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렌즈는 사치가 아닙니다.

by 윤동규

1.

최근 단렌즈에 완전히 꼽혀서, 하루종일 장터를 뒤적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는 입장에서 단렌즈는 하등 쓸모 없는 렌즈라고 단언한다. 물론 렌즈의 성능이나 밝기, 크기, 무게를 생각한다면 "야 줌 정도는 발로 뛰어!"라든가, "화각별로 하나씩 들고 다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만하다. 하지만 하다못해 극영화를 찍는다면 몰라도, 다큐멘터리에서 단렌즈란건 나이프만 들고 전쟁을 하는 기분이다. 물론 멀리 있어도 발로 뛰어 가서 찍으면 되지만. 너무 가까우면 뒤로 물러나면 되지만. 그 다가가고, 물러나는 사이에 벌어진 장면에는 무책임할 수 밖에 없다. '제발 아무 일 일어나지 마라'라고 빌며 화각을 바꾸는거다. 심지어 줌렌즈도 주밍 과정에서의 흔들림 때문에 캠코더를 산 마당에. 단렌즈라니. 발줌이라니!


2.

그러나 다른 의미로 단렌즈에 관심이 갔는데. 얼마 전 촬영도중 촬영 감독님이 계속 지금 화각을 확인하며 촬영을 하는 것이 보였다. 아니. 그냥 모니터 보고 예쁘면 끝 아닌가요? 아니란다. 렌즈란 화각별로 가장 피사체를 예쁘게 담는 화각이 있고, 눈보다 숫자를 믿는다. 일단 화각을 맞추고, 화각에 장면을 맞춘다. 맨날 24-105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찍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단렌즈가 생각이 났다. 촬영 감독님이 말한 <가장 예쁜 화각>으로 만들어진게 바로 단렌즈다. 왜 주구장창 35mm, 50mm만 나오겠나. 그게 제일 예쁘니까. 줌렌즈 놈들은 알 턱이 있나. 멀면 좁히고 가까우면 넓히면 되니까.


3.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엔 지적 허영심이 날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화각이란게 있으면, 나는 그 화각에 익숙해지고 싶다. 숫자로만 판단하는게 아니라, 내 눈으로 그 숫자를 익히고 싶다. 조금이라도 더 예쁜 장면을 담고 싶다. 프레이밍. 사진에서는 주구장창 쓰는 단어를, 영상만 찍다가 뒤늦게 공부하고 싶어진다. 내가 왜 갑자기 단렌즈 단렌즈 입에 달고 사는지. 얼마 전에 고프로 샀으면서 뭘 또 사려고 하는지, 궁금해 할지도 모를 미소에게도 답해주고 싶고. 또 나 스스로도 단렌즈를 사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장터를 뒤지면서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가벼워서. 밝아서. 화질이 좋아서보단, 화각에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에 익숙해지고 싶어서, 단렌즈를 구매하고 싶다.


4.

얼핏 그럼 줌렌즈를 줌 안하고 쓰면 되지 않나? 싶지만, 에슐리에서 다이어트 하는 소리다. 눈 앞에 먹을게 있는데 참는 것 보단 먹을걸 치우는게 가장 이상적이다. 더군다나 줌렌즈는 데일리로 들고 다니기에 쉽지 않은 무게고, 가벼운 줌렌즈는 제대로된 결과물을 내기엔 턱없이 모자란 성능이다. 결국 매일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게. 그럼에도 훌륭한 성능. 한정된 화각에 익숙해질 수 있는 연습. 끝으로 패션의 완성. 단렌즈, 다큐멘터리 감독도 들고다니기 참 좋아요. 무천도사 등껍질처럼, 하루 하루가 훈련이고 연습이에요. 그렇다고 쌩 돈 쓰는것도 아니에요. 줌렌즈 여러개 있었는데, 그 중에 두개나 팔고 사는거니까요. F가 1점대까지 내려가요. 한 밤 중에도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사치가 아닙니다. 정당한 투자입니다. 고개 드세요. 당신 죄인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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