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동규 Aug 12. 2020

오로지 웃기는 데만 집중하면 이런게 나온다

[★★★★★] 돈을 갖고 튀어라 (1969)

다른 감독보다 우디의 영화는 건들기가 쉽지 않다. 여기 저기다가 우디 앨런을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닌 업보라고 할까. "니가 그렇게 우디 앨런을 좋아해?"라는 반발 작용으로, 조금만 잘못된 정보를 이야기하면 금새 내 얕은 지식을 탄로 날 것 같았다. 사실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별개인데도, 좋아하는 것에 실수하는게 훨씬 더 수치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매거진의 제목처럼. 영화는 핑계고,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 처음이 어렵지. 나중엔 애니홀이나 젤리그 같은 영화를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브런치는 왜 제목을 이렇게 조금밖에 못쓰게 해놨냐. 얘만 영어 제목이 없으니깐 불편하잖아.


아마 이 영화의 가장 큰 웃음으로 콘트라베이스 씬과 이 씬을 뽑지 않을까.


우디는 일찍이 자신의 초기작들에 대해서, "드라마가 먼저고 유머는 그 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잠깐만 정확한건 아니다. 인터뷰집을 좀 보고 와야겠다. 확실히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건 이렇게 급하게 찾아야 할 때에 좋다니까. 막상 찾아보니까 이 책이 아니네.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에 있는 내용 같다. 우디가 말하는 앨런이 아니라 우디앨런 뉴요커의 페이소스에 있는 듯 한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서 옮겨 적어 본다.


"<바나나>는 내가 여전히 오로지 웃기는 데에만 신경 쓰던 때의 작품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였죠. <돈을 갖고 튀어라>후에 나는 데뷔작에서 저질렀던 실수들을 똑같이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난 모든 것이 웃기고 또 빨리 진행되길 원했어요. 내가 모든 생각을 집중시킨 부분이죠. 내가 만일 어떤 장면들을 거의 만화처럼 찍거나 편집했다면 그건 그런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난 마치 만화 영화처럼 묘사해야 가장 좋은 영화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화에서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 아무도 진짜로 죽지 않거든요. 그냥 빨리 움직이고 우스개 - 우스개 - 우스개 - 우스개로 이어지면서 나아가니까요."


실제로 영화 내의 웃음 쿨타임은 이즈 q보다 짧다.


사실 애니홀이나 맨하튼 같은 영화를 보면, 우디의 이런 인터뷰들이 이해가 되긴 한다. 웃음은 장치로서 존재해야지, 그게 본질이 되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없다. 우리는 실컷 웃고 극장을 나오지만, 그대로 휘발되는 이야기들을 종종 마주한다. 실컷 웃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말하고 다니긴 애매한 면이 있다. 왜냐면 그것은 내 인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돈을 갖고 튀어라"가 우디가 말한 것 처럼 텅 빈 영화인가? 글쎄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의 영화에서 어린 시절은 항상 각별한 의미를 가진 질감으로 표현된다. 


연출자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어린 시절의 묘사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페르소나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모습이 투영됐다고 하는 판에. 본인 스스로가 연기한다면 얼마나 더 자아가 묻어나올까. 그건 이런 코메디와 범죄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때의 어린 시절을 묘사했던 질감이 없었다면 라디오 데이즈나 애니홀에서 그런 완벽한 유년시절을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는 완전한 픽션 안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녹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한나와 그 자매들에서 흑인 하녀를 사용하는 것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90퍼센트 이상의 하녀들이 흑인이었다. 그게 중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트뤼포의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결국 트뤼포도 채플린도 모두 그가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저렇게 뜯어 해부하고 다시 기워내고. 그러면서 탄생하는 것이 오리지널이다. 독창성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은 둘째치고. 모자이크를 코주부 안경으로 대신한 센스가 기가 막히다.


