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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Aug 13. 2020

혼자 하는 화해 3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귀가했다. 11시간 가까이 마신 술은, 오후까지도 깨지 않았고,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하루를 보냈다. 조금 토하기도 하고 물을 조금 마시기도 하고, 조금 싸기도 하고 조금 씻기도 했다. 5시쯤 겨우 일어나 콩나물국에다가 해장을 좀 했다. 사람이 되었다. TV를 켜 놓고 있으니 다시 잠이 스르르 들었다. 하루종일 자는 둥 마는 둥 한 것보다도 짧고 강한 잠이었다. 아이고, 잘 잤다. 그리고 폰을 보았다. 알림으로 떠 있던 


“부재중 전화: 누나”     


잠이 덜 깬 것일까? 아니다. 술이 덜 깬 것일까? 아니다. 죽은 사람이 전화를 한 것일까? 그렇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사람의 전화로부터 전화가 온 것. 아이폰의 부재중 전화는 빨간색으로 기록된다. 당신에게 중요한 정보라는 뜻이겠지. 과장하자면 다시 전화를 해 보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나는 콜백을 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콜백을 잘 하지 않는다. ‘통화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 사람이 다시 하겠지.’라는 불친절하고도 무책임한 사람이다. 무심한 사람이다. 특히 누나에게 그랬다.  

    

주말이면 전화가 왔다. 누나였다. 나는 까치산에 살고 누나네 가족이 목동에 살 때부터 주말이면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을 함께 먹자는 것이었다. 주말이면 누나 가족의 저녁 식사에 함께해야 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원했다. 누나가 원했고, 매형이 원했고, 조카는 매우 원했고, 부모님도 그러길 바랬다. 나는 귀찮고, 힘들고, 싫었다. 그래서 자주 피했다.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게 되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짓말이나,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이나, 몸이 좋지 않다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누나의 실망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 옆에서 조카가 외치는 “삼촌!”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알았어, 나갈게.”가 되어서 괜한 거짓말만 하고 식사는 함께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부재중 전화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부재중 전화는 재중 전화의 거짓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식사를 했을 두세 시간 뒤에나 보내는 “전화했었네.”라는 카톡. 일부러 회피한 전화이기에 콜백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 않았다. 물론 오늘도.    

 

주말만 되면 걸려오던 누나의 전화는 점점 빈도가 줄기 시작했다. 내가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재중 전화로 기록될 뿐이기 때문이다. 콜백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가면 갈수록 줄어들던 누나의 전화는 올해 들어선 한번도 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이 덜 깬 것일까? 맞다. 술이 덜 깬 것일까? 맞다. 죽은 사람이 전화를 한 것일까? 아니다. 순간 죽은 누나가 그곳에서 전화를 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생각이 10초 이상 지속될 만큼 감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무심한 사람이다. 특히 누나에게 그렇다. 이 전화는 산 사람이 한 것이다. 죽은 누나의 폰을 간만에 켠, 매형이 했거나, 엄마가 했을 것이다. 전화는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콜백을 하진 않았다. 누나는 이 세계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매형이나 엄마에게 전화를 하기도 마뜩잖은 일이었다. 일단은 귀찮았고, 나는 술이 덜 깬 사람인 것이고,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잘 알 수 없어서. 죽은 누나가 전화를 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아니고, 뭐하러 이런 짓을 하냐고 역정을 낼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리고 그저 부재중 전화로 두는 것이 좋을 것도 같아서. 부재중인 사람이 부재중 전화를 건 것이었으니까.     


아이폰의 부재중 전화는 빨간색으로 기록된다. 당신에게 중요한 정보라는 뜻일까. 아니다. 죽은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는 것 따위는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그런 일은 없기 때문이다. 가능하지 않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은 죽는대. 부재중 전화는 빨간색으로 기록된다. 죽은 사람에게 온 전화는 모두 부재중 전화이다. 모든 부재중 전화는 죽은 사람에게 온 전화이다. 다시 전화할 수 없다. 나는 원래 콜백을 잘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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