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처럼 글을 쓰고 싶다, 라고 한다면 역시

by 윤동규

1.

이 사람처럼 글을 쓰고 싶다, 라고 한다면 역시 오오츠카 에이지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의 반절은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어떤 작품? 이라고 물어본다면, 사실 모르겠다. 잡지에 연재되는 2페이지짜리 소설이었다. 연재물의 중간을 읽었기에 당연히 스토리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단지 그가 곁다리로 새어 잡담처럼 쓴 아톰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 소설의 중간에 개인적인 잡담을 한다는게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그 충격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2.

그리고 요즘은 하양지 작가다. 그녀의 만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좋다! 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지만, 글은 출판 도서의 글도 아니고. 단지 블로그에 일상을 전하는 글을 읽은게 다라서, 얼마나 대단하고 잘 쓴 글들인지는 모르겠다. 그 글이 뛰어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니라. 그리고 마냥 좋아한다고 그치는 것도 아니라. 닮고 싶은 글이다. 이런 글을 쓰고 싶군.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군.

3.

그러고 생각해보니, 한참 이슬아의 수필을 읽을 때에. 느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을 엿본 적이 있다. 그리고 깊이 공감했다. 그것은 나도 어떤 영향을 받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글이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느끼하고 싶지가 않았다. 느끼하다는건 얼핏 스타일로도 보일 수 있지만, 일부 특징을 가진 못 쓴 글을 지칭하는데에 가깝다고 느낀다. 강약 조절을 못하는 글. 누가 봐도 힘을 준 글이지만, 그 힘에 밀도가 없는 글. 삶에 대한 진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 처럼 연기하는 글. 느끼하다는 한 표현으로 담기엔 지나치게 많은 감정이다. 지나치다. 그래 지나친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느끼한 글은 지나치다.

4.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럼에도 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느껴지는 느끼한 글들이 넘쳐나는데. 쉬울리가 없다. 담백하고 담담한 글을 쓰고 싶지만 조금만 힘을 주면 삽시간에 느끼해진다. 그럼 글의 밀도를 채우며, 동시에 곁다리들을 쳐내야 한다. 하지만 뭐가 곁다리고 뭐가 밀도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게 잘 쓴 글과 못 쓴 글을 결정짓는다면. 나는 차라리 못 쓴 글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못 썼지만 최소한 느끼하지는 않네. 그러면 반절은 했다고 생각한다. 하양지 작가의 블로그를 읽으며 느낀 감정은. 담백하지만 잘 쓴 글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닮고 싶다. 닮고 싶은 글이 있다는 점은 즐겁다.

5.

추가로, 그녀의 취향도 좋아한다. 취향이라는 것은 원채 누군가와 닮고 싶어지지 않는 영역이긴 하지만, 그녀의 감상들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아침의 피아노도 그런 이유로 빌려 읽었었다. 취향을 즐기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이 나의 취향이라서가 아닐까. 내가 기다리는 것들 중 손에 꼽는 즐거움이다.

작가의 이전글불편함의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