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머를 광고하는 사회가 왔다. 그리고 난 이 사회가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SNS를 한다. 그 중 어떤 사람은 재미있는 유머를 사람들에게 알린다. 트래픽은 언제나 돈이 됐기에, 유머가 돈이 되는건 새삼스럽지 않다. 디씨 인사이드든 웃긴 대학이든 하물며 일베조차도 흥미로운 논문보단 깔깔 유머를 올리기에 바쁠 것이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대 그리스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꾼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돈이 됐다.
2.
여기서 두 갈래로 나눠보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갈래를 가지겠지만, 내가 무슨 SNS 마스터도 아니고 논점에도 많이 벗어날거니까. 크게 A. <웃긴 것들을 모으는 사람>과 B. <웃긴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IMDB와 스티븐 스필버그로 보던지, MTV와 마이클 잭슨으로 보던지 어쨌든. 각자의 A와 B가 그려질 것이다. 쉽게 말해, 매거진과 스타로 대체할 수 있다. 지금까지 딱히 어렵게 얘기한게 없긴 없지만. MTV는 음악을 소개하고 IMDB는 영화를 소개한다. 패미통 같은 잡지에선 게임을 소개했을테고, 보그나 에스콰이어에서 패션을 소개한다. 매거진은 자신이 속한 주제 안에서 좋은 것들을 추려서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 좋은 것들을 위해서 돈을 지불하고, 볼품 없는 것들은 맥을 못추고 사라진다. 당연한 이치다.
3.
하지만 사회가, 조금 당연하지 않게 흘러간다. 범람하는 SNS와 인터넷으로 인해, 종이 잡지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매거진은 저마다 각자의 생존 방식을 찾아 떠난다. 더이상 판매 부수에 집착하지 않고 각자 정착할 수 있는 대륙으로 뻗어간다. 힘이 있는 매거진은 철학이 있고, 철학은 서 있는 무대가 달라진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철학이 있어도 사라지는 매거진이 부지기수였지만 시대의 흐름을 서핑하듯 유유히 즐기는 매거진은 제 2, 3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슬슬 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4.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타는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경보아파트의 김아무개씨가 제 아무리 잘생기고 웃기고 노래를 잘 불러도, 대학가요제 본선 무대에 서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하다 못해 전국 노래자랑이라도. 못하다 못해 슈퍼스타 K나 팬텀 싱어라도 나가야 스타가 되는 길에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 전까진 잘생기고 노래 잘 부르는 밥만 축내는 애물단지인 것이다. 그런 김아무개씨도 이젠 자신의 SNS를 만들고, 채널을 만들어 커버곡을 올리고 작곡 브이로그를 올리고, <구독자 여러분 드디어 제 첫 디지털 싱글이 나옵니다>라며 쓰레기같은 음악을 광고할 수 있게 된다. 어찌 보면 매거진이나 매체의 몰락과 상반되는, 개인의 무한한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암이 있으면 명이 있는 법. 네? 암이라구요? 아 아미라구요. 저도 아미에요.
5.
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삥 둘러가냐면. 어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 같은걸 설명하는건데요. 황건적의 난이나 듄 1편 같은건데. 지금 몇몇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유튜브 채널은 그런 사회의 상징적인 지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꼭 자신의 채널이나 전문 분야가 아니라도, 세상의 이런 저런 재미있는 것들을 끌어다 모아 놓는 인스타그램 채널 매거진보단 찌라시에 가까운. 그리고 타고난 끼나 재능, 혹은 혀를 내두를 노력은 없지만. 해외 성공 사례를 잘 분석하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대로 잘 흉내내고 따라해서 눈 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보다는 광대에 가까운. 찌라시와 광대에 대한 이야기다. 이딴 이야기를 위해 보그나 대학가요제, MTV와 마이클 잭슨까지 꺼내야 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자 자 이제 본문입니다. 졸리면 교실 뒤에 가서 서서 듣고. 10분 일찍 마쳐줄게.
6.
찌라시. 저질 인스타그램 계정의 목표는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와서 욕을 하든 남성 혐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를 하든, 스트릿 걸스 파이터의 미션에 불공정을 욕하든 상관 없이, 하나라도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는 것이다. 언론이랑 똑같잖아? 생각하긴 쉽지만, 그들이 <유머>를 팔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 유머를 팔게 됐을가, 광대로 넘어가자.
7.
광대는 웃음을 판다. 광대가 웃음을 파는건 이상할게 없으니, 왜 광대가 됐을지부터 생각하자. 스타가 되고 싶지만 재능은 없다. 재능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에도 영 흥미가 없다. 하지만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눈 앞에 놓여져 있다. 출근길 9호선은 진절머리가 나고, 해삼 내장만한 월급에 절망하는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퇴사해야지"와 "퇴사하고 유튜브 해야지"를 반복한다. 그러다 진짜로 퇴사한다. 그럼 뭘 해야 할까?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으니, 요즘에 이게 통한대. 요즘 사람들이 이런걸 좋아한대를 찾아본다. 요즘이든 중세 유럽이든 기원전이든, 사람들이 늘 좋아하는건 섹스와 코메디다. 유튜브 정책상 섹스는 좀 힘드니까 코메디를 하자. 왜 요즘 유튜브에 두 눈 뜨고 차마 못 볼 저질 코메디가 늘어났는지에 조금은 이해가 간다.
