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사람 '살리는' 명상의 경험사람 '살리는' 명상의 경험
요즘 노력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명상'이 있습니다.
최근에 살면서 처음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저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름대로 내놓은 것이 명상이었죠. 원래 명상 자체에 대해 아무 지식이나 자각이 없던 내가 갑자기 명상을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을까 의문이긴 했지만, 일단 시작하기로 했죠. 안 좋은 생각들이 저를 더 이상 갉아먹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원인 모를 이 감정들을 깡그리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뿐, 그 외에는 성공적인 명상을 위해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명상이 대체 뭐지? 유튜브를 켜고 '명상'을 쳤습니다. 짧게는 5분부터 길게는 무지하게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명상 가이드 콘텐츠들이 수두룩 하더군요. 영어도 있고 한국어도 있고.
맨 첫날, 저는 영어로 된, 썸네일 이미지에 있던 세상을 초월했을 것은 아우라가 풍기는 가이드님에게 이끌린 저는 영어 명상 가이드를 재생 했습니다.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댓글 창에 '사람을 살리는 명상'이라고 적힌 한 마디를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명상을 하는구나, 잘 찾아왔다, 확신이 들었죠.
명상은 어렵지 않다는 그저 자신의 호흡을 먼저 잘 관찰하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자세를 잡았습니다. 척추는 곧게 세우고, 턱 끝은 약간 당긴채로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한다. 미간 사이는 힘을 빼고 편안히 둔다. 가장 중요한,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그 자세를 취했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 살포시 무릎 위에 내려놓은, 요가 혹은 명상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그 자세. 그렇게 명상을 위한 몸의 모양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때 방해꾼들이 나타났습니다.
시작한 지 40초를 막 지나고 있는데 방해꾼들이라뇨. 사방에 너저분한 짐이 널린 비좁은 공간, 개들의 사료 냄새, 지나가는 오토바이 엔진 시동음, 귓가에서 맴도는 모기 한 마리. 첫 번째 명상 시도는 5분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이번에는 주변정리를 먼저 한 다음 명상을 진행했습니다. 어떤 영상을 선택할까. 오늘은 영어 말고 한국 유투버님의 명상 가이드. 10분 짜리였고 타이틀은 '10분 동안 아무 생각 안 하기' 였습니다.
편하게 앉아 심호흡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하면서 그 호흡을 한 순간 한 순간 놓치지 않고 느껴보라는, 영어 명상 가이드와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호흡이 정말 중요하구나, 한 번 천천히 해봐야지 하고 깊게 들이쉬고 깊게 내쉬어 보았습니다.(호흡 수행을 이어나가는 명상을 '무드라 명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제 호흡이 무척이나 짧더라고요. 길게 하려니 숨이 오히려 답답해지고 머리도 어지럽고. 여간 불편한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10분은 참아야지 하면서 숨을 쉬어 냈습니다.
생각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흘려보내라는 가이드를 듣고 지금 몇 분이 지났지, 오늘은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에어컨을 틀고 자야겠다, 밖에 치킨 배달이 왔나 맛있겠다, 하는 생각들이 들어도 그렇구나 하고 흘려 넘겼습니다. 그렇게 4일 동안 잡생각이 떠오르고 가라앉고를 반복하는 수준의 명상을 하고 있던 5일째, 드디어 머릿속이 까맣게 비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신기한 형상이 눈앞에 펼쳐지기까지 했죠.
새카만 암흑 속에서 아주 작게 변해버린 나를 바라본 경험
그날은 호흡의 의식을 왼쪽 손끝부터 오른쪽 손끝까지, 발 끝부터 정수리 끝까지 옮겨 다니며 집중하자는 것이 저의 10분 명상의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제 몸을 들여다보았죠. 손가락 끝부터 팔꿈치, 어깨의 모서리, 턱 끝, 미간, 정수리 또 쇠골, 명치, 배꼽, 무릎, 엄지 발가락 끝, 새끼 발가락 언저리까지.
몸 탐색을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 했는데도 불구하고 울리지 않는 싱잉 볼. 척추를 곧게 펴고 턱 끝을 당겨 자세를 고쳐 앉은 다음 심호흡을 다시 한번. 그때였어요. 캄캄한 구멍 속에 빠진 듯한 느낌이 잠시 들더니 명상을 하고 있는 저는 거대하게 변해버렸고 저 구멍 밑바닥에는 아주 작은 제가 서 있는 것이 보였어요.
'작은 나'는,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고 걷던 저는 또 다른 어떤 작은 인간을 마주쳐 잠시 걸음을 멈추기에 이르렀죠. 내가 아닌 또 다른 그 작은 인간은 갈 길가던 저를 붙잡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건네 왔습니다. 저는 그 말들이 굉장히 쓸데없고, 들을 가치가 없으며 저에게 부정적인 감정들만 남기는 말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죠.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까지 내 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게 된 원인이 된 말들이었어요.
