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쉬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어 선택에 있어서도 이 말이 조금 어렵진 않을까? 하는 고민에 수정하는게 대부분이다. 그러는 한편, 분명히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뭔가 재수없는데? 같은 느낌이 드는 포인트도 있다. 예를 들면. "음악을 듣자 마자 이어폰 너머로 전율이 느껴졌다"같은 말은 어렵진 않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어려움이란, 일상에서 흔히 쓰냐 안쓰냐의 포인트도 있다. 전율이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문학에서 남발하는 표현이고, 일상에서는 몹시 어색한 표현이다. 영화에서 자 선수입장 하는거처럼. 그런 말들이 불편하고, 또 재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식상하다고 느끼는건지도 모른다. 내가 내 느낌인데도 뭔지 잘 모르겠네. 더 파헤쳐보자.
1.
그러니까 어떤 감정은 그 사람만의 고유의 것이다. 기분이 나빴다, 좋았다, 애매했다 모두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그걸 보여줄지 아닐지는 선택이겠지만 보여주는 이상, 결국 그것은 수정할 수 없이 정해진 감정이다. 그런 감정이 타고난 고유의 것이라면, 그 감정을 어떻게 보여줄지는 선택의 영역이다. 와! 좋다!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지. 왜 좋은지를 냉철하게 분석하는게 좋은지. 또는 온갖 미사어구를 동원하는게 좋은지는 감정이 생긴 이후에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하다는거지. 그렇게 격한 감정이 생기는데, 그걸 이렇게 잘 가다듬는다고? 좀 더 다듬어지지 않는 편이 더 진솔하지 않나. 이렇게 고민하는 시점에서 이미 늦은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표현이 장대할수록 기괴하다는 느낌은 지을 수 없다. 3인칭의 글이라면 몰라도, 본인의 감정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마치 난생 처음으로 물을 맞는 꽃의 심정이었다"라고 말하는건 꺼려진다는거다. "그것은 꼭 모레알을 한스푼 집어 삼키는 기분이었다"라는건 괜찮다. 확 와닿잖아. 감정이 한번 걸러지는게 아니라 다이렉트로 꼽힌다. 에쿠니 가오리의 "심장이 내려앉고, 칼에 찔린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같은 표현도 좋다. 담백하고 직관적이다. 세상 모든 표현이 담백하고 직관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는지, 표현에서의 취향이란건 있다. 나는 난생 처음 물을 맞는 꽃의 심정이라는 표현을 싫어하진 않는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가사이기도 하고, 그 심정이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와닿지 않는다. 바꿔 말해,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은 아니다.
2.
그러니 글은 더 쉬워지고 가벼워진다. 한없이 얕고 속이 빈 것 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게 좋다. 아마 절대로 무거운 글은 쓰지 못하겠지. 글을 쓰면서 스스로가 낯간지러워서 온 몸을 박박 긁을지도 모른다. 그 왜 어디가 가려운지는 모르는데 가려운 그런거 있잖아. 두드러기가 난다고 표현하는 그런거. 그렇지만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선택한 나의 표현 방식이다. 모든 글을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작업을 사랑하는게 일순위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일이니까 한다고? 모르겠다, 나는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완벽하다고는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이 표현 방식에서 내가 사용하는 도구가 나에게 가장 잘 맞다고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화가가 붓을 증오하면 어쩌자는거야. 그러니 난 나의 문체. 나의 그림체. 나의 색감, 나의 편집을 사랑한다. 이게 나의 작업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이상적인 작업에서 가장 먼저 사랑에 빠져야 할 상대는 나 스스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뭐 내 블로그잖아. 내 생각 적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