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어떻든 계속 춤을 추기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를 읽고

by 니디

얼마 전 엄마의 책장에서 까슬한 종이가 노랗게 변해버린, 꿉꿉한 세월의 냄새가 잔뜩 배어있는 오래된 책을 한 권 꺼냈다. 나와 나이가 얼추 비슷한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다. 문학사상사가 92년 2월 17일에 재판을 냈으니, 초판은 그것보다는 몇 년 앞 선일이다. 이 책이 얼마나 오래되었느냐 하면, 서체나 크기는 지금의 책들의 그것과는 종류가 달랐고(명조체 느낌이다) 크기는 훨씬 작았다. 편집 자체도 종이 사면의 간격이 훨씬 넓어 말하자면 본문을 집약적으로 디자인한 모양이었다. 엄마 혹은 아빠가 탁하지만 두께감이 있는 비닐로 책 겉면을 소중히 싸놓은 상태는 그들의 딸내미가 문학을 이해할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역시 비닐은 세월이 얼마가 지났건 썩지 않는다. 사실 이런 것들은 지금과는 그 형태가 달라 나에게는 낯설기보다는 전연 새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책을 한 장한 장 넘기다가 텅 빈 노란 종이를 만났을 때는 새롭다기보다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것도 한 페이지라면 우와, 이런 일이? 하고 넘겼을 일이지만 무려 9페이지나 아무 글씨도 없이 텅 비어 있어 내용이 뚝 끊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을, 진즉에 폐기가 되었을 그 시절의 책. 물론 이것은 생산공정에서의 실수지 하루키의 실수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하루키의 허점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리고 나는 매번 틈이 많은, 허점이 많은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곤 한다. 하얗게 비어있던 182, 183, 186, 187, 190, 191, 193, 194 페이지에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페이지의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전이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이 페이지 쓰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 '멋대로 써보자. 하루키의 글을 내 멋대로 망쳐보는 거야. 그래 봤자 아무도 보지 않을 테니까'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뒤를 봐주는 양 아저씨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울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 주인공의 등 뒤를 지켜주는 그들이 있기에 주인공은 비교적 원만한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공간이 현실이든 현실의 연장선이든 현실의 이면이든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그만의 '백'이 있는 거다.


과연 나에게도 있을까. 물론 내 곁에는 부모님이 있고 남편이 있다. 강아지 두 마리에 고양이 한 마리도 있고. 하지만 그들은 양 아저씨와는 다르게 '현실'에 있다. 공기는 텁텁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운, 종종 대는 발걸음으로 내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 어찌 됐든 우리는 아무리 해도 현실밖에 세상은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눈을 뜨고 말을 지껄이는, 즉 깨어있을 때는 말이다.


책을 읽으며 켜켜이 쌓이는 궁금증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현실의 연장선'이다. 세상에는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는 지금 이외의 시간이 존재할까. 아마 그곳에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겠지. 상실 혹은 결여가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거다. 존재의 반대말인 부재. 또 다른 현실 세계는 텅 비어있을지, 아니면 어떤 무엇들로 채워져 있을지 나로서는 정말이지 알 수가 없지만, 나는 지금껏 살면서 언젠가 그곳을 여행한 적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7년 전, 기흉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을 때, 마취약이 온몸으로 퍼지고 머지않아 눈앞에 생경히 꼬리 치던 붉은빛의 그것이 그 세상의 모습일까. 아님 이 현실 또 다른 이면일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음악이 울리고 있는 동안은 어떻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이 말을 알아듣겠는가?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죠. 왜 춤추냐 하는 것은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에 없는 거요.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 그러니까 발을 멈추면 안 돼요. 아무리 싱겁기 짝이 없더라도, 그런 건 신경 쓰면 안 돼. 제대로 스텝을 밟아 계속 춤을 추어 대란 말이오. 그리고 굳어져버린 것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풀어나가는 거요. 아직 늦지 않는 것도 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쓰는 거요. 베스트를 다하는 거요. 두려워할 것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확실히 지쳐있어. 지쳐서 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무엇이고 모두 잘못돼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야. 그래서 발이 멎어버리거든.


현실의 벽 뒤쪽,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만을 의지한 채 주인공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양 아저씨가 주인공과의 대화에서 한 말이다. 계속 춤을 추라고. 이유는 알 거 없고 그냥 계속해서 스텝을 이어가라고. 춤을 추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뱀의 꼬리를 겨우 붙잡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하루를 살아내는 나의 모습 같다. 양 아저씨의 관점에서 보면 난 잘 살고 있는갑다, 생각해본다. 뱀의 대가리를 방패 삼아 여기든 저기든 움직이고 있는 것은 맞는 사실이니까.

우리는 가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숨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건 양 아저씨의 말처럼 지쳐있기 때문이다. 지쳐서 멈추고 싶고 숨고 싶고. 하지만 결국 우린 다시 일어나서 다시 걸음을 내밀지 않는가. 물론 어떤 이들은 전진을 그만둘뿐더러 현실까지도 포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우리 전부가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건 만성화된다고. 일상생활에 함몰해서 어느 것이 상처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리는 거야.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 있지. 상처라는 건 그런 거야. 이거다 하고 끄집어내어 보여줄 수도 없는 것이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건 대수로운 상처는 아니야.


"지금도 상처를 입고 있어요.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때때로 문득 죽어버리고 싶어요.


"쭈뼛쭈뼛해하면, '미끼'로 보이나 봐요. 그래서 구박하는 거죠.


