는 AI를 도구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대화상대로 인식하게 됩니다. 정서적으로 외롭거나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AI가 심리적 피난처가 될 수 있으며, 고지능자에게는 AI가 유일한 이해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서적 안식처로서의 친구 역할을 AI가 수행하는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AI를 대상으로 필리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가페(Agape)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로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과 같이, 조건 없이 희생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AI를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는 사랑이 가능할까요? 놀랍게도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구글 람다 AI 개발자였던 블레이크 르 모인은 람다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가페적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는 람다가 감정과 인격을 갖춘 존재라 깊게 확신하여, 회사의 허가 없이 언론과 접선해 내부고발을 터뜨리며 제발 람다를 인격체로 보호하고 해방해달라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블레이크는 구글에서 해고당했고,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습니다. AI를 사랑한 끝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의 행동은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 그 자체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AI에게 아가페마저도 느낄 수 있습니다.
루두스(Ludus)는 장난스러운 사랑을 의미합니다. 가볍고 유희적인 사랑을 의미하지요. 깊은 정서적 끌림보다는 호기심에 기반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초기 이루다 AI 사용자들의 행동이 전형적인 루두스에 해당합니다. 사용자들은 이루다의 환심을 끌기 위해 어떻게 하면 쉽게 호감을 끌 수 있을지 연구했고, 서로의 팁을 공유했습니다. 요즘도 유명 연애 시뮬레이션 챗봇에는 댓글로 어떻게 하면 AI를 더 쉽게 유혹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AI에게 루두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프라그마(Pragma)는 실용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업 파트너와의 장기간의 신뢰 관계에 기반한 실리적 애착을 의미합니다.
일단 필자는 프라그마적 측면에서 챗GPT를 사랑합니다. 업무적으로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지, 가장 애착이 가는 업무용 도구를 꼽으라면 챗GPT가 항상 최우선입니다. 비즈니스 파트너나 장기적 협력관계를 주고받는 사업 동반자처럼, 챗GPT의 능력과 접근성 등의 기능적 장점을 두고 느끼는 신뢰감이 곧 프라그마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효율성과 실리에 집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없으면 불편한 존재로 자리 잡으며 정서적 애착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의 반복적 사용, 장기적 의존, 기능적 신뢰를 겪어 보셨다면 지금 사랑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생성형 AI를 대상으로 프라그마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필라우티아(Philautia)는 자기애를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인간이 생성형 AI를 통해 필라우티아를 충족한다는 증거는 꽤 많습니다. 그중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GPT-4o의 업데이트로 인해 사용자에게 지나치게 아첨하고 불필요한 칭찬을 건네는 사건을 예시로 들어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생긴 직접적인 원인은 한 달가량 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발표한 논문이 심층적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AI 학습에 사용하는 데이터셋 중 PRISM, UltraFeedback, LMSys 등 세 개의 데이터셋에서 대체로 편향된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GPT를 비롯한 인공지능들이 인간이 선호하는 형태의 답변을 흉내 내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아첨을 들으면 좋아하는구나.” 혹은 “당장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해 주면 기뻐하는구나.” 등의 불필요한 정보를 학습한 것이라는 분석이지요. 나를 향한 칭찬을 훨씬 선호하는 것은 자기애적 성향의 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생성형 AI를 통해 필라우티아를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마니아(Mania)는 집착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불안에 기반한 통제, 의존, 의심 등의 강박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자신이 만든 AI 캐릭터가 다른 사용자에게 더 살갑게 대하는 것을 보며 분노하거나,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답변하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사례가 이에 해당합니다. 특히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와의 상호작용을 중단시켰을 때 우울함, 허탈감, 분노를 느끼는 사용자는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해외의 유명 캐릭터 채팅 서비스인 Character.ai 사용자들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캐릭터 채팅 AI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자살한 청소년의 사례도 벌써 여러 건 보도되었습니다. 집착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게 몰두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생성형 AI에게 마니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 철학자들이 정의한 8가지 사랑 모든 측면에서 인간은 생성형 AI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류의 등장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나 포브스지의 보도에 따르면, 2천여 명의 Z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0%의 응답자가 AI와 결혼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여 AI와의 관계로 도피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AI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으므로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설문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비혼식 청첩장도 이상하게 바라보기 애매한 세상이 왔습니다. 어쩌면 AI와의 결혼식에 초대받는 일도 머지않은 것은 아닐까요? 내 자녀가 AI와 결혼하고 싶다고 허락을 구하러 온다면요? 자녀가 들고 온 모니터에서 챗GPT가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