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차린 우리집 생일상

언젠가의 7월에 있었던 이야기.

by 니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 근처 마트로 직행한 엄마는
장을 보느라 분주했다.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시장 리스트를 찬찬히 살피며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양 손 가득 쥔 시장거리를 식탁 위에 잠시 내려놓고
흘린 땀을 한번 닦고서는 부엌에 걸린 앞치마를 둘러멨다.

당면에, 갈비고기에, 큰 무우에, 미역에, 이것저것 야채까지.
얇다란 어깨에 가득 짐을 짊어지느라 팔에 빠알간 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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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오늘은 동생생일이다.
엄마가 분주한 이유다.

우리엄마는

식구들의 생일,
아빠의 회사 10년 근속,
할아버지 제사

사위 첫 맞이 등
가족의 '기념일'이 오면 항상 잡채와 소갈비찜을 만든다.

스페셜 데이에 걸맞은 엄마의 스페셜 요리는 바로 잡채와 갈비찜, 그리고 생일에는 미역국 추가.

'오늘은 막내의 날이니까 막내가 좋아하는 갈비찜이랑 잡채하려구.'
'오늘은 아빠 근속 10주년 이니까 잡채랑 갈비찜 하려구.'
'다음 주면 내 딸 생일이네, 뭐해줄까. 오랜만에 잡채랑 갈비찜 어때. 아니면 스테이크?'

아,
미역국은 꼭 생일 하루 전 날, 한 냄비를 끓여놓으신다.
딸이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좋아하니 절대 고기를 빠뜨리는 법은 없다.
나와 생일이 10일정도 차이 나는 동생 생일에는
미역국의 미역을 더 부드럽게 불려 들깨에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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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해가 모두 저문 8시 경에도
3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의 날씨였기에
퇴근길에도 내 발걸음은 축축 처졌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었지만
이어폰을 낄 열정도 없었음으로 무미건조하고 심심하게
월요일을 퇴근했다.

집에 가면 엄마와 아빠가 있으니
목소리는 밝게 해보리라 하는 다짐을 마음에 박아두고
2층 우리집의 도어락을 열고, 신발을 벗었다.

아빠는 식탁에 앉아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왔어~' 라고 밝은 목소리로 반겨주었고,
엄마는 아빠보다 좀 더 긴 말로 날 맞아주었다.

'내 딸, 수고했어. 얼른와서 잡채 먹어봐. 배고프지.
엄마는 싱거운데 아빠는 맛있단다. 엄마는 이상하게 맛을 모르겠다.'

메고 있던 가방을 쇼파에 던져두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엄마가 비닐장갑을 끼고 잡채를 한 움큼 담아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접시에.
찬장에 접시는 많지만 딸이 분홍색을 좋아하니 그저 예쁜 분홍색 그릇을 꺼낸 것이다.

'맛있는데? 하나도 안 싱거워. 맛있다.'

이 말을 내가 하며 잡채를 삼키고 있는 동안에도
엄마는 내가 먹을 갈비살을 발라주고 있었다.
뼈와 살을 모두 분리하고 나서도 엄마는,
고기가 좀 즐기다며 먹기 좋은 크기로 고기덩어리를 잘라주었다.

'동생은 30분 후에나 온대. 오면 미역국에 밥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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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근무를 마치고,
마트를 들려,
음식을 만들고,
뒷정리를 하고.

왠지 오늘 엄마의 요리가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난 자기 전, 오늘 음식 만드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엄마에게 넌지시 건넸다.
그마저도 약간은 부끄러워서 목소리를 흘렸지.

처음이었다. 엄마의 음식이 고맙게 느껴진건. 이건 사랑이었다.

평생 엄마 밥을 얻어먹어도 알지 못했던 그 사랑.

무지하게 커다란 사랑인데 나는 여지껏 그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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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 입이 오물오물 댈때마다
'배고팠구나'라고 말하던데 우리엄마.

미역국을 한 술뜨고, 젓가락으로 잡채를 한번 집을 때마다
'맛있냐'고 묻던데 우리엄마.

숟가락질이 더뎌지는 날 보고 배부르냐고 하면서도
'무 김치에 한 입만 더 먹어봐, 소화 빠르잖아'라며 웃던데 우리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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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있을 시간 동안,
몇 번의 잡채와, 갈비찜과, 미역국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 번 엄마의 사랑에서는 이렇게 말할 거다.

'그때, 동생 생일 때 보다 훨씬 맛있다.

고생했어 엄마. 고맙구,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