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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Aug 17. 2020

혼자 하는 화해 2.5

이제 더이상 누구도 내게 괜찮냐 어떠냐 물어보지도 않고, 나도 이제 더이상 힘들다거나 괜찮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이제 나 좀 괜찮아졌네라고 생각하려다 문득 돌아보면 안 괜찮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도 누나가 신혼 때 쓰던 데스크탑의 모니터고, 하루에 수십번 만지는 냉장고도 누나가 신혼 때 쓰던 냉장고이며, 전자렌지도, 돌체구스토도, 다 누나가 신혼 때 쓰던 것들이다. 난 안 가지겠다고 하는 걸, 이사하면서 폐기물 처분하듯 내 집에 떠넘겨버렸다. 마치 자신의 죽음처럼.


아직도 안 괜찮네라고 생각하려다 문득 하루를 돌아보면 괜찮았다. 오늘은 처음으로 직장에 지각도 하고 며칠 전엔 우산도 잃어버리고. 아직 안 괜찮아서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는 일들인데, 오히려 이젠 괜찮아져서, 그냥 그렇게 살 법한 일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며칠 간 비가 많이 왔고 한동안 해를 보지 못했고, 그런데 지각한 오늘은 오후 수업할 때 해가 좀 났었던 것 같고, 근데 마침 오늘은 학생들과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라, 교실 버티컬을 내려둬야 했고 불을 꺼야만 했다. 해를 보지 못했다. 낮에는 불을 꺼야 했지만 난 아직도 잘 때 불을 끄고 자지 못한다.


매일밤 내가 누워 잠을 청해야 하는 침대는, 누나가 신혼 때 썼던 침대이다. 매트리스는 조금씩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이 삐걱이는 소리는 때론 비명 같다. 이 침대 갖다 버리고 싶지만, 아직 그러지는 못해서 대신 매트리스 커버나 새로 사서 갈아 끼웠다. 


난 이제 슬픈지 안 슬픈지 그리운지 안 그리운지도 몰라서 내가 유가족인지도 모르겠다. 나 말고 유가족, 엄마아빠매형조카는 지금 울산에 한데 모여 있다. 마치 이제 '너는 여기서 함께 부둥키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맞다. 괜찮다. 그렇지만 괜찮은지 물어봐 주지도 않았잖아. 


엄마의 슬픔에 비해, 아빠의 슬픔에 비해, 남편의 슬픔에 비해, 딸의 슬픔에 비해, "동생의 슬픔"이란 것은 크게 쳐주기 어려울 만한 것이어서 큰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부수적인 것. 고통에도 계급이 있나니.


나도 모르겠는 이런 마음을 누가 알까. 모른다. 자살 유가족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자살 유가족도 모른다. 이제 괜찮네라고 생각하려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면 안 괜찮다. 그렇다고 내가 막 지금 슬프다거나 힘들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좀 외로울 뿐.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려 해도, 이제 그는, 듣는 일이 귀찮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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