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거짓말의 파국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신뢰의 문제보다 먼저, 삶의 불편함이다. 커피 애호가인 데이트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며 책을 읽는다고 거짓말했다고 치자. 관계가 진전되어 집으로 방문한다면, 당신은 커피머신 구매나 캡슐, 원두 맛의 차이를 공부해야 한다. 아침에 부지런히 잘 일어나야 하고 읽지도 않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다 결국 "넌 나를 바꾸려 해"하며 느닷없이 남탓을 하거나, "사실 너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말했어" 두가지 패턴으로 이어진다.
1.
두번째의 경우엔 신뢰와 존중보다 자신의 삶의 불편을 선택한 케이스다. 이제 당신의 "좋다"라는건 순수하게 좋음을 의미하지 못한다. 좋은척, 혹은 좋은걸로 치고 넘어가자 라는 해석이 추가된다. 이 사람은 사실 더 좋아하는게 있지 않을까? 나도 사실 좋아하는 척 하는건 아닐까? 연인은 당신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의심을 품게 되고, 당신은 후회하게 된다. '아 그냥 끝까지 숨길걸!'
2.
그럼 첫번째 경우로 가서. "넌 나를 너무 바꾸려고 해!"따위의 말은 어떤가. 아무도 당신을 바꾸지 않았다. 당신이 호감을 사기 위해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는가. 커피는 무슨 라씨를, 아니 뭐 필요하다면 와인도 만들어 먹는다고도 했을거다. 그러니 호감을 사기 위한 거짓말은 당신이 감내해야 할 숙제가 부여된다. 그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게 해야 한다는 미션이다. 진짜로 커피 머신을 사고, 캡슐을 종류별로 사고,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자. 당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지게 하지 말자.
3.
그러니 거짓말의 가장 이상적인 엔딩은 거짓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나 그거 좋아해! 그럼 그걸 좋아하면 된다. 나 그거 잘 알아! 그럼 잘 알면 된다. 자신의 취향과 상관없이 무턱대고 좋아한다 해놓으니 그렇게 고생하는게 아닐까. 자 이제 앞으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으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꾸며내자. "난 매일 아침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시나리오를 쓰지.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점심에는 간단한 에세이. 퇴근 이후에는 개인작업을 편집하거나 촬영 계획을 짜. 주말에는 연인과 드라이브나 캠핑, 여행을 간다네"
4.
왜 말투가 이렇지. 말투까지 이렇게 되고 싶은건 아닌데. 80년대 말에 나온 셜록 호옴-즈 번역판에서 홈즈가 왓슨에게 코어-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할 것 같은 말투다. 저기서 말투는 담백하게 고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