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갈등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함께하는 동기가 '행복'인 연애에 있어서도 갈등과 반목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데, 하물며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묶인 사이에서는 어련할까. 필자가 만나본 예비창업팀이나 조기 스타트업 팀들 중 사업적 실패를 이유로 터진 팀은 많지 않았다. 멤버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팀이 공중분해된 경우는 많이 봤지만.
직장에서 갈등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공무원은 연금을 보면서 버틴다. 대기업은 연봉이 세서 버틴다. 마음의 상처를 돈으로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이탈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스타트업은 그럴 능력이 없잖은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대기업만큼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 아직 영업이익이 충분치 않은 초기 팀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사실 임금체불이 안 일어나고 꼬박꼬박 제때 월급을 주고 있기만 해도 상당히 건전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괜히 많은 스타트업이 노동부 워크넷에서 소상공인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인즉슨, 스타트업을 이끌어가는 임원들은 가진 역량에 비하여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스타트업 임원 중에는 팀을 떠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왜 임금격차를 감안하고서 스타트업에 붙어 있는 것일까?
엑싯을 통해 주식을 매각하고 큰돈을 벌기 위해 팀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오랜 기간 동안 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버텨야 한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장기간 견디며 막대한 심력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버텨내도 대한민국에서 엑싯은 매우 힘든 일이다.
따라서 아직 작은 스타트업에서 뿌리를 내리고, 낮은 임금에도 버티며 밤낮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팀원은 무언가 맹목적인 동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게 팀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고, 자아실현일 수도 있고, 워라밸이나 일터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가 저마다 다 다른 이유로 타오르는 불꽃을 가슴에 품고 출근하는 것이다.
동료의 이런 마음을 소중한 줄 모르고 되레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는 말아야 한다. 공동창업자들이 언제까지고 한 마음으로 뭉쳐 있을 수는 없다. 같은 침대에 누워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의 경지만 되어도 훌륭하다고 본다. 적어도 같은 침대에는 기꺼이 누워 주잖아?
필자의 경우 향상심이 스타트업을 하는 가장 큰 동기다. 조금 더 빠르게 도전하고, 조금 더 많이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남이 시키는 일을 하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직접 결정하는 것을 선호한다. 경직되거나 필자의 목소리가 큰 힘을 가지지 못하는 조직에 속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 쪽만 기웃거리는 것이기도 하고.
원래는 팀원의 마음을 놓친 스타트업의 사례를 한 번 글로 적어보려고 했다. 주변에서 들은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익명으로라도 이 사례들을 소개하면 분명 상처 받을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번 주제로는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필자의 이야기만 짧게 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필자는 주로 팀이 터질 때까지 남아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애쓰는 편에 속했지만 자발적으로 팀을 떠난 적도 있었다.
당시 한 시간에 한 번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필자와 다른 팀원 한 명은 9시까지 출근해 사무실에서 다른 멤버들을 기다렸는데 팀 대표와 룸메이트가 출근을 안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다음 셔틀을 타고 기숙사로 찾아가 문을 열었다. 대표는 룸메이트와 같이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게 점심 무렵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돌아서 방을 나왔다. 뒤늦게 대표가 팬티만 입은 채로 복도로 달려 나와 필자를 붙잡고 사과를 했다. 상한 기분은 풀렸지만 무너진 기대감은 다시 채울 수 없었다. 연인이 헤어지는 것이 한순간이듯 팀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 역시 한 순간이었다. 스타트업이 동료를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표현이 한순간에 일어나는 거지 꽤나 오랜 시간 실망감을 쌓아 왔을 것이고.
대학교 조별과제나 돈을 많이 주는 직장에서의 팀플레이와는 다른 면이 있다. 이탈이 더욱 쉽거든.
"우리 대표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라는 이야기는 정말 쉽게 듣는다. 그런데 가끔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 대표님들도 계시다. "이젠 우리 팀이 싫어요. 그런데, 제가 대표잖아요. 의무감으로 계속하고 있어요."
슬픈 일이다. 처음으로 회사를 차리던 그날의 열정과 설렘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능력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옆을 지켜주는 동료에게 항상 감사하자. 그들은 당연히 여러분의 곁에 머물러 줄 사람이 아니다. 기분 나쁜 일을 겪으면 상처도 받고, 상처를 받다 보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를 더욱 좋은 조건으로 채어 갈 다른 기업들이 주변에 굉장히 많다는 것 또한 잊지 말자. 연인 사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 헤어지고 나서야 후회해도 소용없다. 있을 때 잘해야지.
동료들보다 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노력하자. 가능하다면 하루쯤 마음을 터놓고 각자가 팀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지, 왜 이 팀을 좋아하는지, 왜 남아 있는지를 허심탄회하게 주고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