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잡"문집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사실 하루키를 안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하루키의 담담한 문체와 서정적이지만 단단한 표현력은 20-30대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읽은 건 "노르웨이의 숲"이 거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에세이였다.
한국에 방학 때 놀러와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던 공항에서 일본에서 공부한다고 하는 사람이 하루키 책 하나쯤은 읽어줘야지 라는 마음으로 샀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는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책은 단순히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직업이란 무엇인지, 그 삶을 산다는 건 진짜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특유의 담담하고 겸손한 문체로 쓰여있었고, 이는 내게 "책에 대해 얘기하는 책"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고,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재즈 애호가이자 달리기 애호가인 하루키의 글에는 항상 어떤 에세이든 재즈 이야기가 30%는 차있어서 그 부분은 흐린 눈을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글이었다고 생각하고, 즐겨왔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또 유튜브의 누군가의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는 하루키 책이 반가워 구매했다. 심지어 독서클럽에서 한 달 동안 나의 독서 메이트가 되어줄 책이라며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책은 총 1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고, 이 중에서 반 이상은 어딘가의 수상 소감이나 서평, 혹은 좋아하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키라는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게 내가 보지 못 했던 것인지가 궁금하다면 맨 처음과 맨 뒷부분 챕터만 읽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래도 그 유명한 "자기란 무엇인가 혹은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은 꽤 읽어볼만하다.
책을 읽다보면 안자이 미즈마루씨(누군지 모르겠지만)과 그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그가 썼던 책에 대해서 최소한 한 번 이상쯤은 읽어보고 그 배경지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가 쓴 소설보다, 그의 주변인물보다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라면 이 책은 약 500페이지 분량의 장편치고는 그렇게 영양가가 있는 글은 없을 것 같다.
책 제목이 왜 잡문집인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