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 수 없습니다

by 윤동규

6년 전 쯤인가. 뮤직비디오 조감독 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보통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은 보통 출근길에 생각나고, 필연적으로 업무 시간에 글을 쓰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안 그러면 생각이 날아가 버리는걸? 누가 책임질거야. 물론 그렇다고 업무 시간에 이런 글을 쓰는걸 동네 방네 자랑하고 다닐건 또 아니다. 아 그래서 제가 회사 사람들이랑 SNS 교류 안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다가 저번주 회식때, 대표님이 직원들 SNS는 다 차단하고 절대 안본다고 얘기한게 생각났다. 그래 그 말을 믿고 떠들어봅니다. 만에 하나 이 짓거리가 대표님 귀에 들어갔다고 하면 용의자는 당신들입니다. 애초에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쓰면 되지만 보통 사람이랑 생각하는 구조가 차원이 다릅니다.


어쨌거나 이제서야 본론으로. 6년 전 조감독 시절에,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세요! 월급 안 받아도 상관 없습니다!"타입의 조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동규 니가 키울 애니까 니가 뽑아, 라는 이유로 막내 조감독의 면접을 보고 다녔는데. 아무런 경력도 포트폴리오도 없지만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패기 당당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보통 이런 부류의 인간을 싫어한다. 열정은 보통 결정이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곳에 풍덩 뛰어들기 마련이다. 조잡하고 거칠고 한심해도, 어떤 환경에서도 작업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주둥이만 살아있는 인간들이 보통 "월급 안 받아도 됩니다"라며 떠벌리고 다닌다. 하지만 회사는 공무원 합격 에듀윌이 아니다. 오히려 "돈 더 주세요, 전 충분히 그 값을 할겁니다"라는 쪽이 믿음이 간다. 물론 나도 120만원 받고 다니긴 했지만요.


그리하여 아무런 미련 없이 그 친구를 탈락시키려 했는데, 감독은 "그정도 열정 있는 친구면 다음주 촬영 현장에 한번 불러보자"라고 연출부 아르바이트를 권유했다. 그건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루라도 같이 일해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보인다. 주둥이만 산 놈인지 진국인지 궁금했으니까. 일당 15만원 정도로 연출부 아르바이트를 부탁했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한껏 기뻐했다. 그정도 반응이 나오니까 나도 조금은 마음이 갔다. 그래 열정적이고 꿈이 있는 친구지만, 그 꿈을 어떻게 펼쳐야 할지 모르는 것 뿐일거야. 내가 잘 가르쳐주면 되겠지. 촬영날이 다가왔고, 그 친구를 포함하여 연출부 아르바이트 5명은 남양주 스튜디오에 아침 7시까지 집합했고, 정확히 한시간 뒤에 전원 도망쳤다. 담배라도 피는 줄 알고 스타렉스로 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교통편도 마땅치 않았을텐데.


그런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아니 뭐 내 트라우마는 걱정 하지 마요. 연출부 다섯명이 갑자기 사라져서 조명팀 촬영팀 미술팀 등 정말 죄송하다 이마가 바닥에 닿게끔 고개를 숙이며 빌릴 수 있는 인력이란 인력은 다 동원해서 38시간을 촬영했지만, "와 어떻게든 굴러가는구나"라는 귀중한 경험을 얻은 기회니까 말이에요. 문제는 그 열정 가득한 친구의 트라우마다. 이건 보통 평생을 간다. 떨칠래야 떨칠 수가 없다. 자신의 한심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거기에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다는건 생각보다 배는 더 충격적이다. 나의 밑바닥은 여기구나. 공기도 통하지 않는 저 깊은 심해에 있을 줄 알았는데, 손만 뻗으면 닿는 정도에 있었구나. 이렇게 간사했구나 이렇게 나약했구나. 이렇게 한심했구나. 나의 한심함을 마주하는건 어떤 공포 영화보다 끔찍한 순간이다.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게 곧 힘이 된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힘이 된다. 나의 한심함은 힘이 된다. 그리고 기준이 된다. 삶의 지도가 되어준다. 태권도 학원에서 단체로 경주월드를 갔을 때, 난 <무서운 놀이 기구만 타는 그룹>에 당당히 선두에 섰다. <타고 싶은 거 3개 골라 탈 수 있는 그룹>보다 더 많이 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고등학생과 사범님들로 가득찬 무리에서 첫줄에 초등학교 3학년이 서 있으니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런 시선은 오래가지 않았다. 난 첫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도중에 겁에 질려 도망친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난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한 채, 형이 받은 3개의 이용권 중 하나로 미로탐험 한번 하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사범님께 이용권을 달라는 말도 못했다. 난 패배자니까. 난 한심하니까. 난 여기 있을 자격도 없다. 놀이공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이때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태권도 학원도 금방 그만뒀다.


