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암고양이를 읽고
만약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응'이라고 답했다면,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암고양이 속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까미유와 남자 주인공 알랭의 속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여자 주인공 까미유는 남편의 반려묘인 '사아'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 남편이 새 신부를 두고 자꾸만 자기가 키우던 고양이만 끼고 도니까 이 고양이가 아주 눈엣가시가 된 것이다. 거기다가 자신에게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그의 태도는 이 고양이 '사아'만 발견했다 하면 별안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돼버리니 아내인 그녀로서는 아주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제 겨우 19살인 새 신부 까미유는 그녀 내면에서 타올랐다가 식었다가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조차 없다. 여자의 체면을 살리고 아내로서의 위신을 지키고자 차분한 행동거지를 이어가는 까미유지만 당최 남편 곁에 고양이만 어슬렁거렸다 하면 겨우 잡고 있던 까미유의 인내심의 끈도 팽하고 끊어지고 만다.
이놈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결혼 전 마지막 웨딩드레스 가봉에도 동행하지 않았다. 여자에게 그리고 새신부에게 드레스 가봉이 얼마나 중요한 행사이거늘. 그것도 모자라 결혼한 후에는 더 가관이다. 모두가 잠이 든 새벽, 남편은 매일 같이 도둑 고양이 마냥 침대를 슬그머니 빠져나가 전실에 길다랗게 앉아있는 벤치에서 암고양이 '사아'를 만난다. 그들은 은밀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만의 비밀을 쌓아가고 있다. 희미하게 스며드는 달빛을 벗삼아 그들의 애정행각은 하루가 다르게 더욱 애틋해지고 몸집이 비대해지고 있다. 커다란 침대 위 폭신한 이불은 그녀에게 물 먹은 솜이불 마냥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그에게는 대놓고 아무런 티를 내지 않는 이 소심한 아내는 그저 검지 손가락을 구부려 이불을 꾹꾹 누르며 오늘도 인내와 고난의 밤을 간신히 넘기고 있다.
이러한 모든 상황으로 인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사아'에게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그녀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은 남편과 아내, 그 둘 사이의 차츰 높아지는 가림막에 시멘트를 발라버린 격이었지만 물론 나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녀는 19살이라는 정말이지 너무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 나이는 매일 새 옷으로 몸을 치장하고 독한 향수로 체취를 가리는, 두꺼운 파운데이션으로 누렇게 뜬 얼굴을 환하게 칠하는 그런 나이다. 밤이면 달이 없어도 그녀 때문에 주위가 환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였다. 어찌됐든 결혼을 함으로써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만 했던 그녀는 시가 눈치 보랴, 친정 눈치 보랴 거기에 고양이 눈치까지 봐야 할 자신의 현실이 여간 짜증이 났을 것이다. 제 감정을 속 시원히 표출도 못하고 말이다. 아니, 그녀는 결국에는 감정을 드러냈다. 사아에게 '그런 짓'을 하는 방식을 통해서.
결론은 알랭이 아내와 고양이, 여자 둘을 한 아파트에 덩그러니 놔뒀으면 안 됐던 것이었다.
"내가 당신들 둘을 봤어! 아침마다, 당신이 저쪽 작은 벤치에서 밤을 보낼 때... 해뜨기 전, 당신에 모습을 봤어, 단둘이...."
"둘이 함께 앉아서.... 당신네들은 내가 말을 해도 듣지도 못했지! 그렇게 서로 뺨을 맞대고 앉아서..."
"자기는 보통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경우와는 달라.."
"어떤 고양이라도 자기가 저놈을 사랑하는 만큼은 사랑하지 않았을 테니까"
까미유는 정말 지독히도 고양이를 질투하고 있다. 내 배우자와 반려묘가 서로 뺨을 맞대고 교감을 하는 모습을 봤다고 가정해보자. 웬만큼의 질투가 아니고서는 결코 까미유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들 반려동물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교감을 하고 있는 않는가. 도대체 그것과 다른 맥락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까미유는 마치 암고양이를 '여자', 이를테면 그녀의 남편과 내연녀가 밀회를 즐기는 것과 같이 느꼈고 또 그렇게 묘사를 하고 있다. '밤을 보낸다'던지, '단 둘'이라 던 지, '뺨을 맞대고..'라던지 말이다. 정말이지 이 까미유는 암고양이를 그저 사랑스러운 반려묘로 볼 수는 없었을까?