저는 '작은 나'가 그 말들을 무시하고 걷던 길을 마저 걸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하지만 '작은 나'는 그 말들에 일일이 반응을 하며 열을 내고 성을 내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나'는 '작은 나'의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무엇하러 피곤하게 저 말을 다 받아주나, 그저 무시하고 갈길을 가면 될 것을. 참 한심한 모습이구나.'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싱잉 볼이 곧 울렸고 저는 천천히 눈을 뜨고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나'와 '작은 나'의 모습이 꿈결이었는지, 제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형상이었는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경험을 하고 약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정말 또렷하게 그 시간과 이미지를 기억한다는 점이죠.
저는 이 명상 후 분명한 것을 얻었습니다. 부정적인 것들에게 감정은 흔들릴 수 있으나, 마음까지 반응하지 말자. 즉 일일이 부정적인 것에 대해 반응하지 말자. 쓸데없는 짓이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니, 보는 것 마저도 흉했다.
약간의 중력 조차도 받지 못하는 내 생각의 무게
'마음 비우기'가 주제인 이 날의 명상도 역시 10분 남짓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호흡을 정성스레 하고 난 다음 가이드님은 넓은 바다를 상상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 바다 위에서 넘실대고 있는 파도 속으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을 떠내려 보내라고 하셨죠.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워야 또 좋은 생각이 들어온다면서요.
하나 둘 생각을 끄집어내고 바다에 띄워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제 생각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파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습을. 기름때 같이 그저 물 위에 떠 있기만 한 모습을. 가라앉지도 못하고 그저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기름때들. 그것은 나로 부터 파생된 나의 생각들.
전 제 고민거리나 생각들이 꽤나 무거운 줄로만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제 감정을 동요시키는 것도 부족해 마음까지 요동치게 해 저를 지치게 만든 것들 이니까요. 근데 그런 줄로만 알았던 그 생각들을 저에게서 떼놓고 마주하니 별 것 아닌 것들 이더라구요. 한낱 먼지조차도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가라앉기 마련인데. '아, 이렇게 한 없이 가벼운 것들 때문에 내가 이리도 흔들렸던가.'
저는 갑작스러운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억울하기도 했나 봐요. 이때는 정말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올라온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기분이었어요. 서럽기도 하고, 진짜 짜증나고 힘들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되니까 허무하기도 하고.
이 날 명상은 그동안에 나는 마음에 얼마나 많은 슬픔의 이미지를 담고 있었던가.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내가 나를 다독여주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상 중에 눈물을 흘리는 일, 그것은 진정한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치유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어제, 제 10분 명상의 주제는 '사랑을 갈구하지 마세요'였습니다. 그리고 이 명상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이드님은 두 손을 포개 가슴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대로 따라 두 손을 제 가슴 한가운데 포개어 놓았죠. 이어 가이드님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하셨고, 저는 맨 처음에 남편의 얼굴, 그리고 바로 엄마와 아빠 또 동생까지 떠올렸죠. 남편 얼굴이 가장 먼저인 것을 보니 나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구나 하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요. 감사하는 마음이 피어올랐습니다. 역시 저를 살게 하는 부모님 그리고 마음이 예쁜 내 동생 까지. 바라만 봐도 눈물 나는 제 가족입니다. 포개어 놓은 두 손이 따뜻해집니다.
이어 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꺼내보라'는 말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라고 생각하며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나친 몇몇의 얼굴들은 그저 휘휘 날아갈 뿐 그 형상이 또렷해 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하려는데 갑자기 또렷해 지는 한 사람이 있었죠. 그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왜 제 얼굴이 등장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자존감도 높고 저를 충분히 아끼고 사랑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떠오른 제 두 눈을 보니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슬퍼 보였어요. 그 눈을 마주한 순간 저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던 제 가슴 위에 얹어져 있던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따뜻하게 달궈졌던 내 손이 이제는 원래의 내 것과 같이 차갑게 식어버리다니.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나를 떠올리다니.
이것은 굉장한 슬픔이 동반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제 가족들은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에게 사랑을 주고, 또 그 사랑을 나 자신이 느끼고 있으니 첫 번째 물음에 단번에 가족들을 떠올렸겠지만, 왜 그 반대는 내가 그곳에 서있었는지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저였습니다.
큰 의문을 안겨준 어제의 명상. 손톱을 자꾸 물어뜯어 그 모양 밉게 만드는 것이 그 이유인가, 쓰려오는 위를 무시한 채 빈 속에 커피를 들이키며 하루를 버티려 하는 것이 그 이유인가, 얼마 전 빗길에 넘어져 피가 흐르는 내 팔뚱이에 연고 하나 발라주지 않는 것이 그 이유인가.
답을 찾으려면 조금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슬프기는 하지만, 너무 늦지 않은 지금 중요해 보이는 이 사실을 발견한 나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살린다는 명상, 아마 이번 경험들을 통해 저는 그 명상의 신비로움을 약간의 맛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매일 명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명상을 나의 인생을 위한 연습장으로 삼아 계속해서 시간을 쌓아갈 작정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제 두 뺨 위에는 흐르는 눈물이 아닌 피어오르는 미소가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