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밤은 암스테르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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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결혼한지 한달 겨우 넘었지만, 그래도 굳이 아득바득 예비 신랑 신부에게 조언을 한다면. 결혼식과 해외 신혼여행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두개의 직장을 다니는 것과 같다. 무직이라면 조금 바쁘네 정도겠지만, 무직이면 결혼을 못하잖아요. 결국 세개의 직장을 다니는 기분으로, 출근해서는 회사 일. 퇴근해서는 여행 준비. 주말마다 결혼 준비에 몸이 세개라도 모자른 시간을 보냈다(과장이다, 세개면 여유로웠을 것이다). 경주로 생각할 때엔 숙소만 준비해도 됐지만, 해외는 동선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짜야 한다. 여기서 여기까진 뭘 타고 이동할지. 식사는 어디서 할지, 숙소는 몇시에 들어갈지. 버스, 지하철, 비행기에 배에 도보에 아주 우주선 빼고는 다 타고 다니는 기분이다. 이 시기의 나는 운전에 대한 겁이 상당했는데, 몇 몇 지역은 도저히 대중교통으론 갈 수 없어서 큰 마음 먹고 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간간히 주말마다 운전 연수를 다녔고, 체감상 직장이 하나 더 추가된 기분이었고. 네번째 직장이 가장 힘들었다.


렌트카와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어느정도 동선에 맞는 숙소를 찾고 나니 결혼 1주일 전이다. 결혼은 그래도 웨딩 플래너님이 어느정도 안심을 시켜주지만, 여행은 가이드도 없고 무엇보다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정보가 너무 적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의 먼저 맞는 놈이면 다행이지만. 뭐든지 중간만 가라에서 선두에 선 것 같아서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기 마련이다. 렌트카나 비행기 표를 사는 디테일한 과정을 적을까 고민하긴 했는데, 뭔가 그런 세세한 정보가 들어가면 괜히 글의 무드가 생생정보통 같아져서 넘어가지만, 비행기표는 코로나 특수로 인해 2인 왕복 160만원에 끊었다. 암스테르담 경유긴 하지만, 40만원으로 유럽을 갈 수 있다니. 처음으로 코로나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순간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해외여행을 거의 가본적이 없어서 이게 싼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월세 40이면 싼 편에 속하는걸 감안하면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갈 수 있는 돈이 아닌가.


눈 깜짝 할 새에 유부남이 되었고. 새벽의 인천공항은 인류가 좀비와 몇년째 싸우는진 몰라도, 확실히 패배했다고 느껴지는 세계처럼 스산했다. 우리 진짜 여행 가는 거 맞아? 캐리어까지 무사히 붙였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새벽 비행기래도 여행객은 우리뿐이고, 죄다 출장 가는 외국인이나 출장 다녀오는 외국인 뿐이다. 혹시 결혼식 끝나고 한숨 자는 사이에 법이라도 바뀐거 아닐까. 괜히 여행 규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사과, 물을 사고 구석 자리에서 급하게 배를 채웠다. 아 진짜 마지막. 마지막으로 조언합니다 예비 신랑 신부님들. 결혼식때 밥은 꼭 드세요. 근 30시간만에 배를 채우고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새벽 비행기는 시차고 뭐고, 모두가 이때 자기로 한거야 약속이라도 한 듯 경남 양산 여관방처럼 조용했다. 궁금한게, 여기서 카운트하는 밤은 비행기 내에서 흐른 시간이야, 아니면 지금 지나가고 있는 나라의 시차를 따르는거야? 같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눈을 떠보니 네덜란드였다. 오 미나리네! 하고 반가워하며 틀었던 영화는 1/5도 못 봤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리는 동안. 인천 공항에서 미처 해오지 못했던 환전을 했다. 1인당 환전 할 수 있는 금액이 정해져 있으니 현금 넉넉하게 쓰고 싶으면 이런건 미리미리 해보자. 돈도 돈인데 공항은 말도 안되게 비싸서, 수십만원이나 손해를 보며 바꿨다. 일단 수중에 현금이 생기고 나니, 암스테르담 공항 내에 갖가지 기념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풍차와 튤립, 미피(미스터 피자가 아닌 팬시 캐릭터였다). 우리는 금방 현혹되어 양손 가득 선물을 들었지만, 생각해보라. 네덜란드산 선물을 받는 사람들을. "너희 이탈리아만 간 줄 알았는데 네덜란드도 갔어?", "아니 여기서 환승했어!", "아... 그래...". 실망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내색은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선물은 여행지에서 사는게 좋지 않을까. 더 넣을 가방도 없고. 한 손 가득 엽서를 집어든 미소를 간신히 설득하고, 베네치아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멀리서 창 밖으로 해가 뜨는게 보였고, 우리는 그렇게 결혼 이후 첫날밤을 암스테르담에서 보내게 됐다. 한참을 말없이 일출을 바라보다가, 베네치아행 비행기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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