내 배우자의 반려동물, 결혼 후 '나의' 반려동물이 될 수는 없을까? 꼭 질투의 대상으로만 느껴야 할까?
남자 주인공, 아내보다 자신의 암고양이에게 더 사랑을 쏟아붓는, 그러니까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만 '육체관계'를 할 때 빼고는 아내보다 고양이의 꽁무니만 쫒아다니는 남편 '알랭'은 사실 결혼 전부터 심각한 혼란스러움에 괴로워했다. 이제 곧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만 빼면 그의 주변, 즉 그가 나고 자란 생가와 언제나 그렇듯 멋들어진 정원, 평범한 꽃무늬의 벽지가 발라진 그의 방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암고양이는 정말이지 예전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자신의 우주는 조금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인데 하루아침에 자기만 그 아늑한 공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니, 그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것이 강제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까미유다. 그래서 알랭은 자녀계획을 말하는 까미유를 보며 '아주 작정을 했나 본데... 내가 이럴 줄 알았지!'라고 생각하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알랭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선인 것이다.
"거만한 붉은 입술에서 떨어진 예언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소리여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까미유가 알랭의 과거 잔해들을 헤치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에 평온하게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주 작정을 했나 본데..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좋은 엄마가 될 줄 알거든. 직접 겪어보기도 전에 말이야"
"당신은 장미 향기 같아. 입맛을 잃게 해"
알랭은 틈이 조금이라도 난다면 여느 고양이처럼 구멍으로 들어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몸을 숨긴 채 그의 텅 빈 동공만으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몸을 사리고 싶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다.
"말하고, 또 말하고 계속 말을 해야 하는구나."
'그는 그저 조용히 있고 싶었다. 바라는 건 흔한 색깔 꽃무늬 벽지를 바른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뿐이었다. 무엇보다 눈물을 펑펑 쏟고만 싶었다.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래야 뭔가 메워질 것 같았다.'
아내가 잠든 후 전실로 나와 '진정한' 휴식을 즐기는 알랭. 이따금씩 아내의 예쁜 외모와 당당한 태도에 반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외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녀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몸으로 나누는 사랑은 때로는 사랑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모든 희열이 끝나고는 암고양이 '사아'를 찾아간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나는 옷을 홀딱 벗고 침대에서 자는 시늉을 하고 있을 까미유에 대한 연민이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진짜 어쩌면 까미유가 도가 지나친 질투를 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숱 많은 백발머리의 여인, 알랭의 어머니인 앙빠라 부인이 겨우겨우 힘들게 집으로 돌아온 자신의 아들이 '저것 봐요 엄마! 저 고양이는 정말 놀랍지 않아요?'라고 말했을 때 '그래, 그게 네 망상이지.'라고 말한 건 왜일까. 그의 어미의 시선에도 그와 그의 고양이는 단순한 주인과 고양이의 관계가 아니었던 것일까.
까미유가 사아에게 한 '그런 짓'이 궁금하다면, 알랭과 까미유는 곤경을 딛고 행복한 결혼 생활로 발을 뻗었을까, 결국 까미유도 사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둘은 결국 헤어졌을까, 궁금하다면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암고양이 꼭 읽어보세요! 순수한 본성인 질투의 모습이 인간에게 대입되었을 때 우리 인간은 어떤 얼굴을 짓고 행동을 하고 말을 뱉을까에 대해 충분히 사념할 수 있는 책입니다.
지금까지 프랑스의 전설 같은 작가, 사랑을 말하는 작가 콜레트의 암고양이였습니다! 이다음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 일컫어지는 '파리의 클로딘'을 완독하고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