물론 이정도는 밑바닥이라 부를만한 에피소드도 못된다. 광고 회사 조감독때는 촬영 현장에서 휴대폰 끄고 집에 간 적도 있다. 별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자고 싶었다. 잠을 자고 싶었다. 사람이 잠을 자야지. 왜 나는 잠을 못자? 잘거야. 나, 자러 갈거야. 머릿속에 오직 그 생각만 가득했다. 휴대폰을 끄고, 들고 있던 무전기는 연출부에게 넘겨주고. 집에 들어가서 잤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카카오 택시가 서비스됐고, 광고 모델인 이하나는 정말 아름다웠다. 문소리 곽도원 박성웅은 못봤다. 첫 씬은 이하나였고, 난 첫 씬 촬영도 전에 튀었으니까. 그것도 자고 싶어서. 나름 핑계거리는 있었다. 나 지난 한달 반동안 하루에 네시간 넘게 잔 적 없잖아. 특히나 지난 한주는 하루에 한시간 자면서 일했잖아. 그리고 오늘 이 촬영 끝나자마자 새벽에 바로 지방 내려가잖아. 그럼 또 못자잖아.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나 집에 가는거 맞잖아. 내가 잘못한게 아니잖아. 니들이 잘못된거잖아.


아니 내가 잘못된게 맞다.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할 수 있는 척 끝까지 버티다가 도망치는건 민폐 이상의 어떠한 가치도 없다. 못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경멸하지도 탓하지도 한심해 하지도 않는다. 아 이 사람은 여기가 한계구나.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다, 그 이상의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간혹 한소리 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 그럼 또 뭐 어떤가. 누가 날 한심해 한다고 한심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나의 한계는 내가 안다. 나는 여기까지요. 그만두겠소. 무책임해서 미안하오. 하지만 정말 최악의 형태로 무책임해지기 전에 미리 말합니다. 나는 하루에 일곱시간은 자면서 일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침 8시에 수백억짜리 광고 촬영 직전에 휴대폰 끄고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밑바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뭐 마냥 좋진 않겠지. 도망치고 잠수타고 마냥 민폐 끼쳐놓고 멋진 나를 기대하는게 더 양아치같다. 한심하게 굴었으면 딱 한심한 만큼 스스로를 인정하면 된다. 내가 뭘 못 하는 사람인지. 내가 어느 정도로 약한 사람인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느끼면 된다. 한심한을 기억하면 된다. 부끄러움을 뼈에 새기면 된다. 그럼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내가 그려진다. 생각보다 내가 되고 싶은 나를 그리는건 쉽지가 않다. 이정도면 됐나, 싶은 순간 또 멀어진다. 아마 죽을 때 까지 쫓아다니지 않을까. 죽기 직전에도 아 더 멋진 시체가 되고 싶었는데 후회할거다. 하지만 되고 싶지 않은 나는 아주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경주월드 놀이기구 제일 첫 줄에서 하나도 안 무서운 척 기다리던 나. 의자에 앉아서 꾸벅 꾸벅 졸며 하루에 한시간 자던 나. 기가 막히게 화창한 아침의 삼청동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잡아 타던 나. 바로 다음 날 회사로 찾아가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 말하던 나. 도망쳤다는 이유로 월급 한 푼 못받고, 오히려 현장에서 없어진 무전기 값 80만원을 갚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리던 나. 굳이 지방 촬영 나간 감독에게 전화해 온갖 쌍욕을 듣던 나. 부끄럽지만, 그런 내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만든 8할은 나의 한심함이다.


말끔하게 도망친 다섯명의 연출부 아르바이트를 보며. 텅 빈 스타렉스에서 그때의 내가 떠올랐었다. 열정 넘치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가 생각나서 혼자 미친놈처럼 웃었다. 감독에게 "우리 좆됐어요"말하면서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대는걸 참느라 애쓴 기억이 난다. 감독은 "아니 돈 안 받아도 되니까 일만 시켜달라던 놈한테 돈까지 줬는데 어떻게 한시간만에 튀냐"라고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이해가 갑니다. 뮤직비디오 만드는거, 멋있어 보이잖아요. 아침에 머리 감고 면도하고 신발 신을 때 까지는 좋았을거에요. 좁은 스타렉스에 다섯명이 끼여 앉아 남양주까지 가면서 뭔가 생각이랑 달랐겠죠. 가로 세로 높이 3미터짜리 어항을 들어 옮기면서 아 이건 좀 아닌데 생각해겠죠. 이게 오늘 촬영 소품들이에요, 일단 세트장으로 옮기죠 하며 소개한 1.5톤 트럭을 보고 기가 찼겠죠. 정이 떨어졌겠죠. 이제 두번 다시 뮤직비디오 쳐다도 보기 싫겠죠. 그냥 그런거에요. 그런 고마운 기회가 온 것 뿐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열정 넘치지도 않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최소한, 이건 할 수 없다는건 알게 됐잖아요. 그게 나의 출발선이었어요. 내가 되고 싶은 나는, 내가 되기 싫었던 내가 만드는게 아닐까. 뭐 얼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업무 시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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