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취향을 알라

by 윤동규

일전에 큐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있을 정도로, 각 분야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은 전문성을 띈다. 그들을 우습게 알거나 낮춰 말하는게 아니라. 궁금한게. 근본적으로 생각해서, 지금 우리의 삶에서 전문성이 필요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동진의 90년대 BEST 10 영화 리스트가 윤동규 리스트보다 더 궁금한건 사실이다. 평론가로서의 전문성을 띄고 있고, 명성과 신뢰가 있기 때문에 높은 퀄리티의 큐레이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큐레이션은 천하 제일 큐레이션 무술대회가 아니다. 특정 집단을 타겟으로, 혹은 특정 집단이 주도해서 이루어진 큐레이션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더라도, 방탄소년단 지민의 BEST 10 영화가 훨씬 더 이목을 끄는건 당연한 소리일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방탄소년단 지민의 뮤지컬 영화 BEST 10이라고 한다면. 영화에 대해선 전문성이 없지만, 음악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다. 그렇다면 그 선정 기준 자체에서 일종의 전문성을 띄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돌과 뮤지컬 영화와 큰 연관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지민이 생각하는 훌륭한 뮤지컬 영화는 어떤 것일까. 처음부터 예시를 너무 크게 잡은 것 같기도 하니까. 장기하가 뽑은 무성영화 BEST 10으로 바꿔보자. 저렇게 이야기 하는거 좋아하고 말 많은 뮤지션이 뽑은 무성영화란? 궁금해지지 않는가. 박지훈 번역가가 꼽은 마블 영화 BEST 10은? 진짜 결국 이슈를 끄는건 키워드 선정이다. 큐레이션의 퀄리티보다 팬심과 취향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추측일 뿐이지만.


여기서 팬심이란건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가까우니까 넘어가자. 백종원의 골목식당 솔루션 하고 있는데 주인이 고든 렘지면 더이상 뭔 할말이 있겠는가. 그런거 말구요, 은퇴 자금 모아서 대출 받아서 국수집 차린 황씨 아저씨를 예로 들어서요. 결국 어느 정도 이상의 퀄리티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누구나 응당 갖춰야 할 최소 자격 요건이다. 음악 큐레이션 하는데 팝 팝 크레용팝 레디 고 이지랄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소리다. 그러면 건드릴 수 있는 마지막이 취향이다. 이게 청자의 취향. 이런 음악을 좋아할 것이다 하고 예측하는건 결국 또 실력의 영역이고 전문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화자의 취향이다. 취향이 곧 권력인 사회를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 문장에는 "고급"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고급스러운 취향이 권력인거지, 세상의 모든 취향이 존중받지는 못한다. 존중입니다 취향해주시죠. 하지만 꾸준한 취향은 오리지널리티를 갖춘다. 청자는 화자를 통해, 자신이 알지도 못했던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아 나 이런거 좋아했구나.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 취향을 파고들게 된다. 스몰 타임 크룩스를 보고 애니 홀을 본 뒤 맨하탄 살인사건을 보는 것 처럼. 그렇게 필모 파헤치기 단계에 흠뻑 빠져있을 때 쯤, "우디 앨런이 사랑한 영화들"같은 리스트가 나타나면 아주 그냥 미쳐버리는거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결국 팬심이란 화자의 팬심이 아니어도 충분하다. 내가 큐레이팅 한 콘텐츠의 팬들이 모여들면 그와 비슷한 취향의 또 다른 화자들을 물어다 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클래식 연주하고 리사이틀 돌고 명성을 높이지 않아도, 또한 클래식 석박사 따러 유학 안가도 영화 아마데우스 보고 큐레이션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능력이 2022년에 필수로 자리잡은 능력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가 위대한 작품을 생산 해내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그렇지만 세상엔 창작을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이 창작자보다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취향을 파고들자. 나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걸 잘 풀어내고.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자. 그럼 사람들은 나의 팬으로 시작한건 아닐지언정, 나의 취향의 팬으로 시작해서. 결국 나의 팬이 될지도 모른다. 취향에는 그 사람의 정서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풀어서 썼지만, 결국 "나는 이걸 좋아해"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 나의 취향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벅스 탑 100, 넷플릭스 인기순,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도 좋지만. 가끔 나만의 취향을 꾸려보자. 앨범 쟈켓 디자인만 보고 CD를 사서 듣거나, 영화 제목만 보고 영화를 보거나. 발 닿는대로 걷다가 발견한 카페에 들어가보자. 향기든 악취든, 향이 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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