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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Aug 06. 2020

만약 재밌게 봤다면 죄송합니다

[★★☆☆☆] 비밀은 없다 (2015)

*이 영화가 얼마나 싫은가에 대한 리뷰입니다. 재밌게 본 사람은 괜히 불쾌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세상엔 좋은 영화만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르다. 관용적으로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계산해보자. 예상 수명까지 내 남은 수명과, 그 중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흔히 말하는 "좋은 영화"의 총 갯수. 마지막으로 "숨겨진 좋은 영화"의 갯수. 과장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시간이 모자르다. 하물며 좋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보다 더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지금 비밀은 없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잘 모르겠다. 아마 이 영화를 싫어하는 나를 좋아하겠지? 영화는 싫었지만 이게 왜 싫었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웠다. 아마 영화 신과 함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보는 것은 괴로웠지만.


영화의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김민재 배우의 연기. 필모가 몹시 훌륭한데도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존재감을 느꼈다. 다른 배우들 연기가 어지간히 구려서 그랬나.


상식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은 후반부에 이야기하지만, 이건 그 상식을 뛰어 넘는다. 연기가 지나치게 형편없다. 연기가 지나치게 형편없다. 실수 아니고 두번 썼다. 그 정도로 최악이었다. 배우들에게 죄를 묻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당장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던 김민재 배우님의 연기를 놓고 봐도, 본인은 훌륭한 연기일지라도 결국 주변 캐릭터들과 섞이지는 못했다. "어떠냐 이녀석들아 이게 연기다!"라고 뽐내고 싶어도 참았어야 한다. 제 아무리 잘생겨도 원빈 옆에선 오징어인 것 처럼. 사무국장 덕분에 김주혁과 손예진이 해산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연기의 높고 낮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종류가 다른 연기였다. 김민재 배우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연기톤은 "나 지금 연기하고 있단 말이야!"라고 외치는 손예진의 연기와 어우러지지 못했다. 이상적인 방향은 손예진을 김민재식 연기로 이끌어야 했겠지만, 단독 주연 배우니까. 김민재가 연기 티가 나는 연기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걸그룹에서 혼자만 너무 춤을 잘 추면, 다른 멤버들이 못추는게 티가 나잖아. 아까 높고 낮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고 해놓고.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네.


연기 이야기를 왜 후반부에 배치하는지 알겠다. 연기를 까려면 먼저 연출을 까야 하고, 연출을 까려면 이야기를 훑어야 하는구나. 그렇지만 후회하면서 지금까지 쓴거 다 지우기엔 아깝잖아. 그러니까요, 이 영화는 쓸데없이 벌려 놓은 요소들이 제법 있는데요. 동성애나 음악이나. 그 중 연기력과 연결되는건  선거와 지역감정이 있다. 선거야 김주혁의 출세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거나. 시기적으로 손예진이 혼자서 사건을 파헤치는 장치로서 존재했다고 쳐. 그런데 도대체 지역감정은 왜 넣은거야? 이경미 감독의 출신을 찾아봤다. 결국 고향이 어딘지는 못 찾았지만, 어디라고 해도 문제가 된다. 서울 사람이에요? 그럼 왜 쓸데없이 지역감정을 넣었어요? 아니 넣은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왜 사람들이 잘 하지도 못하는 사투리를 써요? 서울 사람이라서 이게 잘하는건지 못하는건지 감이 안오시나요. 하긴 사투리 능력 감수를 받는 것도 웃기지. 이거 어색해? 어색하다고 하면 어쩔거야, 결국 감독 마음에 들면 오케이면서. 그럼 뭐 경상도 출신이라고 쳐. 그럼 이 연기를 오케이 했다고? 말도 안된다. 이 영화에서 두번째로 먼저 빠져야 할 것은 사투리다. 첫번째는 이경미... 이건 농담이다.


별 이유도 없는데 굳이 마스크 씌운 이유가 혹시... 


