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길

by 윤동규

자존심과 자존감, 뭐 자만심 이런 말의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쨌든 제 작업을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좋아합니다. 그게 저의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생각을 요 5~6년동안 꾸준히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작업을 사랑하는 태도가 나의 장점이자 문제입니다.


이 바닥 그 많은 선생님들도, 형님들도, 친구들도, 동생들도, 하나같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하면 더 갈고 닦을 수 있을지 연구합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대학교 졸업작품 전시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설플 지언정, 저처럼 미숙함을 알고도 넘어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를 뿐이지요. 저는 저의 미숙함을 압니다. 하지만 저의 미숙함도 사랑합니다.


A. 그럼 여기서 두 갈래 길로 나뉩니다. 작업을 사랑하고. 나의 일을 사랑하고. 나의 삶을 사랑하고, 삶이 곧 작업이고. 그런 작업을 사랑하는 삶을 사랑하는 길 하나.


B. 그리고 혼자서 작업을 사랑하고 자위하다, 애써 외면하던 어떠한 큰 벽에 맞닥뜨리고 여태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길 하나.


중간은 없는거야? 그렇게 꼭 극단적으로 살아야 해? 물어본다면, 사실 그게 저기, 예. 중간은 없습니다. 그게 나의 알고리즘이거든요. 알고리즘을 이런 때에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 있잖아요 알죠? 그러니깐 이런 부분이요. 알고리즘이란게 뭔지 공부하고 알아내서 더 좋은 단어를 찾던가, 더 적절한 때에 활용하거나가 아니라. 이렇게 대충 적당하게 집어넣은 다음 “느낌 알죠?”이딴 소리 하는 이런 부분 말이에요. 나는 나의 미숙함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중간이 없는거에요.


나는 나의 미숙함을 사랑하기 때문에, B를 선택한다면 나의 미숙함을 걷어내야 한다. 그럼 A의 나는 사랑할 구석이 없다. 그렇다고 A의 미숙함을 가져간다면 B에서 맞딱드린 벽을 뛰어넘을 방법이 없다. 망했다. 어릴때부터 게으른 천재가 주인공인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애매한 재능은 쉽게 사람을 망친다. 하지만 반대로 애매한 재능만큼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도 없다.


A로 계속 걸어가야지, 생각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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