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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프 Jun 27. 2023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상수역

핑크 페이즐리 드림, 러스티 크림, 마이 크러스티 페이퍼 하트

너는내가/처음봤던/눈동자야-

낮익은- 거,리-들이/거울처럼/반짝여도-

니가건네-주는/커-피위에/살얼음이떠도/오/오

우리둘은/얼어붙지/않을거야-

...


노래는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뭐랄까, 반짝이가 가득 찬 스노우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물과 반짝이 대신 노래를 처음 만난 순간의 날씨, 분위기, 함께 있던 사람의 말소리, 이런 것들이 담긴다. 뒤집기만 하면 한여름에도 눈이 펑펑 내리게 할 수 있는 스노우볼처럼, 재생 버튼만 클릭하면 언제든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검정치마는 그 사실을 내게 처음 알려준 가수다. 언젠가 음악에 대해 글을 쓴다면 꼭 그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하는 antifreeze를 처음 듣고 불가항력으로 그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그 날의 스노우볼에는 찌는 듯한 더위와 이유 없이 불쾌했던 사춘기 여름의 하루가 담겨있는데, 지금의 내가 안티프리즈를 주로 겨울에 듣는 걸 생각하면 날을 잘못 골라도 크게 잘못 고른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스노우볼을 깨고 추위와 어둠을 다시 담아야 할까. 그건 또 끌리지 않는다.


아무튼. 케이팝과 힙합을 즐겨 듣던 내게, 더벅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나온 뾰루퉁한 샌님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기타 하나를 달랑 매고 나와서,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묘한 목소리로 이해할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당시 중학생이던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튀지 않기' 였다. 여느 중학생들도 그럴텐데, 그 시기에는 특이한 것이 기피 대상이 되니까. 괜히 눈에 띄지 않고 무리에 적당히 섞여들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이 요상하고, 음, 말하자면 찐따같은, 그런 느낌의 취향은 그런 평범에의 욕구조차 좌절시켰다.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노래였다. 그 이후로는 그의 라이브 영상을 닥치는 대로 봤다. 어정쩡한 자세와 긴가민가하게 박자를 맞추는 발자국이 좋았다. 음원의 발칙한 가사와 방송용 가사가 나뉘어져 있는 것도 좋았고, 어떤 곡의 처절함도, 어떤 곡의 엉뚱함도 좋았다. 중학교 땐 무슨 말이지, 했던 것들을 반쯤은 이해하게 된 고등학생 때도, 습관처럼 찾게 되는 지금까지도, 검정치마 노래는 그 어떤 때에도 적절했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스노우볼을 뒤집었다.


영원히 지속되는 순간이 있다는 건 정말 대단했다. 그 순간 속에서 다른 누군가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 그걸 더 대단하게 만들었다. 그즈음에 나는 그런 경험들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와 같은 노래를 듣고, 그 순간의 스노우볼에 서로를 넣어두는... 수백번 들었던 노래도 그 사람과 처음 듣는 순간 스노우볼이 깨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듯했다.


그런 식의 연결고리는 알고 보니 나의 바로 근처에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엄마가 검정치마의 언더그라운드 공연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한참 전에 받은 검정치마의 씨디를 보여주겠다며 집을 전부 뒤졌다. 2010년이었으니까 검은 커버에 달랑 들어있던 홍보용 씨디 한 장은 아마 201 앨범의 수록곡이었을 거다. 결국은 찾지 못한 그 어떤 깜깜한 추억이 그 앨범을 들을 때마다 생각난다.


그 이후로도 검정치마는 신보가 나올 때마다 바로 바로 따라가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 중에 하나다. 이 글을 시작한 게 22년 2월인데, 그 뒤로 나온 teen troubles가 가장 최근의 앨범이고,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는 중에 있다. 이젠 검정치마 단독 콘서트는 순식간에 완판되기에 꿈에 가깝지만, 올 여름에는 페스티벌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랜덤 재생에서 검정치마 노래가 나왔고, 갑자기 한참 전에 쓰다 만 이 글이 생각나서 끝까지 써보았다. 검정치마의 When I think of you를 듣고 있다. 내 방 책상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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