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니 파워>를 읽고
파란 바다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이며 물결을 칩니다.
오늘의 제 선곡은 스티비 원더의 이 곡, 저 곡이었고
저는 하도 들은 이 노랫말을 대충 외우고 있는 탓에 기분 좋은 흥얼거림을 종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손님의 한 마디가 제 기분을 너무나도 쉽게 가라앉게 만들었고,
이는 저로 하여금 또다시 어디론가 홀로, 오롯이 혼자인 채로 떠나고 싶다는 공상을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과연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발전했는가, 퇴보했는가.'
불현듯 떠오른 이 질문에 저는 쉽게 답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거든요.
과거의 나.
결혼 전의 나.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
애정결핍이 심했던 나.
구체적으로 저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시간을 꽤 들여 옛 기억을 뒤져보아도
과거의 제 모습은 뿌옇게 바래져 이리저리 뒤척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어느 날 밤에 침대에 누워있던' 저는 '지금의 나'를 위해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잠에 들기로 했습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이 가게를 열어야 하거든요.
나 자신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기고 이에 대한 해답이 절실할 때,
지나치게 감정에 휩싸여 기분이 가라앉을 때,
현실이 버거워 잠시 쉬고 싶을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훌훌 세상으로부터 떠나고 싶을 때,
저는 불교명상책,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경전, 마음챙김책 등을 찾아서 읽고는 합니다.
전적으로 수행을 하는 게 아닌, 그저 짧은 제 인생을 잘 살려고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로
여러 수행자 혹은 선인 혹은 스승들의 지혜가 담긴 책을 찾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애초에 제가 책을 펼쳤던 이유는 어느새인가 증발되고
깨달음이 되는 지혜만이 제 뇌세포 어딘 가에 옅은 색으로 기록되었음을 느낍니다.
어찌 됐든 저는 감정에 휩싸여 행동을 그르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담앤북스 에서 좋은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미카엘라 하스의 <다키니 파워>라는,
12명의 여성 수행자가 걸어간 삶과 깨달음의 여정이 담긴 책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붓다가 가부장적 보스라고 말이죠.
남녀가 불평등했던 옛 사회에서는
'여성은 태생적으로 불교의 깨달음을 완전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태어났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금강경에서는 불법의 지혜를 깨닫는 데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만요.
모든 사회현상은 책 속의 그것, 진리 속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는 법입니다.
책 속의 칸도 린뽀체는 말합니다.
"차별에 대해 공격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성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인내심이 많이 필요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성의 평등한 자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본보기가 되십시오."
이 구절을 읽는 저는 그녀의 말이 왠지 짠하고, 한편으로 조금의 분노가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성이기에, 굳이 남성이라면 쥐어짜 낼 필요가 없는 노력을 비구니들은 추가적으로 짜내야만 했으니까요.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세상은, 역시나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책 속의 또 다른 수행자 쌍게 칸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티벳불교가 가부장적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는 이유는 앞장서는 남성들은
확실히 많이 보이는 것에 비해, 여성들은 아주 적어 보이기 때문이죠.
"티벳 여성들이 잘하는 일, 맨 뒤에 가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나르는 이 모든 것은 문화적인 것들입니다."
"개념이란 단지 문화적인 이슈일 뿐 불법의 가르침으로써 금강승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요."
실제로 티벳 불교에서 여성이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한 진위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티벳불교 내에서 여성의 지위를 두고 이런저런 의견을 펼치는 것 보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과 함께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사실이 생각납니다.
이로서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불교에도 성차별은 그 색이 짙다 못해 검구나'를 알게 됩니다.
저는 책의 중반부에 나오는
'에이즈가 걸린 어느 스승의 후계자', '여자를 좋아하는 스승', '알코올 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스승' 등에 대한 내용을 읽고 그만 또다시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야 말았습니다.
예외적인 이 스승들을 보편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등장에 미간이 찌푸려지고 한숨이 나오는 것은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참 앞뒤가 맞지 않고 나란히 놓이지 않아야 할 사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인간이라는 생물체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는 생명체일까요?
결국 저는 위인들의 지혜가 꾹꾹 눌러 담긴 이 책에서 조차도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야 말았습니다.
개인적인 모든 가치관을 잠시 접어두고
저는 그동안 제가 읽었던 감사의 말 중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내가 자신을 믿지 못할 때조차 믿어 주는 영혼의 단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정말 언제인가 회상해봅니다.
오히려 지금은 부모의 사랑만이 '조건 없음'이라는 조건절에 부합하지 않나 확신합니다.
사랑에 어떻게 조건이 없을 수 있을까요? (모든 부모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
사랑이라는 개념에 현실을 담뿍 묻혀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도
이 책은 따뜻했습니다. 따뜻하고 단단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물렁해진 탓에 디딜 공간이 없어진,
마음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담앤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완독을 했고 그에 따른 제 생각을 나열합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