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피드에 뜨는 스냅 사진에서 해맑게 웃는 모델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말 그대로 힘들다. 거북하다. 사람 잘 차단 안하는데, 몇몇 모델은 그냥 보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차단했다. 하지만 그 모델을 찍은 작가들까지 차단하진 않아서. 종종 얼굴이 보인다. 나는 왜 이들을 보기가 힘든가.
사람을 차단하는건 원수지간이 아니고서야 못난 행동이다. 무턱대고 차단하면 끝이 아니다. 내가 이 사람을 왜 거북해 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깊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 이유도 없이 사람을 기피하면 안됩니다. 분명하고 확고한 이유로 멀리 해야 해요. 그냥 보기 힘들다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왜 그들의 웃음이 보기가 힘들고, 다른 웃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슷한 거북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지 찾아봤다. 5점부터 0.5점까지 싹 다 뒤졌지만, 웃는 얼굴이 보기 힘든 케이스는 없었다. 너무 활짝 웃어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아무리 활짝 웃어도 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진다. 그래 이유가 필요한걸지도 모르겠다. 15초짜리 광고 하나에도 웃음의 이유가 있는데, 스냅 사진에선 왜 웃는지까지 표현하긴 힘들었겠지. 그렇다면 이유가 없는 웃음이라서 불편했나?
아니다. 이유가 없지 않다. 활짝 웃는 모습이 가장 예쁘거나, 혹은 활짝 웃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보통 이야기가 있는 작품에서의 웃음은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어찌보면 스냅 사진에선 웃음 자체가 목적인게 아닐까. 그러다가 문득 어떤 장면이 몹시 구체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홈쇼핑에서 쇼호스트 뒤로, 단란한 가족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이 화목하게 소세지를 구워 먹는 모습이다. 그래 이거야. 내가 불쾌하다고 느낀 포인트가 바로 이거야. 처음엔 보기 힘들다, 거북하다, 보기 불편하다로 표현했지만 여기까지 오니까 불쾌하다까지 되었다. 더이상 분석을 미룰 수 없다. 오늘 끝까지 원인을 파헤쳐본다.
그러니까 결국 웃음을 위한 웃음이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연기가 웃음을 위한 웃음이지만, 서사 속에 들어간 배우들은 감독이, 이야기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주어진 상황이 웃음의 이유를 만들어준다. 이야기를 아무리 허술하게 만들었어도, 최소한 “쟤가 왜 웃지?”하고 의문을 품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냅 사진속의 모델들은 왜 웃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이 사진에선 웃고 있어도, 셔터와 셔터 사이엔 어떤 표정일지 알 수가 없다. 그 부분이 꽤 섬뜩하다. 셔터 누를때만 웃는것도 소름 돋지만, 사진 촬영 내내 이렇게 웃고 있다 생각하면 그게 더 소름 돋는다.
여기까지 오니까 확실히 이해가 간다. 뮤직비디오 출연자들을 섭외할때, 한때 필름메이커스로 구할때가 있었다. 많으면 400명이 넘게 지원했고, 밤을 새가며 하나 하나 포트폴리오를 확인했다. 그 중 기억에 남을 만큼 보기 힘들었던 포트폴리오는, 스튜디오를 빌려 다양한 표정 연기를 찍어 보내준 종류의 것이다. 나 이 표정 잘 지어요, 이 표정도 잘 지어요. 이 감정일땐 이런 표정이구요, 이 감정은 이런 표정으로 연기해요. 마치 그것은 이 사람의 사용 메뉴얼과 같았고, 마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당장이라도 세상이 떠나가라 웃고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배우들을 볼때, 도망치듯 메일함을 닫았다.
말하자면 기능적으로 훌륭하고 능숙한 연기에서 공포를 느끼는게 아닐까. 차단까지 하는거면 일종의 나를 위한 보호가 섞여있다. 나를 이 연기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공포에 가까웠다. 인간처럼 행동하는 로봇이나,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도 웃음을 띄우는 살인마처럼. 웃을 이유가 없어도 웃을 수 있는 훌륭한 연기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웃어주세요!”라고 디렉팅을 했을 때, “누가 봐도 남이 시켜서 웃는 웃음”을 짓는 배우가 더 좋다. “자연스럽게 웃어주세요!”라고 디렉팅을 주면, “누가 봐도 남이 자연스럽게 웃으라고 시켜서 웃는 웃음”을 짓는 배우가 좋다. 그런 배우를 자연스럽게 웃게 하려면, 촬영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테이크를 길게 가져가며, 자연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올 때 까지 말을 걸거나 상황을 만들어준다. 여섯번째 테이크를 갔고, 배우는 다섯번째 테이크에서 삑싸리가 낀 순간이 생각나 웃음을 터트린다. 나는 그 찰나를 쓰기로 한다. 대부분은 대충 이렇다.
왜 내가 뮤직비디오에 능숙한 배우들보다 아마추어나 연기 경험이 없는 모델들과 함께하길 더 좋아하는지 얼핏 알 것 같기도 하다. 왜 극영화 시나리오는 쓰지만, 촬영으로 옮기기는 싫어하는지도 알 것 같다. 극영화의 호흡과 훌륭한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일종의 공포로 다가와서가 아닐까. 공개 오디션장에서 자유 연기 같은걸 보는 상상을 해봤다. 아 그건 정말 고문일거야. 제발 그러지 말아주세요. 제발 여기서 뛰어난 연기를 펼쳐주지 말아주세요. 배우들의 생업이나 포트폴리오의 존재 이유, 연기 영상이나 연기 연습 다 알고 있습니다만.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스냅 사진을 찍었을 때 예쁘게 나오는거 알지만. 단란한 가족을 연기해야 소세지가 많이 팔린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뭐랄까 저는 감당하기 힘드네요. 김새벽의 연기가 그리워지는 새벽입니다.