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 아이디어가 턱 하고 막힌 듯 한 기분이 든다. 좀만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옛날에는 한끼 식사에 반찬 10개도 거뜬하게 해 먹었는데, 요새는 하나도 제대로 못 해먹는 느낌. 그렇다고 예전이 더 요리 실력이 뛰어났던것도 아니다. 그때 최선을 다해 만든 반찬 10개보다 지금 대충 자다 깨서 만든 반찬 하나가 더 맛있다. 그런데 상차림을 놓고 보면, 예전이 훨씬 더 그럴싸하다. 내가 지금 그렇다. 요즘엔 도무지 뭔가 만들 자신이 없다.
예전에는 지속 가능성을 염두하고 시안을 짜지 않았다. <여행 가방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 여행>같은것도 좋아라 짰다. 로케에는 사막도 있고 정글도 있고 알래스카도 있었다. 요즘엔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해도 어차피 못 찍을텐데 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것만 집중하자- 하다보니 결국 아무것도 못 짜내고 있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 뭐, 밖에 나가서 뭔가 찍어와야 한다고? 안돼 안돼. 집에서 할 수 있는걸로 해. 나 사람 만나기 귀찮아.
그렇게 스스로 제약을 두다보니 결국 입만 털어서 뭔가 만들어지길 바라게 된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입만 털어서 뭔가 되는 사람은 보통 입을 기가 막히게 잘 털거나. 입만 털어서 뭔가 된게 아닌 사람이다. 우디 앨런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때까지 50개의 농담을 써낸다. 나는 단 한개의 징징거림을 뱉어낼 뿐이다. 그리고 그 징징거림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하기 싫으면 하지 말지. 왜 하기는 싫은데 좋은 결과는 얻고 싶은거야?
영상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요소들이 너무 버겁다. "왜 촬영을 해야 소스가 나오는거야. 왜 편집을 해야 흐름이 만들어지는거야. 그냥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고 누워서 입만 털어도 뭔가 만들어지면 안되나? 왜 부지런한 사람만 뭔가를 얻어내는거지. 이건 너무 부당해. 쟤네들을 좀 봐! 거저 먹고 살잖아!"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죄다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들 뿐이다. 새삼 세상이 참 합리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놀고 먹으면서 좋은 성과를 바라는건 세상에 나 뿐이구나.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