연기만 놓고 이야기해도 아직 한참은 남았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하자면. 저기... 밀양은 보셨죠? 설마 안봤겠어. 그리고 뭐 유명한거 뭐 있나... 마더 보셨어요 마더? 그리고 뭐. 세븐 데이즈라던지. 좋은 영화 많잖아요. 그, 자식 잃은 슬픔에 잠기는 어머니들이요. 지금 배우님 연기가 주식하다가 한 2~3000만원 날린 표정이잖아요. 내 화가 나고 폭력적이게 된건 알겠어요. 그런데... 아 여기 스포일러에요. 혹시나 해서. 그러니까 적어도, 딸이 죽었을때의 연기는 아니지 않아요? 전도연이랑 비교하는건 물론 좀 치사하지만. 그래도 전달은 되어야 하잖아요. 저는 극중에서 손예진이 분노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야기적으론 딸이 죽어서 그렇다는데. 이야기가 아무리 이유를 설명해줘도 연기를 보면 팍 식는걸요. 얘 진짜 자기 딸이 죽은거 맞아? 연기와 연출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는게. 결국 손예진의 애매한 감정 표현으로 인해 후반부의 행동들의 당위성을 매치시킬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헷갈리는게... 바람핀게 화난거에요, 딸이 죽은게 슬픈거에요, 딸이 그런 짓을 했다는게 충격인거에요? 뭘 연기하고 있어요?


그것은 아마 주제가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있지만 주제가 비어 있다. 그러니 이 이야기가 무엇을 위한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흘러는 가지만 따라가지는 못한다. 훌륭한 영화는 주인공이 악인이라도 응원하게 된다. 마음을 주는건 얼마나 착하냐 따위가 아니다. 우리가 손예진을 따라가기 위해선 그녀를 응원해야 한다. 하지만 중반부터 우리는 뭘 응원해야 할지를 놓치게 되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그래서 우리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 하고 맥이 빠진다. 이건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닌 퀴즈쇼다. 이경미 감독님의 의도를 맞춰보세요 3점. 데이빗 린치와 다른 점은 맞추기 싫다는거다. 


그럼 차라리 오락 영화로서 충실하면 어떨까? 최소한 "그냥 재밌잖아"라는 핑계라도 통하니까. 팝콘 무비. 킬링 타임 무비, 좋은 애칭도 생기잖아. 보통은 낮춰 말하는거지만 이 영화에 쓰면 높이는게 될지도 모르니깐. 그렇지만 영화는 그것도 거부한다. 최근에 본 가장 맥아리 없었던 영화가 "원라인"이라는 영화였다. 존재감 하나 없는 악당과 동기 없는 주인공의 미적지근한 머리싸움. 하지만 비밀은 없다에서는 없고 원라인에서는 있는게 있다. 뭘까? 비밀이라고? 아 비밀은 없다니까? 아니 그거 말고. 뭐 보니깐 비밀도 많드만. 하여튼 원라인이랑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원라인이 차라리 더 좋았던 이유는 마음을 줄 수 있는 주인공의 유무였다. 이 영화는 적어도 임시완에게 마음을 줄 수 있다. 그를 응원하고, 그가 승리했을 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손예진이 승리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마음을 줘야지만 좋은 영화라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팝콘 무비로서는 실패라는 점이다. 손예진의 분노에는 당위성이 없고, 딸의 죽음은 억울하지 않고, 선생은 오히려 측은했으며, 김주혁의 살인은 슬프지 않았다. 이 얘기를 좀 더 해야겠다. 문단을 나눠야지.


그나저나 너희 도대체 어쩌다 갑자기 친해졌니? 


그러니까 전혀 억울한 죽음이 아니라는거다. 물론 죽어도 되는 인간이란건 없지만, 딸의 잔혹성을 그대로 노출할거면 딸의 이중적인 모습을 견뎌내야 한다. "딸을 잃은 슬픔에 미쳐버려"라고 핑계를 대고 싶었으면 연기를 더 잘 했어야지. 손등에 가위 꼽을 때에도 별 생각 없어 보이던데. 아 그래서 미친건가.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 "딸이 협박한건 이렇게 그냥 넘어가는거야?"라는 의문이 풀리지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제 아무리 복수를 한다고 해도 뭐... 그냥 바람핀게 싫어서 이러는건가. 뭔가 딸의 죽음은 핑계 같기도 하고. 손예진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한건 아닐까? 근데 또 그러기엔 그렇게 자존심 쎈 캐릭터인 묘사도 없잖아. 아 모르겠다. 손예진 도대체 왜 저렇게 미친사람처럼 구는거야? 


