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가 이혼할 때
아빠가 집을 떠나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한다
아빠는 이민 가방 비슷한 검정 큰 백을 한 손에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나에게 연두색 손수건을 건네며
한 두 마디 건넨 후 유유히 집을 나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어떤 말을 건넸는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
그때 아빠의 표정은 굉장히 편안했고 홀가분했다
마치 그저 짧은 출장을 떠날 뿐이라는 듯이
엄마는 자식을 두고 이혼하는 것이 역시나 헛헛하고 씁쓸하다는 듯
하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아빠와 내 모습을 몇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5살이었던 나는 이 상황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아빠가 왜 있는 짐 없는 짐을 몽땅 싸들고서는
나에게 마지막 선물을 건네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때 트인 눈치가 아직까지 사그라들지 않네
주제파악
상황파악
분위기파악
혼자 생각하고
혼자 단념하고
혼자 참고
벌써 30년이다
익숙할 만도 한데 왜 점점 더 힘들어 질까
생각도 단념도 참는 것도 점점 버거워진다
손수건에는 당시 유행하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연두색은 별론데, 하면서도 좋았었지 그려진 개구리가 갖고 싶던 캐릭터였거든
컴컴했던 그 방은 아빠와의 마지막 순간에도 컴컴했고
외로웠던 내 맘은 아빠와의 마지막 순간에도 외로웠다
그 방과 그 맘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까마득 불이 꺼져있고 외로움도 그 자리 그대로다
가끔 상상해 본다
부모가 이혼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재혼하지 않았다면
난 좀 다른 어른이 되었을까
마음이 평온했을까
어리광을 부릴 수 있었을까
외로움이 덜 했을까
눈치를 덜 볼 수 있었을까
아, 아니에요 엄마
그냥 지금 삶이 어려워 너무 어려워서 그래요
미안해요 이런 생각 이제 안 할게요
미안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