8.
그럼 이제 광대와 찌라시의 협업 단계다. 찌라시는 어떻게든 사람들이 많이 눌러 보게, 광대는 뭘 눌러 볼지를 만든다. 두 새끼 다 고민이란 과정은 없다. 손가락에 뇌가 달린 뇌졸중 환자처럼, 무지성으로 글을 싸지르고 개같은 영상을 만들어낸다. 광대는 찌라시에게 돈을 주고. 찌라시는 광대에게 사람들을 보내고. 사람들은 광대에게 시간을 주고. 광대는 구글에게 시간만큼의 수익을 얻는다. 이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광대가 재미있어야 한다. 아니.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무슨 매거진이든 매체든 언론이든 찌라시든. 재미있어야 눌러보지 않겠는가? 광대가 재미있거나. 하다 못해 매체와 찌라시라도 재미있어야 관심이 가지. 제품은 안 좋아도 광고는 잘 찍어야 하잖아. 아니야? 나는 적어도 그런 상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님 맙소사, 이야기는 <재미있는걸로 하기로 했어>작전에 돌입하면서 종말을 향해 간다.
9.
돈은 받았지만 광대는 더럽게 재미없고, 그걸 재밌게 만들 능력도 없는 찌라시는. <그냥 재미있는걸로 하기로 했어>작전을 쓰고, 사람들을 속이기 시작한다. 재미는 픽션이어도 상관 없다. 하지만 "야 이거 재밌지 않냐?"는 픽션이어선 안된다. 유머가 만들어지더라도, 유머를 보고 웃는 사람들이 만들어져선 안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뒤쳐지는걸 두려워한다. 이게 대세고 세상의 흐름이면, 제 아무리 병신같아도 예싸비요우먼에 맞춰 춤을 쳐댄다. <그럼 사람들을 사서, 모두 재밌다고 'ㅋㅋㅋㅋ개웃김ㅋㅋㅋ' 같은 댓글을 달게 하면, '이게 뭐가 웃긴거지?'하고 의문이 들어도 일단 눌러보지 않을까?> 에이 사람들이 설마 그렇게 멍청하겠어. 멍청합니다. 심지어 눌러보는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몇 없는 친구들 계정을 태그하면서까지 웃음 없는 웃음을 공유한다. 그마저도 댓글 알바인 경우가 대다수지만, 그래도 확실히 존재한다. 웃음 없는 웃음이 웃음인걸로 착각하는 부류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바보면, 내가 가장 바보처럼 보이니까.
10.
그래서 왜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됐나를 되집어보자. <유머를 광고하는 사회가 왔다. 그리고 난 이 사회가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유머는. 유머는 건드리면 안되지 개새끼들아. 이제 우리는 웃음의 본질을 의심하게 된다. 직접 보고 듣고 웃은게 아니라면, 이게 웃음인지 웃긴걸로 하자 작전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웃음을 의심부터 해야 한다. 얼마나 불합리한 사회인가. 인터넷 속도도, 휴대폰 성능도, 카페인, 비타민, 미네랄 함유량도, 배달 음식 빼먹은건 아닌지 정량도 의심하는 사회에. 이제 유머까지 의심해야 하나. 진짜 웃긴것만 웃으면 안될까? 웃기지 않은걸 광고해야 한다면, 광고를 웃기게 만들면 안될까? ㅋㅋㅋㅋㅋㅋㅋ를 40억개를 붙인다고 갑자기 깔깔 유머가 바뀌는게 아니다. 유머가 돈이 되는건 알겠다고. 너희 유튜브 채널이 성장해야 하는것도 알겠어. 그럼 콘텐츠를 재밌게 만드는걸 고민해야 하는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보면 되는거 아니야? 왜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보는 듯 한 연기를 하는거야? 이게 마케팅이야?
11.
10개 문단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화가 치밀어 올라서 지저분하게 여기까지 왔다. 한번 숨을 가다듬고. 정리해봅니다. 인스타그램 계정 여러분. 네 뭐, 댓글 알바에 얼마나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그렇게 웃음 없는 웃음 조작 계속 하시구요. 대신 서로 태그해서 "@negutive 야 이거 봐바ㅋㅋㅋㅋ"작전 쓸거면, 서로 팔로우라도 하게 하세요. 웃긴 유머는 공유하면서 서로 맞팔도 안하는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머 없는 유머 유튜브 여러분. 네 우리 유튜브 광고해주세요 하는건 좋은데, 그 돈으로 너희 콘텐츠 더 잘 만들 생각을 해보는건 어떨까요. 마케팅비와 콘텐츠 제작비가 나뉘어져 있는건 알겠지만, 그 마케팅에 속아 아리송해 하면서도 그 병신같은 콘텐츠 끝까지 본 사람은 뭔 죕니까. 호프집 공사 중인데 찌라시부터 뿌리고 있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포함해서. 재미있어 보이는 콘텐츠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 찾아보는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순수하게 웃음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가 됐어요. 좆됐어요. "이거 나만 안 웃긴거야?"라고 의문을 던질 때. 예전이라면 취향 차이였겠지만, 지금은 나만 돈 안받은거니까 얼른 돈 달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