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는 스토리인가 플롯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둘 중 뭐가 더 재밌냐는 따질 수 있다. 애매하더라.
1.
목숨을 구해준 왕자가 몹시 비호감이라서, 식당에서 반말로 물 달라고 하고. 인스타그램에 자꾸만 #소통#맞팔#좋아요반사 를 달고, 말 끝마다 "오빠가"를 붙이는 타입이라서 어떻게든 결혼은 피하고 싶은 공주의 이야기. 를 예를 들어보자. 평생 영상이나 만화나 글로 만들어질거라 생각은 안했는데 이렇게 쓰이네.
2.
이 이야기를 쓰는것도 충분히 즐거웠다. 목숨을 구해준 왕자가 내 타입이 아니다는건 어찌보면 클리셰 비틀기지만, 그것도 너무 닳고 닳아 클리셰 비틀기의 클리셰다. 그러니 이야기의 큰 틀 보다는 디테일한 요소들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했다. 판타지 세계관에서의 비호감이 식당에서 반말로 "여기 물"이라고 말하는 모습이라는건. 조금 유쾌하지 않은가? 인스타그램이 갑자기 등장하는 부분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로운 느낌의 이야기어서 좋았다. 엔딩은 결국 공주가 틴더로 그럴듯한 왕자들을 찾아보는 것으로 끝나는데, 결국 판타지와 현대의 믹스매치가 가장 큰 매력 요소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다.
3.
플롯으로 보자면. 만화든 영상이든, 공주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공주의 묘사에 맞춘 왕자의 비호감 행동들이 정점을 이룰 것이고 비호감이 차차 쌓여감에 따라 틴더를 하는 엔딩에 도착했을 때 이해를 하겠지. 그렇지, 목숨 구해준게 뭐 그렇게 중요해. 저렇게 재수없는걸. 하지만 평범한 시민이나 병사들은 싫어요를 누르고, 다른 왕자나 귀족, 용사들만 라이크를 누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은 속물적인 면모를 보여줘도 유쾌하겠다. 공주가 엔딩에서 감자칩을 먹으며 엉덩이를 벅벅 긁는 장면을 추가하는건 어떨까. 왕비가 "얘 밥 먹으렴"이라고 하면 공주가 "아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라며 끝나는 것도 좋겠다.
4.
막상 정리해보니 결국 스토리고 플롯이고. 메세지 없이 늬앙스만 존재하는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야기 쓰는건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