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의 <타이탄의 세이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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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제 완독을 마쳤습니다. 근데 지금까지도 내내 이 책 생각만 하느라 조금은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이게 내용이 쉬운 건가 어려운 건가 아니면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 건가 싶습니다. (혹시 이 책 읽으신 분, 어떠셨나요?�) 분명한 건 편히 두뇌를 쉬게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대신 온갖 집중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이야기를 진행시켜야만 하는 그런 소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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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드러난 이 책의 배경은 우선 우주와 지구, 시공간의 초월, 시간의 초월 그리고 그 속에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사실은 필연적인)의 발생 등입니다.
'지구의 모든 삶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식이죠.
이 책의 후유증.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 거창하던 소소하던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일들, 내가 할 선택들, 이런 게 진짜 다 이미 정해진 걸까?"
"한 번이라도 존재했던 것은 늘 존재할 것이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은 언제나 존재해왔던 것이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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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는 지구와 우주 그리고 시간의 경계를 무너뜨린, 시공간을 초월한 삶의 전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모든 존재는 '사랑'이라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당시 전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빠져나올 때 저는 조금 시시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뭐 세상 모든 게 어차피 기승전 "사랑"일 수밖에 없는 거야?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 또한 우주, 사랑, 관계 뭐 이런 것들이 주제가 되겠거니 싶었어요.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이 책의 주제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자아실현'이었죠.
이야기 말미에 소개되는 트랄파마도어인의 삶의 목적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하며,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인 거죠. 자. 아. 실. 현
그러나 제가 내린 이 결론은 제 스스로 이 책을 나열된 낱말 그 자체로만 흡수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반증일 뿐이었습니다. 사실은, 결국, 이 소설의 최종적인 주제 역시 [사랑]이었어요. 이는 트랄파마도어인 샐로와 인간 콘스턴트의 대화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누가 통제하거나 말거나 인간 인생의 목적은 주변의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그렇게나 오래 걸린 겁니다."
사랑이라는 고귀하지만 평범하고도 흔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 주인공 콘스턴트는 오랫동안 무지막지한 인생의 굴곡을 참고 견디고 흘려보냈던 것일까요? 작가 커트 보니것은 우리가 항상 우리 곁에 머무르고, 스쳐가고, 오려다 말고, 사라지고, 떠나는 사랑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이 소설을 쓴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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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사랑이 무엇인가요 여러분? 여러분은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행동을 하면서 살고 계신가요? 그것은 거창한가요 소박한가요? 혹은 책의 중심인물 럼포드의 말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 또한 '우주 위 어떤 이의 지시'일까요? 정말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끈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관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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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질문 봇도 아니고 질문을 너무나 남발했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질문의 폭격을 맞아버리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밖에요.
이 시점에서 제가 또 하고 싶은 말은...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는 제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요, 하루키가 존경하고 박찬욱 감독이 사랑하는 작가라고 합니다.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을 잃게 돼 기쁘다는 말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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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여정 속에서 사랑이라는 인생의 고귀한 목적을 깨닫는 동시에 자아실현까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생을 살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또한 모두 우주가 정해주기 나름일까요?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린 아내 비어트리스가 미래를 알 수 있는 남편 럼포드에게 불만을 토로하자,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난 롤러코스터를 설계한 것도 아니고, 소유한 것도 아니오. 누가 롤러코스터에 타고 누구는 타지 않을지 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롤러코스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뿐이오."
니체의 영원회귀가 떠오르기도 하고 톨스토이의 "종교가 없는 인간은 짐승과 다름없다"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무튼 그동안 책을 읽으며 흡수했던 이런저런 문장들이 이 책과 함께 제 의식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다른 분들의 해석을 조금 더 찾아보려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더 깊이 이 책을 받아들이셨나 무척이나 궁금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