딸은 그래 뭐 왕따니까. 애초에 어쩌다가 갑자기 왕따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매체에서 왕따를 표현하는건 성의가 없다. 이만큼 성의 없이 표현하는 것도 드물긴 하지만,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됐다는게 대다수다. 왕따는 아니지만, 파수꾼에서의 박정민 캐릭터같은 깊이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케이스다. 그냥 영어 섞어서 쓰다보니까 왕따 당했구나. 아니면 무키무키 만만수 좋아하면 왕따 당하는건가. 어쨌거나 그렇게 따돌림 당하는 이들끼리 사랑에 빠진거야 뭐. 그렇다 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돈이 필요해서. 그런데 마침 아빠와 선생님이 바람피는걸 알게 되서.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서. 이걸로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내서. 그래서. 결국 죽었다고? 그래서? 그게 왜? 흔히 우리는 친구의 이야기에는 분노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무심하게 듣게 된다. 만약에 이 영화의 주인공이 선생이었다면. 딸만한 악마가 또 있을까. 아니 니가 바람 피웠잖아요. 바람을 피워서 협박해도 된다면. 협박 당해서 죽여도 되는거 아니야? 애초에 감독은 딸을 변호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바람 피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데 결국 그렇게 뜯어낸 돈 자기 애인 주잖아요. 오히려 협박할 수 있어서 더 즐거운거 아니었어요? 그냥 딸 이야기만 톡 때놓고 보면. 최소한, 피해자는 아니지 않으셔요? 


의외로 영화를 통틀어서 이게 가장 소름이 돋는 장면이다. 그래봤자 에어컨 2도 정도 내린 느낌의 소름이지만


마지막으로 김주혁은. 딸의 죽음이 그렇게 슬플거면 왜 실종에는 그렇게 여유로웠어요? 실종은 담담한데 사망은 절망적인가요? 말이 되지 않는다. 이걸 단순히 김주혁 연기의 깊이로 본다면 세상의 모든 배우들이 억울해서 미칠 것이다. 이건 통일되지 않는 디렉팅이다. 출세에 대한 욕망이 가득 찬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으로서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일에 몰두하지만, 여전히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그럼 실종때도 조금은 인간다운 면모를 비춰줘야 한다. 어렵지 않다. 몇 컷. 아니 몇 초, 몇 프레임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어차피 자기가 딸 죽였다는건 모르는 사람이잖아? 그리고 그걸로 마지막에 충격을 주고 싶었잖아? 그럼 아에 딸바보로 만들면 안돼?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해도 이야기는 잘 전달 되잖아. 아니 오히려 훨씬 더 효과적일걸? 딸은 사랑하지만 바람은 폈고. 협박범은 죽였지만 그게 딸일거라곤 생각도 못했고. 그래서 모든걸 알게 되었을 때 절망하고. 딱 딱 맞아 떨어지잖아. 왜 우리가 당신이 살인범일거라고 의심하며 영화를 봐야 해요? 왜 굳이 불필요하게 꼬아요. 이걸로 얻을 수 있는 감정은 찝찝함 밖에 없어요. 


이 둘 중 하나만 가져가도 충분하지 않았나. 


따라서 이 영화는 시나리오를 고치지 않아도 더 좋아질 여지가 충분하다. 딸의 죽음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아이러니로 집중할 수도 있고. 김주혁의 후회를 더 극대화 시킬 수도 있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헛되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날때 쯤이면 바람핀 남편을 신나게 매타작 하는 아내, 정도의 감정만 건지게 된다. 그게 주제였나. 바람 피면 자기 딸도 죽이고 아내한테도 두드려 맞게 됩니다. 모르겠다. 주제가 있긴 있나. 


이제 슬슬 끝내야겠다. 리뷰하는 작품마다 밸런스라는게 있잖아. 아직 허술한 편집이나 제멋대로 편리하게 가져다 쓴 내레이션 같은건 말하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비밀은 없다"의 좋았던 점은. 앞서 말한 김민재 배우의 발견.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그들 각자의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왜 이 영화를 좋다고 하는걸까. 그것은 맹목적인 여성 감독에 대한 지지가 아닐까? 그녀들은 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은 역시, "그냥 이 영화가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만약 재밌게 봤다면 미안하다. 그렇지만... 이걸 재밌게 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도 이해해줘잉. 


마지막까지 산에 드러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알겠다 싶으면 느닷없이 뜬구름 잡는 멘트가 튀어나와서 결국 추리를 포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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