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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시작할 때에 각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뭐든지 대충 빨리 시작하는데에 도가 튼 사람이라 안 그런 줄 알았지만. 그런 나조차도 녹음을 하려면 좋은 마이크를, 촬영을 하려면 좋은 카메라를 준비하기 바쁘다. 지금 책상 위에 있는 이 스마트폰이 기능적으로 처참한가? 그건 아니다. 어지간한 촬영에선 그걸 구분해낼 귀도 눈도 없다. 그럼 왜 나는 장비를 갖추는가. 이건 좀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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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고 나중에 덧붙일게. 장비는 결국엔 패션이다. 낮춰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흔히 우리가 패션에 신경쓰는 그 이유가 장비에도 녹아 있다는 이야기다. 왜 굳이 데이트할때 편하게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을 수도 있는데, 예쁜 옷을 갖춰 입고.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입겠는가. 어차피 이 옷을 입고 있는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옷은 중요하지 않아! 라고 말하기엔, 결국 몇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눠보기 이전에 그 사람을 판단하는건 옷차림. 머리 스타일. 핏과 걸음걸이 등이다. 말투를 패션으로 놓고 본다면, 매너도 장비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요컨데 무엇을 말할지는 그 사람의 이야기라고 쳐도. 그걸 어떻게 보여줄지는 그 사람의 장비가 비춰 준다는 것이다. 커피가 맛있으면 뭐하는가. 카페가 전혀 들어가고 싶지 않은 외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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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치면 그림, 소설로 치면 문장력이 그러할 것이다. 재밌는 이야기만으로 충분하다면 모든 것이 그 본질의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최초로 생각이 꺼내어지는 형태 있잖아. 아이디어 노트. 혹은 주변 친구들에게 떠들어대는 말. 그걸 그대로 판다고 해서 의미가 있을까? 잘 다듬어 포장해야지. 결국은 모두가 도구일 뿐이고, 플랫폼일 뿐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라고 치부하기엔 패션의 세계. 도구의 세계는 그 나름의 깊이가 있다. 내 이름이 요시히로 토가시고, 헌터x헌터 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면 뭐 넘어가줄게. 그래 넌 니 맘대로 해도 되긴 하지만. 심지어 그 토가시도 그림 엄청 잘 그리는건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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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좋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노력 만큼, 그걸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건 전문가들이나 하는거라구요? 그게 무슨 패션 모델만 옷 갖춰 입는다는 소리. 이건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노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응당 필요한 자세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로. 나 보이스 레코더랑 마이크 4개나 있지만. 응? 그게 다 용도가 다르다 이말이지. 하나는 심지어 화이트 노이즈가 심해. 비싼거 산다는게 아니라, 그냥 20만원 선에서. 할 수 있는 투자잖아? 나 내레이션 녹음도 많이 하니깐. 아 그래 소니꺼 그거 쓰면 되긴 하는데, 그게 좀 투박하게 생겨서 영상에 나올때 없어 보인단 말이야. 아 새거 사는거 아니라구. 중고로 올라오면 살거라구. 아 재난지원금 남은걸로 살게요오. 아니 중고로 사는거 맞는데. 그게 말하자면 그렇다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