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무엇으로 사랑을 증명하지?

by 윤동규


0.
어렸을때의 추억이 몸에 배어서, 나이가 먹어도 한참동안 떨어지지 않는 버릇이 있다. 내 경우엔 음악을 음반으로 듣는 거.


1.
처음부터 그렇게 음악을 들은건 아니다. 소리바다에서 mp3를 다운받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못느끼던 시기였고, cd rw란 게 있어서 mp3를 씨디에 입맛에 맞게 넣었다 뺄 수 있었다. 음악을 구체적으로 들을때는 아니어서, 디제이 디오씨나 임창정, 문차일드 등등의 음악이 들어갔다. 중학교 1학년 ~ 고등학교 1학년 정도까지였던 것 같은데. 당시에 집에 있었던 음반은 박지윤 1집. 카세트 테이프는 많았는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H.O.T 는 몇개 있었고... 유승준이 있었나? 디제이 디오씨 5집이 있었다. 꽤 많이 들었다. 욕이 많이 나오니까.


2.
처음으로 내 음반이 생긴건 고등학교 1학년때. 친하던 여자애들이 수업 끝나고 시내로 놀러간다고 했고, 별 생각없이 선물을 부탁했다. 워낙 농촌에 있는 학교였어서, 시내로 나간다고 하면 괜히 뭔가 선물을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 왜, 제주도나 전주 정도만 여행가도 지나가는 말로 선물사와~! 하잖아. 우리는 시내에 나가기만 해도 그랬다는거지. 새삼스럽게 얼마나 깡촌에 살았는지가 느껴지네. 어쨌든 난 음반 하나 부탁했고, 양동근 2집이 갖고싶었다. 사실 음악은 쥐뿔도 몰랐고, 네멋대로해라에 엄청나게 심취해 있었으니까. 배우 양동근을 좋아하는 마음의 확장으로, 그의 음반을 갖고 싶었다. 다음날 포장까지 해서 받은 그 음반은, 거의 1년동안 씨디피에서 나가지 않았다. 형의 씨디피를 썼었는데, 형은 아이리버 mp3를 썼었다. 난 그때부터 뭔가 mp3 플레이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카세트 플레이어나 씨디피같이 어떤 형태가 있는 재생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거마저도 어떤 추억에 의한 습관일지는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3.
양동근2집을 1년 넘게 들으면서, 서서히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때 신나라 레코드를 방문했다. 엄마가 옷 사 입으라고 준 돈으로 서태지 7집, 씨비 매스 3집, 기억이 나지 않은 어떤 음반을 샀다. 원래 이 3장 은 확실하게 기억이 났었는데, 어느샌가 기억이 나지 않아 집에 있는 음반을 다 뒤적거렸다. 그래도 기억나지 않는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그게 벌써 14년 전 이야기니깐. 어쨌거나 이즈음부터 국내 힙합을 많이 들었는데, 아 맞다. 드렁큰 타이거 5집이었나? 하여간 국내 힙합 앨범들을 미친듯이 사서 들었다. 가끔 배치기 2집처럼 불쾌한 스킷이 들어가서 처음부터 듣기 어려운것도 많지만, 그래도 꿋꿋이 1번 트랙부터 순서대로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음반을 사서 듣는다는게 몹시 미련한 행동이었는데, 그 미련함이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시내에서 음반을 사서 집으로 가는 50분동안 음악을 듣는게 행복했고. 앨범 비닐을 뜯을때의 그 희열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4.
그래서인지, 음반을 들을 일이 전혀 없는 지금도 앨범 순서대로 듣는 버릇이 있다. 가끔 유튜브에서 재생목록이 엉망으로 섞여있으면, 굳이 새 재생목록을 만들어서 앨범 순서를 끼워맞춘다. 물론 이 과정이 불편해서 다시 벅스로 돌아갈까 생각도 든다. 음악은 점점 더 형태가 자유로워 질 것 같다. 파일이라는 개념도 없어진 스트리밍이라니. 그럼 난 음반을 소유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한심한 고민일지는 모르겠지만. 가수에 대한 사랑, 그 가수의 음악에. 음반에 대한 사랑의 증명은 음반의 수집이었는데. 이제는 뭘로 사랑을 증명하지? 벽에 포스터를 붙여야 하나. 라이브 영상들을 하나 하나 모아야 하나. 인터뷰를 봐야 하나. 음반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 언젠가 사라질 추억에 대한 아쉬움이라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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