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의 연습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세상 어느 연습장이 15만명이 열람하는가.
결국 연습장이란 표지를 덧씌운 비정기 연재물이고, 수많은 인스타툰이 그러하듯. 자신이 겪고 느꼈던 에피소드를 그림과 대사로 엮어낸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생각을 한다, 라는 것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러웠다.
일상에서 재수없는 인간을 보고 저런 말도 못하겠냐, 하겠지만.
말이 아니라 글이며. 글 뿐만 아니라 그림과 함께이다.
표현을 과격하게 내뱉었다고 해서, 그걸 가다듬을 시간이 없지 않았다.
즉 대가리와 눈깔, ㅋㅋㅋㅋ는 그가 추구하는 그의 모습이다.
자랑스러운 나의 하루이며, 자세이고, 취하고 싶은 태도이다.
그 점이 영 실망스러웠다.
악인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가장 통쾌하고 대리만족이 됨은 분명하다.
악인이 진짜 악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그를 그렇게 선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걸로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그런 모습을 자랑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세련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꼭 모든 사람들이 세련되어야 하나요. 점잖아야 하나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작가도 아니고.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확고하지 않다면, 원색적인 비난이나 비아냥도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님은 작가님이잖아요.
이게 몹시 실망스러웠던 포인트.
생각의 표현에 있어서 깊이가 있는 작가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구나.
이어서 -
모든 콘텐츠의 해석의 오류는 작가가 짊어져야 한다.
유독 페미니한 작업에는 항상
“이런 것도 이해를 못함?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럼?”
이라는 댓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여기서 좋은 작업이 취해야 하는 태도는 두가지 뿐이다.
이해시켜 주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3번, “이해하지 못하는 놈들 한심해 하고 욕하기”라는 선택지는 없다.
물론 대부분 작가가 아닌 관객들의 태도이긴 하지만,
작가란 위의 두가지 중 하나의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것이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시장 분석 뭐 이런 말도 자주 쓰잖아.
방송 일을 할때에는 시청자가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감안하고 작업한다.
논문을 쓸 때에는 그보단 훨씬 올라갈 것이며,
양자역학의 헛점을 다루는 이야기와
술먹고 패싸움 하는 이야기의 언어 선택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마다 욕을 많이도 먹었지만. 또 하자면.
“남자들은 겪어보지 않아서 백날 천날 말해봤자 모른다니까”가 아니라
백날 천날 말하지 말고.
딱 한번만.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해라.
이 악물고 눈 감고 귀 닫고
아닌데 아닌데 외치는 사람들이야 애초에 설득할 순 없겠지만
단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건지 모르고 있을 뿐인.
그냥 그렇게 살아와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으면,
이해를 시켜 줘라.
원색적인 비난과 비아냥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단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통쾌해 하며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그리고 그게 목적이었다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그게 못 만든 이야기가 감당해야 하는 형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