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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Mar 27. 2020

말에 대한 고민으로 인간에 대한 고민을

맹인(盲人)은 그 한자의 어원적 분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눈(目)을 잃은(亡) 사람을 뜻하는 차별적인 어휘이다. 맹인은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인 "시각 장애인"으로 대체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차별 어휘로서의 인지가 분명해져서 그 쓰임새가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무려 3음절이나 더 긴 어휘를 사용하는 발음경제적 부담을 지면서까지 우리는 "맹인"의 사용 빈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은유를 통한 "XX맹"과 같은 어휘에서는 상대적으로 "맹(盲)"이 원래 가지고 있는 차별적 속성이 희석되어 버리는 탓에 별다른 도덕적, 윤리적 고민 없이 사용된다. 오랜 어휘인 "문맹"부터 출발하여, 의미맹, 맥락맹, 컴맹 등등.


엄격하고 치밀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저렇게 "맹(盲)"이 쓰인 어휘들도 모두 차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어휘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대체해 나가면 좋을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문맹"이란 어휘를 대체하는 고민도 아직 발견한 적 없다.


언어의 사용에는 이러한 정치적인 노력이 개입될 것이 아니라 언중의 실제 사용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논지도 있다. 그러나 언중의 반성과 노력이라는 의식은 "실제 사용"이라는 과정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이유들로 어휘들을 배척해 나간다면, 우리의 언어 사용은 너무도 제한적이 되어 갈 것이고, 척박해 질 것이라는 말도 있다. 단순히 말해, "아, 뭔 말을 못하겠네." 그런 이유로 말을 못하겠다고 느낀다면 말을 주저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는 그 정도로 풍족하지 못한 상태가 아니다. 이미 충분히 어휘는 범람하고 있으며, 얼마든지 새로운 말들을 고민하는 것도 인간이 가지는 지적 과정이다.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필요"가 존재하면 언어적 "실재"도 만들어 낸다. 앞 문장의 주어는 인간의 "언어"이지만 우리의 실제 세계에서의 주어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2016.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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