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운 일상 속 쥐어짜낸 짧은 글

by 니디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온 엄마를 두고 아빠가 말했다


정 안되면 헤어져야지 뭐 어쩌겠냐

다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

너도 싫고 나도 싫고 다 짐이 라는데 뭐 어쩌겠느냔 말이야

나 살겠다고 남 죽일 일 있어?

엄마 없으면 못 살겠는 건 내 사정이고

지금 당장 죽겠다는 사람부터 살려야지

나 살겠다고 남 죽일 일 있느냐구


아빠는 회사 말고는 엄마가 없으면 절대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는 사람인데

근데 헤어지겠다는 폭탄선언이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


이게 진짜 사랑인가


엄마는 아빠가 자기 아픈 것도 다 나 몰라라 한다고 단언했지만

그날 아빠는 누룽지에 물을 말아 김치와 겨우 한 술 뜨며 슬퍼하고 있었다

누룽지 한 사발을 지금 3일 동안 나눠먹고 있다면서 영 입맛도 음식맛도 없다고 했다

잇몸이 다 떠서 물에 불은 누룽지를 잘 씹지도 못하고 우물우물하면서 아빠는 말했다


엄마만 괜찮아진다면 뭐든 좋다, 일단 기다려봐야지, 그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오랜만에 딸내미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속을 터놓고 목소리를 낸 것이 후련하다는 듯이

아빠는 한 술 두 술 밥그릇을 비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격앙되고 슬펐던 아빠와 목소리와 표정은 현관문에 들어선 엄마를 보자마자

한 없이 밝고 명랑하게 바뀌어있었다


어~~! 왔어~! 수고했어~~!!


일단 힘든 티는 내지 않는 것이 아빠의 방법이었다

이러다가 곧 아빠 마음도 곪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따금 욱하면서 감정을 터뜨리는 아빠이기에

엄마와 같지는 않겠지, 합리화하며 집을 떠났다


마음이 불편하고 무겁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가족들의 눈치가 보인다


아 이로써 결국 내 문제로 돌아온다

또 잠식된다


요즘은 영 가벼운 순간이 없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순간이 참 없다


정말 없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언제부터 다 짐이 된 걸까


나 하나면 책임지면 됐던 시절

언제 이렇게 기척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걸까


정말이지 매 순간순간이 빗물이 고여있는 고무장화처럼 질척댄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매 순간순간이 한 겨울 내내 내린 함박눈에 무너져내리는 슬레이트 지붕처럼 부서지고 있다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마음만 잘 잡고 살면 된다는데

일단 내 마음은 제자리를 떠난 지 오래다

밝고 긍정적인 내 모습은 오랫동안 부재중이다


어디로 갔을까

언제 갔을까

왜 난 껍데기로만 살아가는 것일까


걸레 같은 거적데기를 들춰내보면 그 속에 알맹이가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없다


어디로 날 찾으러 가야 할지 모르겠어 일단 가만히 있는다

이게 무엇이든 그저 지나가기를 잠자코 기다린다 기다려본다

언젠가 끝나겠지 믿으며 태풍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휘둘리며 기다린다

차라리 태풍 한 가운데 있으면 좋으련만 태풍의 눈은 오히려 고요하다잖아


믿음을 잊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정말 길을 잃을지 몰라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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