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싶어하는 편이다. 그냥 내가 살아가는 삶이 곧 삶의 자세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일것이다. 아니 그게 마음에 안든다구요!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삶을 양식화해서 템플릿을 가지고 싶다구요. 그냥 그렇게만 살아가면 되는걸로 고민 안하고 마음 편히 믿고 살아가기만 하고 싶다구요. 원래부터 반듯하게 살아가는 당신들이 뭘 알아!
하지만 삐뚤어진 인간의 페이크 추구미는 넘어야 할 산이 지나치게 많다. 왜 우리도 이런 머리 하고 싶다 하면 “손님 이건 고대기에요”소리부터 듣잖아. 손님 이 분은 우디 앨런이에요. 손님 이 분은 홍상수에요. 손님, 손님은 존나 그냥 윤동규에요
그러니 목표를 여러개 중첩해서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디 앨런의 삶을 목표로 한다 해도, 그만한 성공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내가 흉내 낼 수 있는 삶의 태도까지만 흉내낸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 동안 타자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오후에는 친구들을 만나고 산책을 하고. 밤에는 재즈 클럽에서 클라리넷을 불고. 그렇게 씌여진 시나리오로 종종 영화를 찍고. 아 이 부분은 좀 판타지네. 산책 까지만 취하도록 하자. 클라리넷도 좀 무리다요 무리.
애초에 사람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데 한 사람의 삶을 양식화 할 수는 없다. 정작 그 사람도 그런 삶을 살아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했겠는가. 그걸 훔치기로 했으면 양심적으로 훔치자. 양심적 도둑 조금만. 대신 많은 사람의 삶을 훔치는거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우디 앨런을 얼마나 부러워하든간에 내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닮고 싶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구분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하루키는 닮고 싶은 사람에 가깝다. 문학이라는 노골적인 예술 활동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기계적으로 정해진 양의 글을 쓰는 체계화된 삶. 달리기... 는 하기 싫지만 한다면 그렇게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근데 아마 해야하지 않을까?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면. 그치만 우디 앨런의 산책이 더 끌리는건 왜일까
이렇게 닮고 싶은 삶을 7~80개 모아서 섞는다. 어떤 때엔 그 사람이 어디에 커피를 담아 마시는지. 또 버스를 타면 어떤 자리에 앉는지. 집에선 무슨 차림으로 잠에 들고, 신발은 어떤걸 신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까지 유심히 바라보는 편이다. 마치 그걸 흉내내면 그게 되는 것 처럼. 최소한 그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라도 드는 것 처럼, 존경하는 사람들을 흉내낸다. 특히나 직접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카메라다. 어떤 카메라를 쓰는지, 무슨 캠코더로 찍는지. 그건 그 시대에서만 사용하는건가? 만약 그가 요즘 시대에 촬영을 한다면 어떤 캠코더를 사용할까? 굳이 6mm를 고집할까? 아니다, 이 사람은 효율을 더 중요시 여기니까 아에 아이폰으로 찍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의 태도는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없는데! 아마 이럴것이다 하고 상상한 것 밖에 없는데.
그러니 타인의 삶의 태도를 양식화 한다고 해서, 남을 따라하는 삶이라 얕잡아 볼 수는 없다. 말하자면 존경하는 사람은 내 행동의 핑계가 된다. 좋아하는 시계를 사고 싶은 핑계로 존경하는 사람이 차고 있다는 사실을 들고온다. 좋아하는 음악이 죽여준다고 말하기 위해 좋아하는 라디오 DJ를 언급한다. 효율적인 업무 처리 방식을 주장하기 위해 누구 누구도 이렇게 일한다더라, 하고 덧붙인다. 모든 존경심은 내 행동의 핑계가 된다. 그리고 모든 존경하는 사람들은 내 핑계의 증인이 된다.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그의 삶은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증인이지 않나요? 네? 우리는 우리라서 가능했고, 그는 그냥 윤동규에 불과하다구요?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최소한 행동하는 윤동규입니다. 되는대로 살아가는 윤동규보단 높은 점수를 줘야 하지 않겠어요?
네. 옳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