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치사하고 비겁하다. 묵묵히 노력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동시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의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A는 알고리즘이 뭔지도 모르고 꾸준히 작업의 퀄리티만 갈고 닦는다. A의 작업은 몇몇 사람에게 감동을 줄 지언정,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대중의 흐름을 타진 못한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겠지. 결과에 집착하지 말자. A는 더욱 더 작업을 갈고 닦는다. 하지만 결국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한 작업은 외면받을 뿐이다. 치사하기 짝이 없다.
반면 B는 알고리즘을 파악하고, 어떤 방법으로 흐름을 탈 수 있는지. 어떤게 통하는지 철저히 분석하고, 작업물의 내용마저 승률이 높은걸 만들어 낸다. B는 얄팍한 지식을 통해 금새 넓은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깊이 없는 작업은 금새 바닥을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 그럴수록 B는 알고리즘의 탓을 할 뿐이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
그럼 여기서, 이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을 생각해보자. 알고리즘이 기계로 하든 수학적인 계산을 하든, 어떤 결과물을 추려내냐는 결국 사람이 선택한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작업을 추려내! 사람들이 오래 본 작업을 추려내! 사람들이 반복해서 찾는 작업을 추려내! 기준이 뭔진 모르지만, 최소한 자신의 플랫폼에 누를 끼치는 기준을 만들진 않을 것이다. 어떤 기준이 됐든, 알고리즘은 보다 더 좋은 작업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아무런 근거는 없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그럼 윤동규는 왜 그렇게 믿고 싶은가? 믿음의 알고리즘을 파고 들어가보자. 알고리즘이란 단어를 이딴 식으로 쓰는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어떤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치자. 그럼 사람들이 많은 작업물을 올리길 바랄 것이다. 그럼 그 작업물들은 어떻게 정렬되었으면 할까? 첫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작업. 나 여기 계속 머물면서 더 많이 구경해야지. 둘째. 나도 이런 것들을 만들고 싶다, 해주는 작업. 나도 이러거 만들어서 올려야지. 나는 더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어! 높은 확률로 이 두개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을까?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은 등장하자마자 벅스뮤직 1위였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결국 A는 알고리즘이 발견하지 못한 원석이며, 알고리즘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알고리즘이 정해놓은 입력값에 해당하지 못한다면 A도 바닥을 떠돌 수 밖에 없다. 반대로 B의 인기 역시 알고리즘의 허술함이다. 그저 남들을 따라하며 알고리즘 이용하는 법 몇개 동영상을 시청했다고, 이리 손쉽게 인기를 끄는건 플랫폼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결과다. 물론 우리는 그렇다고 알고리즘의 탓을 하며 언젠가 바뀌겠지 기다리진 않는다. 하지만 탓할 사람은 제대로 정하고 탓을 하자는거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아직 당신을 모를 뿐입니다. 사람들이 알기만 한다면 정상에 설 수 있겠습니까? 아직 자신이 없다구요. 그럼 그 때가 올 때까지, 갈고 닦으십시요. 당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제대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당신이 끌어 올린 이 많은 것들이, 당신이 원하는 결과물인가요? 당신의 공식은 진화하고 있습니까? 당신에게 선택받지 못해 바닥을 기는 작업들을 보세요. 과연 이게 외면받을만한 작업입니까? 더 노력해주세요. 더 철저해지세요.
당신은. 틀렸습니다. 당신은 결과로 증명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증명할게 없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기는 한가요? 여기에 당신의 정신이 눈꼽 만큼이라도 들어가 있습니까? 심하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말에 상처를 입을 자격도 없는 것 같네요. 당신은 여기에 없습니다. 그것만 인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