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깨부수고
엄마는 소리 없이 울며 숨 죽이고
아빠의 고성과 엄마의 눈물이
자비 없이 오고 갔던 그 맨션에서도
나에게는 비밀스러운 행복이 하나 있었다
동네 교회 마당에 흐드러진 아카시아 나무
난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마다
교회로 달려가 아카시아 나무를 끌어안았다
나만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긴 포옹을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괜찮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지나던 아줌마가 몸소 시범을 보이며 아카시아 꿀을 쪽쪽 빨아먹는 시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대신 따준 그 꿀의 맛이 참 달고 맛이 좋았다
이제 나무는 나에게 꿀까지 빼앗기게 되었다
까치발을 하고 겨우겨우 아카시아 꽃 하나를 따서
그 끄트머리를 입에 가져다 대면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꿀꿀 아카시아 꿀
한 방울 남짓 나올까 말까 한 그 감질나는
아카시아 꿀의 달콤함 앞에서는
부모싸움이라는 심각한 일도
잠시 잊을 수 있는 일상일 뿐이었다
유치원이 끝나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날 기다리고 있던 초등학생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아파트 철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는
내가 나타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거기 니네 집
사람 죽은 집이야
살고 있던 남자가 목매달아 자살했다니까
어제 귀신 못 봤어?
응
못 봤어
아 그러면 오늘 보겠다
아니야
귀신 없어
있어
이제 이사 왔잖아
니가 뭘 알겠니
자비 없는 그 새끼의 말에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엉엉 울며 집으로 갔다
그 새끼도 끈기가 참 대단하지
정말 한 달 내내 그렇게 날 괴롭히다니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앞머리를 일자로 단정하게 내린 같은 반 여자애가
말했다
근데 넌 왜 아빠랑 성이 달라?
8살짜리 꼬마애가 설명하기에는 뭔가 어려웠고 복잡했다
내뱉어야 할 한 마디 대신
눈물방울 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앞머리 여자애 주변 애들도 나를 놀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성이 다른 게 놀림감인 건지
질질 짜는 눈물이 놀림감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 교실에 있던 애들 모두 알 수 없었겠지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니까
그렇게 너도 나도 웃어댔겠지
엄마에게 썰을 풀었다
엄마는 조언했다
그럼 이렇게 말해
넌 아빠 하나지? 난 둘이다
사랑도 두 배로 받고 있다,
이 말이다
다음 날
그 앞머리년이 날 또 놀려대기에
엄마가 시킨 대로 질러버렸다
애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더 이상 날 놀리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왜 성이 달랐는지
궁금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철문 앞에서 날 기다리던 그 새끼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우리 집도 이사를 가게 되어
더 이상 그 연놈들을 볼 수 없었지만
불행하게도 새로 전학 간 초등학교에서도
난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다
소심하고
잘 울고
항상 주눅이 들어있고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나무를 만났다
향기가 진한 게 기가 막혔다
그 교회는 아직도 있을까
아카시아 꿀은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직접 따서 먹어본 일이 없는데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항상 주눅 들어 있는 어린 내가 불현듯 날 찾아왔다
작고 못생긴 나를 보며
무서울 만했다
울만 했다
말해준다
그래, 정말
그럴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