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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매체가 사라지면서 앨범의 개념도 사라져간다. 물론 "죽이는 앨범"같은게 꾸준히 나오기는 하지만, 그 꾸준히의 폭이 좁아지는게 명백히 보인다. 명백히라는 말을 사용하기 망설여지는건, CD매체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졌기 때문인데. 상식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으로만 가득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꾸릴 수 있는데, 굳이 앨범을 들을까 싶다. 그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 시대를 겪은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나 이 주제 정말 좋아하는구나. 불편함이 주는 깊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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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때는 2020년 후반이다. CD 플레이어는 고사하고, 이어폰 선도 거추장스럽다고 에어팟을 끼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구독형 시스템으로 원하는 음악은 언제든 들을 수 있고, 나만의 재생목록을 만들거나 한 곡 반복, 셔플, 심지어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맞춰 알아서 틀어주기도 한다. 음악이 점차 "Guru 2집 틀어줘"에서 "자기 전에 듣기 좋은 음악 틀어줘"가 되면서, 그 누구도 불편해지지 않는다. 높은 수준의 선곡과 디테일한 취향 반영. 질리면 언제든지 빼버리고 추가하고 넣을 수 있다. 유튜브로 들으면 라이브 버젼도 쉽게 들을 수 있고, 연관 아티스트들을 끝도 없이 추천한다. 이런 때의 나는 "노박사 심리 클리닉"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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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사 심리 클리닉은 CB MASS 3집 Massappeal의 7번 트랙인데, 한때 유행했던 저질스러운 개그로 구성된 Skit 트랙이다. 처음 한번은 노홍철의 연기가 재밌을지도 모르지만, 금방 질려버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듣고 싶은 나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스킷이다. 지금같은 때라면 재생목록에서 빼버리겠지. 심지어 내 돈 주고 처음으로 산 10만원 이상 가는 물건, 소니 CDP는 리모컨이 없었다. 가방에 들어있는 CDP를 굳이 꺼내서 다음 트랙을 눌러야 한다. 버스 같은데서는 그냥 포기하고 들을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그 다음 트랙이 Mr. Liar니까요! 미스터 라이어를 코 앞에 두고 스킷 듣는거 정도야 참을 수 있습니다. 최자한텐 미안하지만, 개코 벌스 언제 나오나 하고 두근거리며 듣는다구요. 그리고 또 후반부의 곡들이 나쁘진 않지만, 마지막 트랙은 심지어 Shout out remix입니다. 매분 매초가 소풍 전날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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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을 온전히 요즘 사람들에게 전달 할 수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진짜 깊은데서 오는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고? 아마 아닐거다. 이해가 될 리가 없다. 왜냐면 그 시대를 살았던 당사자인 나도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 처음엔 억지로 앨범을 리핑해서 듣기도 했지만, "어차피 검색하면 다 나오는걸"이라는 생각이 몹시 힘이 빠지게 만든다. 뮤지션들은 간간히 "Album only"버젼을 수록곡에 넣어 음반 시장을 살리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 안 듣고 말지"로 이어진다. 그런데 무슨 수로 이해시켜. 키비 1집 히든트랙이 초판은 Watch me, 재판은 Sign인지, 알게 뭐야. 검색하면 둘 다 들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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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로 "불편함의 깊이(가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펀딩은 카카오뱅크 3333032938345 윤동규 계좌로 받고, 최소 금액은 없지만 최대 금액은 5000원이니까 다들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