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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Aug 02. 2020

피쉬 스토리 (Fish story, 2009)

Yoshihiro Nakamura

일본 영화 중에 뭘 제일 좋아해? 라고 물어보면 조금 고민하는 편이다. 뭐든지 1등을 꼽는 것은 어렵다. 이게 1등이라는 소리는 반대로 이건 2등이라는 소린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게 2등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고. 그치만 이게 제일 좋다고 말하고 싶단 말이지. 그리하여 왓챠에 들어가 별점 5점을 준 영화를 찾아본다. 별점은 정확한 편이지. 물론 그 당시의 흥분된 기분으로 준거지만, 최소한 5점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거니까. 


피쉬 스토리,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엔딩 노트, 귀를 기울이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어느 가족. 이렇게 8개의 영화가 5점이었고. 그럼 이 중에서 제일로 치는건 뭘까. 이건 살짝 비밀인데, "이걸 제일 좋아해!"라고 말할 때 마다, 각각의 선택 안에서의 내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기분이 든다. 음악도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과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뉘어지잖아. 그러다 갑자기 린킨파크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또 완전히 신선하기도 하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사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를 본 나에 대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결국 질문을 받은 그 때의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최고의 영화를 좌우한다. 오늘의 나는 피쉬 스토리다. 


영화는 운석으로 지구가 멸망하기 전부터 과거로 거슬러가는 구조를 가진다. 저정도로 크게 보이면 이미 끝난거 아닌가 싶지만


영화리뷰면 줄거리를 말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애초에 이 글의 제목이 영화는 핑계고 잖아. 영화를 핑계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건데. 줄거리를 설명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물론 독자가 이걸 봤는지 아직 안봤는지를 염두하고 글을 써야 하긴 하지만. 어차피 봤다고 생각하더라도 줄거리는 쓰잖아. 그게 뭔가 매너 같은게 된거같다. 그렇다고 네이버 영화 같은데서 줄거리 긁어오는 것도 치사하다. 여기 브런치잖아? 그럼 네이버 영화는 반칙이지. 뭐 다음 영화도 있다고? 그럼 거기 가서 읽어보자. 그렇게 검색하는 과정이서 좋은 리뷰들도 많이 있을거다. 최소한 여기는 아니다. 분량 많아 보이려고 사진도 캡쳐해서 올리고 하지만... 확실히 다른 리뷰들에 비해서 두세개는 빠져 있다. 전문성이라든지 정성이라든지... 


퀴즈 : 다음 이미지들을 사건 순서대로 나열하시오


얼핏 누군가는 이 영화를 나비효과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이사카 코타로도 아니고, 추측일 뿐이지만... 이건 나비효과보단 과대망상에 대한 이야기다. 추측이라 해놓고 확신을 가지는 말투 미안. 그치만 면접같은데서 자신감 있게 말하라고 하더라고. 이건 다 21세기 대한민국 기업 문화의 탓이다. 그러면서도 꽤나 자신이 있는데, 나비효과에 대한 영화라고 치면 영화가 몹시 허술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건 뭔가 인과관계가 치밀하고 그럴싸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피쉬 스토리는 그런 디테일을 가볍게 건너뛴다. 보통의 이런 영화가 "운동을 한다고 체육관에 있다가, 건물이 무너져 사고를 당한다"수준의 나비효과를 묘사한다면. 이건 "운동을 시작해서 수퍼 히어로가 되어 세계를 구한다"정도의 터무니없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데. 그게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걸 원하면 애쉬든 커쳐나 보러 가라. 아니면 해리포터 3편도 괜찮겠다. 암만 생각해도 아즈카반의 죄수는 명작이다. 나머지 편을 다 합쳐도 이 한편을 선택하겠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증명사진. 사실상 모든 이야기의 시작. 


플롯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들은 참 많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왕이 죽었다. 그리고 왕비가 죽었다"가 스토리라면, "왕이 죽었고 왕비가 그 슬픔으로 인해 죽었다"는 플롯이다. 노드롭 프라이는 "스토리가 마당에 뿌려진 자갈이라면, 플롯은 차창을 통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물체들"이라고 말했다. 예시가 뭔가 좀 익숙하신가요? 그렇다면 당신도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작은아씨들 편을 봤나봅니다. 어쨌거나 피쉬 스토리의 플롯은 참으로 훌륭하다. 나는 이사카 코타로의 피쉬 스토리 원작을 너무 좋아해서 선물용, 소장용, 열람용까지 총 3권이나 샀다.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 작가는 두말 할 것 없이 이사카 코타로다. 하지만 정작 피쉬 스토리 만큼은 영화판을 훨씬 더 좋아하는데, 그게 이 플롯의 유연함이 아닐까 싶다. 이 유쾌한 과대망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호기심을 놓지 않은 채로,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게 이어가서. 결국 말도 안되지만, 그리고 말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음악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메세지를 폭죽처럼 터트린다. 


엔딩의 이 시선 교환은 짜릿하다 못해 황홀하다. 그래 이건 음악 영화야. 


애초에 섹스 피스톨즈가 있기 전부터 일본에 펑크가 존재했다! 라는 전재에서부터 과대망상이 깔려 있다. 저주받은 테이프의 탄생 과정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요소따윈 없다. 모든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랬다. 하지만 그 어쩌다 보니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니 너무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또 실없는 이유지만. 그 실없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확실히 진짜가 존재한다. 결국 A -> B -> C -> D -> E로 흐르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철저하게 B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음악영화다. 만약에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혹은 이거에 가슴이 뛰어도 괜찮을까? 하면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때 이 영화를 보는게 어떨까. 뭐가 어쩌다가 지구까지 구하게 됐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하는 이거, 의미가 있어? 라고 물어보는 질문에는 확실한 대답이 된다. 의미가 있어. 그건 확실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될거야. 니가 끝까지 붙잡고 있다면. 


다 쓰고 나니까 스포일러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뭐가 스포일러고 아니고 이해하기 힘들테니까 안심하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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