바나나 공화국때도 그랬지만, 그는 항상 자신에게 익숙한 도구를 사용한다. 그에게 영화란 언제나 곁에 있는 친구같은 존재였지만, TV라고 불편한 관계는 아닌지라. 오히려 스탠드업 코메디언때 부터 더 가까이 지냈던 매체가 아닐까. 자연스럽게 TV 다큐멘터리 포맷을 접목시킨다. 그게 인물을 얼마나 잘 묘사해주는지 기능적인 효율을 넘어서서, 시종일관 유머로 떡칠되어 있는 영화에서 이런 브릿지는 음식 덩어리들을 코스요리로 둔갑시킨다. 흐름을 다잡고 리듬을 적절히 끊어주어 지겨울 새가 없이 이야기를 전해준다. 3인칭의 내레이션도 마찬가지. 우리는 마치 한 말썽꾸러기의 삶을 재밌는 이야기꾼의 입을 통해서 듣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그것과는 다르다. 인물의 내면은 관심 없다. 얼마나 더 웃길지. 그것만 집중하면 된다.


특유의 슬랩스틱에 관심이 없으면 글쎄.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중요한건 영화가 유머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 유머 코드가 맞지 않으면 "이걸 왜 봐?"상태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다. 영화를 찍기 전의 그를 예로 들어보자. 코메디 클럽에 들어서서 오늘은 누가 나오나 어디 보자... 하다가 우디 앨런? 나 얘 별로던데, 싶더라도 조금 참으면 그만이다. 시큰둥하게 쳐다보다가 그의 무대가 끝날때 쯤에 볼멘 소리로 "나는 쟤 별로야"하고 술이나 마시면 되잖은가.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취향에 맞지 않은 코메디언이 1시간 25분동안 떠든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괴로운 시간일까.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저 코메디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그게 재미없으면 그냥 영화가 재미없는 것이다. 이게 장치로서 존재하는 코메디와 본질로 존재하는 코메디의 차이가 아닐까. 맨하튼 미스테리도 훌륭한 코메디 영화지만, 그의 개그가 맞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헐리우드 엔딩이나 마이티 아프로디테 같은 영화도, 깊이는 얕아도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 또한 취향을 타는 유머라기보단 상황을 이용한 유머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깐깐한 사람도 즐겁게 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만약 당신이 애인과 함께 이 영화를 보는데, 인트로 콘트라베이스 씬을 보고도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그럼 당장 영화를 꺼라. 그를 구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돈을 갖고 튀어라는 우디의 영화 중 가장 취향을 적게 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든 없든 별 생각업이 볼 수 있고, 중간 어디부터 봐도 재미있다.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와 팝콘 무비 둘 중 하나로 나눈다면, 우디는 확실히 전자지만. 이건 팝콘 무비다. 그렇지만, 세상 어디에 이토록 온전히 코메디에 집중하고. 또 이렇게 타율이 높은 영화가 또 있을까?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은 있겠지만. 우디는 슬랩스틱보다 말장난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개그의 종류로 차별을 하는건 아니지만. 우디의 웃음이 훨씬 더 쉽고 따라하고 싶은 웃음이 아닌가? 채플린의 웃음들은 오마쥬를 하면 했지, 레퍼런스로 활용도는 낮다. 우디는 1시간 25짜리 코메디 레퍼런스라 말해도 손색이 없다. 덧붙여, 우디 앨런이라는 터널로 들어가기 위한 입문작으로도 이만한 영화가 없다. 그 다음으로 애니홀이나 맨하튼, 사랑과 죽음 범죄와 비행을 보고 나면 어느샌가 우디 앨런 도장깨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거 아닌가 싶을때 매치 포인트나 블루 재스민을 보면 되고. 또 이제 유머는 괜찮아, 깊이를 원해! 라고 하는 타이밍에 브로드웨이를 쏴라나 환상의 그대. 아, 카이로의 붉은 장미도 좋겠다. 평생 이레셔널 맨이나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안봐도 상관없겠지만, 이쯤되면 글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젤리그를 빼먹은건 나만 아는 영화였으면 싶어서 그랬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러브유 같은 영화를 보며 와인을 마시는 것도 좋을 것이고. 언급한 영화들 몽땅 다 리뷰하고 싶다. 하지만 역시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건 조금 부담스러우니. 이쯤 하고 턴을 마쳐야겠다. 오늘 밤 우디 앨런은 어떠세요. 네? 스캔들이요? 죄송합니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만약 재밌게 봤다면 죄송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