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를 위한 마케팅 안내서

by 윤동규

1.

마케팅이란 낱말엔 도무지 정을 줄 수가 없다. 자고로 잘 만든 작품은 감언이설을 곁들이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진심은 통한다. 진짜는 통한다. 통하지 않는다면 네 작품을 더 갈고 닦아라. 어설픈 작업물 어떻게 더 팔아치울지 고민하지 말고. 딱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하여튼 그놈의 힙합이 문제다. 제 20대를 몽땅 마케팅만 하면 WACK MC 취급하는 가사들에 치여 살았다구요. 헛짓거리 말고 니꺼 클래식 만들 생각이나 해. 아니... 클래식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봐줘야 의미가 있죠... 반 고흐가 어디 실력이 구려서 굶었습니까?


2.

결국 디자이너도, 프로듀서도, 아티스트도 모두 마케팅을 곁들여야 비로서 완성된다. 마케팅은 여러가지 과목 중 하나로 봐서는 안된다. 나는 외국어 비문학 사탐 과탐, 그리고 마케팅에 능숙해요. 그런 마인드로는 안된다. 수능으로 치면 마케팅은 OMR카드다. 내가 제 아무리 정답을 알고 있어도, 그걸 써서 평가 받을 카드가 없으면 방구석 망상과 무슨 차이인가. 저 아까 머릿속으로 수리 영역 만점 나왔어요. 아 그러세요 와우! 브라보! 축하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 결국 나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한 매체. 그게 마케팅이다. 20대 내내 싫어했던 마케팅은, 본질 없이 껍데기만 남아있던 것들이다.


3.

그러니 마케팅에 신경을 쓴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나는 마케팅은 몰라도 작가로서의 삶에는 꽤 자부심이 있다. 보일러 고칠 돈 없어서 12월에 찬물 샤워 하면서도 글 쓰고 영화 찍었으니까 떵떵거릴만 하지 않나요. 우리 왜 영어 공부할때 그런 예문 있잖아요. OO)을 위한 OOO. 여기서 순서만 조심하면 돼요. 본질을 위한 마케팅. 마케팅을 위한 본질 말구요. 내가 만든 것을 팔아야지, 팔리기 위한 나를 만들어서는 안돼요. 그렇게 해서 팔린다고 칩시다. 너는 팔리기 위한 너를 계속 만들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너의 본질이 된거니까 잘 됐네요. 그런 케이스도 많습니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거죠. 그래서 일단 만들어 올리는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걸 계속 할 수 없을때는 어쩌죠? 일단 팔기 위해 만들고. 잘 팔리긴 하는데. 이게 당신의 본질이 아닌 경우엔? 어쩌긴 뭘 어째요, 대충 슬럼프 핑계 대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면 됩니다. 아니면 하루 하루가 지옥같은 창작의 삶을 억지로 영위하던가요.


4.

그래서 슬그머니 제 마케팅 플랜을 제안해봅니다. 일단 창작 활동은 기존과 동일해요. 만들고 싶은걸 만듭니다. 영상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일단 작업해요. 잘 팔릴지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마케팅의 영역이에요. 다만 사람들이 좋아할지는 고민해야 합니다. 나만 보고 좋을거면 평생을 아마추어로 살아가면 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퀄리티가 아닌 설득력의 차이입니다. 프로는 사람들을 설득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연히 얻어 걸리는게 아니라, 계산을 해서요. 그게 만들어졌다면, 그때서야 잘 팔리도록 마케팅을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선 아직 뭘 팔지도 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콘텐츠인가? 콘텐츠를 올리는 계정인가? 콘텐츠가 올라가는 채널인가? 콘텐츠라면 콘텐츠 중 어떤 콘텐츠인가? 누구에게 팔지도 마찬가지에요. 저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창작자들은 그냥 아무나 봤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아니 그거 말고 좀 더 좁혀봐~ 하면 좀 고민하는 척 하다가 1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 이딴 소리나 한다구요. "오늘 점심 뭐 먹을래?", "3000원에서 15000원 사이에서 먹을래"랑 뭐가 다릅니까 이게.


5.

하지만 놀랍게도, 타겟 선정은 창작자들에게 거의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타겟을 아무리 물어봐도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별 생각 없이 만들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봅니다. 누가 좋아할지 말고, 누가 좋아했는지 말이에요. 친절하게도 네이버, 구글, 카카오 모두 통계를 제공합니다. 이게 뭐 의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9시에 어디 사는 어떤 성별의 자녀가 몇 있는 몇살의 누군가가 몇초까지 보다가 껐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얼추 어디에 마케팅을 해야 할지 감이 올겁니다. 뭐 우리가 타임스퀘어 빌보드 광고 할것도 아니고, 마케팅이라고 해봤자 그렇게 뾰족하고 다양한게 있는건 아니에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정도겠지요. 막연해 보이긴 하지만, 그 넓은 세계에서 어떤 그룹에 집중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지 않나요?


6.

그렇다면 이제 마케팅 방법입니다. 여기가 중요해요. 왜냐면 우리는 마케터는 아니지만, 창작자거든요. 언제부터 이 글이 창작자들을 위한 글이었는진 모르겠네요. 일단 나를 위한 글이긴 했는데 내가 창작자여서 그런가봐요. 어쨌든 우리는 잘 팔리는 글을 쓰는건 마케터보다 못하지만, 재밌는 글을 쓰는 건 자신이 있잖아요? 그러면 잘 팔리는건 잠시 내려놓고, 재밌는걸 만들어봅시다. 만든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방법을 또 만드는거에요. 영화를 위한 영화. 만화를 위한 만화, 글을 위한 글이요. 대신 좀 더 뾰족하게, 대상에 집중해서. 만들때는 없었지만, 만들고 난 후에는 생겨난 타겟층을 명확히 겨누고요. 1분짜리 쇼츠, 30초짜리 릴스, 5문단의 에세이, 4컷짜리 만화 뭐가 됐든. 내 작업 사람들이 많이 보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마케팅 콘텐츠 만들 필요 없어요. 내 작업을 보기 위한 또 다른 내 작업을 만들면 되잖아요. 그들이 유기적으로 엮이기만 하면 돼요. 요즘 뭐 URL 링크 다 지원하잖아요. 마블 유니버스, 멀리 있지 않습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로 이어지는 윤동규 유니버스. 곧 개봉합니다.


7.

아 윤동규 유니버스는 어디다 마케팅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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