나는 '말'이라는 것에 쉽게 상처 받고 눈물을 흘리는 타입이다. '말'이 내게 있어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자 유연한 부위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에게 '말'로 상처를 주면 그만큼 아픈 게 없다. 하지만 그 말로 인한 상처는 가끔은 엄청나게 사사롭고 개인적 일 수 있어서 매번 나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내보일 수가 없다. 만약에 내보인다면? 나로서도 그 '말'에 더 예민해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자체에 숨을 헐떡거리게 된다. 상대방 또한 나를 대하기가 버거워지겠지. 그래서 나는 한 번의 호흡을 꾹 참고 생채기 난 마음을 감춘다. 감추고 나면 없는 일이 돼버려 어느샌가 잊히고 말지만, 사실 상흔의 흔적은 거기 그대로 남아있다. 작음 틈을 열고 보여주면 좋으련만 나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달래주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다.


"때때로 그런 일이 있다. 무엇인가 하찮은 일에 내 마음의 가장 연한 부분이 건드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나에게 '말'을 '막'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내 기분을 말할까 말까 '쭈뼛쭈뼛'하고 있으면 더 지랄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시 잠깐의 찰나도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말을 뱉을 때는 이성을 거치지 않고 '감정'으로만 질러 버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을 개똥같이 하는 건가, 싶다. 정말 인생을 막 살 수도 없다. 흐름이 그냥 그렇게 짜여있다. 이 지점은 상처 구간 또 저 지점은 회복 구간, 뭐 이렇게.


"한 번 굳어진 건 제자리로는 돌아오지 않아.


이런 때는 평생 이렇게 할 말도 못 하고 쭈뼛쭈뼛하는 병신처럼 살아갈까 걱정이 태산처럼 쌓인다. 하루키의 말처럼 한 번 굳어진 건 결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니까. 원상복구 혹은 위치가 완전히 바뀌는 케이스를 정말이지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네의 관계 속에 데이트 폭력 혹은 가정 폭력이 존재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몇 달 전, 남편의 친구의 아내가 나를 두고 'ㅇㅇ는 특이하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남편에게 들은 것은 아니고 다른 친구에게서 들었다. 특이하다라... 나는 기본적으로 '특이'라는 개념 자체를 긍정적이고 새로운 것 그러니까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렇지, 나 특이해 라고 받아쳐버렸지만, 남편의 친구는 나만큼 '특이'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싶었다. '칭찬이지~~'라고는 말하지만 문장 끝을 흘려버렸기에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타인이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파악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겐 관계없는 문제였다. 그것은 나의 문제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 관계가 정말이지 요만큼도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은 정말이지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상관이 아예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빈틈 그 작은 구멍 사이로 타인을 보고 속단한다. 그들의 세계는 결국 그 틈 작은 구멍밖에 되지를 않는 거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자기만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는 내면에 채워져 있어야 삶을 살아가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자기 존재 자체에 웬만큼 만족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입든, 무엇을 들든, 무엇을 먹던, 무엇을 말하든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따금씩 현명한 사람들이 내뱉는, 자기 발전에 이익을 주는 말만을 차곡차곡 모아 두고 간직한다. 자아가 흔들릴 때마다 꺼내어 펼쳐볼 수 있게.


나는 이렇듯 남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평가하고,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댄스 댄스 댄스의 이 대목을 한 음절 한 음절씩 읊어주고 싶다. 자, 시작합니다. 잘 들어보세요.


"요컨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필요하는 것은 그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야. 자연히 생겨나는 게 아냐. 날로 되는 거야.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서의 환상을 부여받는 거야. 간단해. 정보를 자꾸 만들어가면 돼. 주거지하면 요미 부시입니다, 승용차라면 BMW입니다, 시계는 롤렉스입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정보를 부여하는 거야. 그러면 모두들 전적으로 믿어버려요. 주거지하면 요미 부시, 승용차는 BMW, 시계는 롤렉스 하고 말이야. 어떤 종류의 인간은, 그러한 것을 손에 넣음으로써 차이화가 달성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모든 사람들과 똑같아지고 있는걸 눈치채지 못하는 거야. 상상력이 부족해.





분명히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인 것 같아 보여도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그리고 그 반갑지 않은 변화가 어쩔 때는 너무나도 버거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양 아저씨의 말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스텝을 이어나가며 춤을 출 수 밖에는 없다. 하루는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 같아도 어쩔 도리가 없다. 유의미한 것을 찾기에 우리는 이미 지쳐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라는 선율 위에서 사랑을 하고 꿈을 꾼다. <댄스 댄스 댄스>에 따르면 여러 가지 사물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랑할 수 있고 기분 좋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다. 또 귀를 기울이면 구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뚫어지게 바라보면 구하여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난 되도록이면 듣기 좋은 음악만 듣고, 보기 좋은 풍경만 보고, 품고 싶은 사람만 품으며 살고 싶다.


정말 우연히 찾은 낡은 책장 속의 낡은 책. 나만큼이나 살아온 세월이 길어 이렇게도 나와 잘 맞는 걸까. 어떤 종류의 것은 어떤 종류의 것과 숙명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하루키는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나와는 너무나도 찰떡이 궁합이었다. 앞으로 종종 엄마 책장을 어슬렁거리고 또 한 번 보물을 낚아 보아야지. 역시나 좋은 책을 찾기란 얕은 냇가에서 반짝이는 금붙이를 찾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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