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들어 글의 날카로움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날카로움이란 꼭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을 가지거나 촌철 살인의 멘트. 혹은 팩트를 전달해야 생기는게 아니다. 잘 다듬어지고 완성도가 높은 글을 볼때, 우리는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베일 듯 한 수트 핏 뭐 그런 말 있잖아. 정교함. 장인 정신 이런거. 그런게 없다. 알고 있다, 그런걸 싫어해서 일부러 더 아마추어처럼 군다는 것을. 뭐 그러니까 그게 어, 그래서 같이 쓸데없는 접속사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캐릭터를 구축하고 싶은 마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뭔 캐릭터야? 싶겠지만, 나는 이게 일종의 연기력이라고 생각한다. 발음을 또박 또박 잘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아나운서처럼 말한다면 듣기엔 편할지 몰라도, 이야기의 현실성은 옅어집니다. 물론 잘 들리게 말해야겠지요 그건 배우의 덕목입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발음을 잘 못하는 캐릭터다, 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는 일부러 뭉개는 연기도 필요하다는 소리에요. 저는 거기에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설픔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있는 법이지요.
2.
그런 저이지만. 그럼에도 날카로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고수가 되고 싶은 것이지요. 물론 고수라는게 단순히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닐테고,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되는 고수 따위 저부터가 먼저 거절합니다. 깊이를 가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깊이라는게 하루 아침에 되는게 아니라고 해서, 조급함도 느끼면 안되는 종류의 것입니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깊이를 단어 그대로 표현해서, 땅을 파는 행위라고 생각해봅시다. 네 땅을 파는게 하루 아침에 끝나는것도 아니고, 이대로 판다고 해서 다이아몬드가 나올지 고려 청자가 나올지 유전이 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땅을 파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다못해 동네 개도 뼈다귀를 묻으려고 땅을 팝니다. 나는 왜 땅을 파는가. 무엇을 위해 파는가. 그리고, 더 깊게 파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이런걸 고민한다는 뜻입니다. 당장 지각 맨틀 외핵 내핵 건드리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3.
그럼 원하는 글이 뭔지 정의해볼 순서겠네요. 가장 중요한건 유머입니다. 유머를 갖췄으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라, 유머가 없는 글은 의미가 없다 수준까지 가기에 제일 먼저 꺼내봤습니다. 유머와 재미는 조금 다릅니다. NFT와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재미는 곧 관심에 속하지요. 사랑스러운 연인의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유머와 같진 않습니다.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끌어들이는 유머를 원합니다. 그래야 아무리 허무맹랑하고 비주류의 이야기를 펼쳐도 일단 재밌다는 이유로 읽을거니까요. 이건 제가 쓰는 글, 제가 만드는 영상 모두 포함하는 이야기입니다.
4.
두번째는 편안함입니다. 글을 쓰는 내가 편해야 합니다. A4용지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글을 쓰라면 못 쓰는 사람입니다. 키보드와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언제든지 삭제와 수정, 삽입이 가능해야 합니다. 모르는게 있으면 즉각 검색해봐야 하고 맞춤법은 알고도 틀리는 것과 몰라서 틀리는 것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글이 술술 써져야 합니다. 10년간 2편의 영화를 만들고 2000만명의 팬을 보유한 감독보다 10년간 10편의 영화를 만들고 10만명의 팬을 보유한 감독이 월등히 좋습니다. 다만 그 10만명의 팬이 2000만명보다 더 컬트적인 팬이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세번째는 희소성입니다. 익숙하고 모두가 잘 알고 있고, 글쓰기 교실이라도 다닌 듯 한 글을 내 쪽에서 거절합니다. 남들이 안 써본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저도 끝없이 좋은 작가님들을 동경하고 닮으려 애쓰지만, 적어도 그들을 닮으려 애쓰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5.
제가 원하는 글의 세가지 조건을 알아봤습니다. 그럼 이대로만 하면 날카로울 수 있을까요? <깊게 고민한 유머를 곁들인 편안하게 쓴 독특한 글>을 반복하면 저는 날카로워질까요? 그럴리가요. 이대로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으면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대로는 결국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깊게 고민한 유머를 곁들인 편안하게 쓴 독특한 글>을 많이 쓸 뿐이지, <깊게 고민한 유머를 곁들인 편안하게 쓴 독특하고 날카로운 글>을 남기지는 못합니다. 그럼 세가지 중 무엇을 건드려야 할까요? 유머를 빼는건 말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독창성을 제외할거면 차라리 무딘 글을 쓸겁니다. 네. 편안함 입니다. 안락의자에 앉아서는 3점 슛을 넣을 수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공을 쥐고, 무릎을 접었다 튀어 오르며, 슛을 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공을 던지는게 아닌, 림을 향해 던지고. 득점을 해야 합니다. 그때는 제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6.
그래서, 마냥 편안하지 않은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글을 쉽게 쓰는게 저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쉽지 않은 글도 쓸 수 있었으면 해요. 그걸 위한 장치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일종의 압박이지요. 아래의 링크를 누르시면 구글 폼으로 이동합니다. 몰라요 이럴땐 구글 폼이 제일 만만하지 않나요?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면, 제가 신경서서 잘 쓴 글을 보내드립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 혹은 글이 잘 써진다면 그보다 잦게 말이에요. 프로젝트 제목은 <어렵게 쓴 글>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