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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프 Oct 11. 2022

뭔가 혹하는 제목을 짓고 싶은데

자주 반복되는 이상한 하루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날이다. 한참 봤다고 생각한 영화는 고작 십오 분 지나 있고,  휴대폰을 몇십 번이나 뒤집었는데도 미리보기에 뜬 알람은 꼴랑 40분 전이라고 찍혀 있다. 할 만한 것들은 다 했는데. 그러니까 할 일을 마쳤다거나 보람찰 만큼 바빴다는 게 아니라, 하루치의 시간을 다 썼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직도 6시 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시간은 어쩌면 정말 주관적으로 흐르는데 공통의 고정된 체계에 맞춰지느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빨리, 싫어하는 일을 하면 느리게 가는 시간이,  어쩌면 그쪽이 실제이지 않을까. 어떤 방법을 써도 이 생각이 가짜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 않나. 오늘 같은 날은 꼭 게임 캐릭터가 된 기분이 든다. NPC는 아니고, 메인 캐릭터이기는 한데, 실상 NPC나 주인공이나 거기를 벗어날 수 없는 건 똑같다. 말을 몇 마디 더 할 수 있는 자유도는 있으나 없으나... 뻔한 달리기 게임에서 하루 종일 1층에서만 달리고 있다. 부스터나 생명 연장 아이템, 날개, 뭐 이런 것들을 모두 놓치고 있다. 2층, 3층으로 점프하는 날은 골드 코인도, xp 물약도 먹을 수 있지만 1층만을 달리는 날에는 잘해봐야 실버코인이 최대다. 하지만 1층에서도 달리기는 쓰러질 때까지 계속된다. 느린 날에도 어쨌든 하루가 끝나기는 하니까. 나에 대한 생각도, 남에 대한 생각도,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사실 글을 쓰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날이다. 몇 시간을 분투해봤자, 더블 점프를 할 수 있는 날의 십 분 어치도 나오지 않는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기분도 아닌데 어쩐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저녁.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누군가 읽었으면 좋겠다는 모순을 생각하며 글을 줄인다. 지금 발이 땅에 닿아있기는 한 건가.


2022년 10월 1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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